서울 종로 낙지볶음 골목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종로1가)
4가지 관점으로 본 이 장소
KORLENS 큐레이션서울 종로 낙지볶음 골목은 청계천 청계광장 인근 무교동 사거리에서 종로구청으로 이어지는 일대를 말한다.
1960년대 종로구 서린동에 낙지 골목이 형성된 것을 기원으로 본다.
과거 청계천 인근 회사에 다니던 언론인과 공무원을 비롯한 직장인들이 주로 이 골목을 찾아 매운 낙지볶음과 시원한 조개탕을 곁들여 먹으며 삶의 애환과 스트레스를 날리고, 젊은 열정을 불태웠던 낭만과 추억의 거리로 알려
무교동 낙지골목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도 한다.
장소 소개
위치
이런 곳도 함께 보세요
같은 유형의 인기 명소오디오 가이드
한국관광공사 오디(Odii) 음성 해설대본
청계광장의 숨은 매력들 이곳 청계광장은 회사원들뿐만 아니라, 국내외 관광객들도 자주 찾는 도심 속 쉼터입니다. 광장에 파란색 소라기둥이 보이시죠? 이 기둥은 스프링이라고 불리는 미술작품으로 미국의 팝 아트 미술가 ‘클래스 올덴버그(Claes Oldenberg)’와 ‘코샤 반 브루군(Coosje Van Bruggen)'의 작품이에요. 이 작품을 제작할 당시 작가는 한국의 도자기와 한복, 보름달에서 느껴지는 한국적인 아름다움에 영감을 받았고, 생동감 있게 도약하는 서울을 상징하는 이 작품을 만들게 되었다고 합니다. 스프링 내부는 천정에서 바닥으로 물이 떨어지게 만들어져 있는데요, 이 물은 바닥에 놓인 청계천 미니어처로 흘러가 청계천 물길로 흘러가도록 되어 있습니다. 청계천 미니어처는 청계천을 1/100으로 축소한 모양이라고 합니다. 지금의 청계광장은 청계천이 복원되면서 같이 만들어졌는데요. 청계천은 조선이 건국될 때 작은 생활하천으로 만들어져서, 세종 때와 영조 때 청계천 정비 사업으로 지금과 같은 물길로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하지만 일제 강점기 때부터 1960년대까지 청계천을 덮어나갔고, 1970년대에는 청계고가로가 들어서자, 청계천은 우리의 기억 속에서 잊혀져갔습니다. 그러다 2003년부터 청계천을 덮었던 콘크리트를 걷어내고, 물이 흐르는 하천으로 만들면서, 다시 서울 시민들의 곁으로 돌아오게 된 것이죠. 광장에서 청계천으로 내려가시면 보기만 해도 시원해지는 분수와 2단 폭포를 만나실 수 있습니다. 2단 폭포 아래에 있는 팔석담은 전국 각지에서 가져온 돌들과 청계천의 물로 조선의 팔도와 미래의 통일된 한반도를 상징하는 청계천의 명물이랍니다. 팔석담에는 자세히 살펴보시면 각 지방의 이름들이 적혀있는데요. 아쉽게도 이 중 북한지역은 질감이 비슷한 바위들을 대신 가져다 놓았다고 합니다. 통일이 되면 실제 북한지역의 바위가 놓여 지길 바래봅니다. 그리고 팔석담에 동전을 던지면 소원이 이뤄진다는 이야기가 있어서, 동전을 던지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던져진 동전들은 매년 걷어 불우 이웃을 돕는데 쓴다고 합니다. 이 뿐만 아니라 청계광장에는 계절마다 다양한 이벤트들과 축제들이 여러분들을 기다리고 있답니다.
대본
조선시대 대표다리 이 다리는 600여 년의 역사가 담겨있는 광통교로서, 청계천 복개공사로 묻혀있던 것을 최근에 다시 복원한 것입니다. 원래 광통교는 광교 자리에 위치하고 있었지만, 오래된 광통교를 보호하기 위해서 현재의 자리로 옮겨 놓았고, 왼쪽으로 흐르던 물길마저도 오른쪽으로 틀어놓았습니다. 그럼 이제 다리 아래쪽을 살펴보실까요? 오래된 돌들에 조각된 무늬들이 보이시나요? 신장석이라 불리는 이 무늬들은 고려 말부터 조선 초 왕비들의 무덤 속에서 볼 수 있는 특징인데요. 얼핏 보면 토끼 모양 같지만, 사실은 아래 위가 뒤집힌 부처님의 모습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왕비의 무덤돌이 다리돌로 쓰이게 된 것일까요? 사실 광통교를 세우라 명한 왕은 태종 이방원이고, 무덤돌의 주인은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의 두 번째 부인 신덕왕후입니다. 태종 이방원은 자신을 제치고, 신덕왕후의 아들인 이방석이 세자에 오르게 되자, 신덕왕후를 증오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흙으로 만들어졌던 광통교가 홍수로 무너지는 일이 생기자, 태종은 신덕왕후의 능자리의 무덤돌을 다리에 쓰도록 명했던 것이죠. 그것도 모자랐는지 무덤돌을 뒤집어서 사용하게 했습니다. 그러나 태종의 생각과는 달리 광통교는 왕의 행차나 국가적으로 중요한 외국 사신들이 꼭 이용하는 다리가 되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조선시대의 큰 명절인 정월 대보름에는 다양한 민속놀이가 열리는 장소로도 사랑받았습니다. 정월대보름은 조선시대 사람들이 1년 중 유일하게 밤에 돌아다닐 수 있었던 날인데요, 정월대보름 전날인 14일은 양반들이, 정월대보름달엔 평민들이 그리고 대보름달 다음 날에는 아녀자들이 다리밟기를 하러 광통교에 모여들었다고 합니다. 다리밟기는 다리를 밟으면 다리에 병이 나지 않는다는 믿음 때문에 시작되었는데요, 나중에는 도성 내 모든 다리를 밟는 형태로 발전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명종 때에는 다리밟기를 핑계 삼아 남녀가 몰래 만나는 일이 많아져서 다리밟기를 금지시키기도 했답니다. 옛 조상님들이 건강을 위해 걸었던 광통교에서 우리도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 다리밟기를 해보는 건 어떨까요?
대본
정조의 수원행차를 그린 정조반차도 멀리서도 확연히 눈에 띄는 저 벽화는 정조반차도입니다. 반차도는 길이 192m에, 사용된 타일 수가 4,960장이나 되는 세계 최대 규모의 도자벽화입니다. 반차도는 정조가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회갑잔치와 아버지 사도세자가 묻혀있는 현륭원에 참배를 하기 위해 수원화성으로 가는 모습을 그린 그림입니다. 이 반차도는 수선전도에서 시작합니다. 수선전도는 김정호가 직접 제작한 서울지도로 서울의 거리와 도로 시설 등이 상세하게 묘사되어 있으며, 현재의 지도와 비교해도 큰 차이가 없습니다. 그럼, 이제 반차도를 살펴볼까요? 행렬의 제일 앞부분을 보면 말을 탄 경기감사가 길을 안내하는 모습이 보이고요, 그 뒤로는 반차행렬을 총괄하는 우의정 채제공을 비롯해 84명의 별기대와 군관, 군인들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뒤로는 정조의 어머니 혜경궁 홍씨가 탄 가마가 보입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정조임금은 어디 계신 걸까요? 아쉽게도 정조 임금은 없습니다. 정조임금의 좌마만 그려져 있을 뿐이죠. 조선시대에는 왕의 옥체와 얼굴을 귀하게 여겨서 그림에 함부로 그려 넣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 반차도에서 정조를 찾아 볼 수 없는 것이죠. 왕의 얼굴은 살아계실 때 왕의 초상화라고 할 수 있는 어진에 그려졌고 왕이 세상을 떠난 후에야 공개되었습니다. 아직 끝이 보이지 않는 정조반차도에는 1,779명의 인원과 779필의 말이 표현되어 있는데요, 실제 행렬의 규모는 6,000여명에 달했고, 선두가 노량진 나루에 도착했는데도 행렬의 끝은 아직 창덕궁에서 길을 나서고 있을 정도로 아주 긴 행렬이었습니다. 또한 한강을 건너기 위해서 수많은 배들을 엮어 다리를 만들어 건넜다고 합니다. 무사히 수원화성에 도착한 정조는 아버지 사도세자의 묘소에 들러 성묘를 하고,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회갑 잔치를 열었습니다. 반차도는 그 당시에 가장 뛰어난 화가였던 김홍도의 지휘 아래, 최고의 화원들이 참가한 작품이었습니다. 반차도는 전체 대열을 뒤에서 본 모습으로 세밀하게 표현되어 있어서, 행렬에 참가한 자들의 위치를 한눈에 파악할 수 있도록 만들어졌습니다. 한명 한명 놓치지 않고 세밀하게 그려 넣어 당시 행차의 격식과 복식, 의상, 악대구성 등을 살필 수 있는 귀중한 역사적 자료인 반차도. 정조의 효심마저 엿볼 수 있는 소중한 그림입니다.
Nearby places worth pairing
Live distance-sorted picks around 서울 종로 낙지볶음 골목Book 서울 종로 낙지볶음 골목 via our partners
Compare tours, skip-the-line tickets and nearby stay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