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로공원
서울특별시 종로구 세종대로 지하189 (세종로)
4가지 관점으로 본 이 장소
KORLENS 큐레이션세종로공원은 우리나라의 중심인 세종로 가로(경복궁-광화문-세종문화회관-청계천-서울광장)에 조성된 녹지공간이다.
또한, 분수대와 야외 원형 무대, 각종 조형물이 들어서 깔끔하고 정돈된 분위기 속에서 휴식을 취할 수 있다.
공원 내에는 그늘집과 나무의자가 곳곳에 설치되어 인근 직장인들에게 도심 속의 휴식공간을 제공한다.
또한, 분수대와 야외 원형 무대, 각종 조형물이 들어서 깔끔하고 정돈된 분위기 속에서 휴식을 취할 수 있다.
무장애 편의시설
열린관광 모두의 여행 데이터장애인·고령자·영유아 동반 방문객을 위한 편의시설 정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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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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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관광공사 오디(Odii) 음성 해설대본
대한민국의 역사를 살펴보다 대한민국 역사박물관은 조선 말 개항기부터 대한제국을 거쳐 현재까지의 대한민국의 탄생과 성장을 한 곳에서 만날 수 있는 우리나라 최초의 국립근현대사박물관입니다. 박물관은 1층부터 5층까지 4개의 상설 전시실과 2개의 기획전시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1층에는 직접 체험을 해볼 수 있는 최첨단 전시시설과 두개의 기획전시실이 있습니다. 그럼 박물관에 꽃이라 할 수 있는 상설전시관을 살펴볼까요? 3층에 위치한 제1전시실은 ‘대한민국의 태동’이라는 주제로 조선이 외국에 항구를 열었던 개항기부터 일제강점기에서 벗어나는 해방기까지의 역사를 다루고 있습니다. 제1전시실에 입장하자마자 흘러나오는 애국가와 가장 먼저 보이는 옛 태극기는 관람을 시작하기 전 숭고한 마음이 들게 합니다. 제1전시실에서 놓쳐서는 안 되는 전시물은 3.1 독립선언서입니다. 진품이 전시되어 있어 큰 가치가 있을 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의 또 다른 자랑인 최첨단의 전시기법을 체험할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죠. 바닥에 있는 글자를 밟으면 벽면의 해당 위치로 글자가 이동하는 무빙텍스트 전시기법을 활용한 독립선언서 앞에서 오직 이 땅의 자주ㆍ독립을 열망했던 선조들의 정신을 느껴보세요. 4층으로 이동하면 제2전시실인 ‘대한민국의 기초 확립’ 전시실이 있습니다. 대한민국 정부수립, 6.25전쟁 그리고 민주화의 초석 4.19혁명까지 대한민국의 힘겨웠던 시작을 다소 어둡고 무거운 분위기 속에서 다양한 영상을 통해 만나볼 수 있는 전시실이죠. 마지막으로 5층으로 올라가시면 제3전시실과 제4전시실이 관람객을 맞이합니다. 한강의 기적이라 불리며 세계를 놀라게 한 대한민국의 성장을 볼 수 있는 제 3전시실에서는 우리나라 최초의 자동차 시발 자동차를 비롯해 대한민국의 눈부신 경제성장의 상징들을 만나볼 수 있습니다. 더불어 눈부신 대한민국의 성장 뒤에 희생을 강요당했던 민중들의 자유와 인권에 대한 외침도 함께 엿볼 수 있는 전시실입니다. 세계 역사상 가장 짧은 시간에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이뤄낸 대한민국. 이제는 문화강국으로서 한류라는 이름으로 세계를 다시 한번 놀라게 하고 있는 현재의 대한민국과 미래의 대한민국의 모습은 제4전시실인 대한민국 선진화 전시실에서 살펴볼 수 있습니다.
대본
지금의 광화문이 있던 자리에는 일제강점기에 조선총독부 건물이 있었습니다. 1910년 경술국치 이후 일본은 조선을 식민지로 만들고 통치하기 위한 행정체제를 만듭니다. 그리고 이를 총괄하는 사람을 총독으로 임명해 식민지화를 시작합니다. 1916년, 일본은 조선인의 정신과 문화를 말살하기 위해 경복궁의 정문인 광화문을 옮기고, 담장과 건물을 허물어 조선총독부 건물을 세웁니다. 1926년 완공된 조선총독부는 사람들의 시야에서 경복궁을 완전히 가려버리는 제국주의 식민통치의 상징적인 건물이 됩니다. 1945년 광복후의 서울에는 미군이 들어와, 이 곳을 미군정청으로 사용합니다. 귀국한 김구주석, 이승만 박사 등이 이 곳에서 미군들과 정부수립에 관한 회의를 이어갔고, 이후 남한만의 단독정부가 수립되었습니다. 남한정부는 이곳을 대통령 집무실을 비롯한 행정부처가 있는 중앙행정관청으로 사용했습니다. 1986년부터는 일본 제국주의 침략의 상징적인 건물이라고 하여, 행정부처가 이전하고,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사용되었습니다. 그리고 1993년부터 본격적으로 건물을 해체하자는 논의가 있었고, 1995년 광복 50주년을 맞이하여 철거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1996년 11월에 완전 철거되어, 역사속으로 사라집니다. 중앙청이 철거되던 모습은 전국에 TV로 생중계되었습니다. 중앙청 건물이 사라진 자리에는 원래 주인인 광화문과 경복궁이 돌아왔습니다. 대한민국 국민에게 돌아온 광화문은 지금도 역사와 문화를 상징하는 중요한 문화재로 우리와 함께 하고 있습니다. <이 가이드는 한국관광공사 김경희 님의 목소리 재능 기부로 녹음되었습니다.>
대본
[김내관] 왕의 큰 덕이 온 나라를 비추는 광화문(光化門)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경복궁 남쪽의 정문인 광화문은 조선왕실의 상징적인 역할을 하는 문입니다. 조선시대에는 문을 기준으로 안 쪽은 경복궁, 바깥쪽은 ‘육조거리’라 불리는 한성부(지금의 서울시청 역할을 하는 부서)의 영역과 백성들이 생활하는 종로거리가 있었습니다. 모두가 지나다니는 중심에 있는 광화문은 다락위에 종과 북을 달아서 시간과 소식을 알려주는 역할도 했습니다. [김상궁] “문 앞에 해치(해태) 한 쌍이 마치 ‘나는 정의를 수호한다!’라고 눈빛으로 말하는 것 같아요.” [김내관] “그렇지요? 아마 이 해치가 육조거리에 있는 관리들과 임금님이 바른 정치를 하도록 지켜보고 있다-- 는 의미로 세운 거라 그런 느낌이 들 거에요.” [김상궁] “해치가 양 옆에 있으니 든든하네요.! 와- 김내관! 나 이 문 처음 지나봐요! 천장에 봉황이 그려져 있네요!” [김내관] “정말 멋지네요! 원래 광화문은 중국에서 온 사신이나 왕실가족이 공식적으로 행차할 때 이용하는 문이지요. 저도 옆 문으로는 많이 다녔는데, 가운데 문으로 들어와 본 건 처음이라 신기하네요!. 참고로, 왼쪽 문은 낙귀부서(洛龜負書)로 거북이가 그려져있고, 오른쪽 문은 하마부서(河馬負書)로 말이 그려져 있어요 [김상궁] “광화문이 2010년에 여기로 돌아오기 까지 얼마나 고생이 많았는데, 당연히 멋지게 단장해야지요.! 광화문은 일제강점기 때 조선총독부 건물에 밀려서 건춘문 근처로 갔다가, 한국 전쟁 때 폭격을 맞아 없어졌지요. 1968년에야 다시 복원을 했지만, 1990년대에 중앙청으로 불리던 조선총독부 건물이 없어지고 나서야 원래 자리로 오게 된 거잖아요. [김내관] “그래서 복원할 때 추녀마루에 잡상(어처구니)도 7개 딱! 올리고, 뒤로 보이는 북악산의 능선과 어우러지는 미적 요소도 딱! 살려놨지요! 예나 지금이나, 이 광화문이 여기에 있다는 것만으로 얼마나 마음이 벅차 오르는지, 다들 알고 있을거에요!” [김상궁] “어머, 웬일로 나랑 통했네요! 그러면, 이제 안에 가서 입장권 끊고 본격적으로 입궐해보자구요!”
대본
[김내관] 왕의 큰 덕이 온 나라를 비추는 광화문(光化門)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경복궁 남쪽의 정문인 광화문은 조선왕실의 상징적인 역할을 하는 문입니다. 조선시대에는 문을 기준으로 안 쪽은 경복궁, 바깥쪽은 ‘육조거리’라 불리는 한성부(지금의 서울시청 역할을 하는 부서)의 영역과 백성들이 생활하는 종로거리가 있었습니다. 모두가 지나다니는 중심에 있는 광화문은 다락위에 종과 북을 달아서 시간과 소식을 알려주는 역할도 했습니다. [김상궁] “문 앞에 해치(해태) 한 쌍이 마치 ‘나는 정의를 수호한다!’라고 눈빛으로 말하는 것 같아요.” [김내관] “그렇지요? 아마 이 해치가 육조거리에 있는 관리들과 임금님이 바른 정치를 하도록 지켜보고 있다-- 는 의미로 세운 거라 그런 느낌이 들 거에요.” [김상궁] “해치가 양 옆에 있으니 든든하네요.! 와- 김내관! 나 이 문 처음 지나봐요! 천장에 봉황이 그려져 있네요!” [김내관] “정말 멋지네요! 원래 광화문은 중국에서 온 사신이나 왕실가족이 공식적으로 행차할 때 이용하는 문이지요. 저도 옆 문으로는 많이 다녔는데, 가운데 문으로 들어와 본 건 처음이라 신기하네요!. 참고로, 왼쪽 문은 낙귀부서(洛龜負書)로 거북이가 그려져있고, 오른쪽 문은 하마부서(河馬負書)로 말이 그려져 있어요 [김상궁] “광화문이 2010년에 여기로 돌아오기 까지 얼마나 고생이 많았는데, 당연히 멋지게 단장해야지요.! 광화문은 일제강점기 때 조선총독부 건물에 밀려서 건춘문 근처로 갔다가, 한국 전쟁 때 폭격을 맞아 없어졌지요. 1968년에야 다시 복원을 했지만, 1990년대에 중앙청으로 불리던 조선총독부 건물이 없어지고 나서야 원래 자리로 오게 된 거잖아요. [김내관] “그래서 복원할 때 추녀마루에 잡상(어처구니)도 7개 딱! 올리고, 뒤로 보이는 북악산의 능선과 어우러지는 미적 요소도 딱! 살려놨지요! 예나 지금이나, 이 광화문이 여기에 있다는 것만으로 얼마나 마음이 벅차 오르는지, 다들 알고 있을거에요!” [김상궁] “어머, 웬일로 나랑 통했네요! 그러면, 이제 안에 가서 입장권 끊고 본격적으로 입궐해보자구요!”
대본
[김내관] 조선의 궁궐은 풍수지리, 음양오행 등 도교와 유교적 사상을 현실에 구현한 건축물입니다. 경복궁도 역시 풍수지리와 음양오행을 바탕으로 건축되었습니다. 경복궁의 중심 건물인 근정전으로 가기 위해서는 세 개의 문과 금천(錦川)을 반드시 지나가야 하는데, 금천을 건너가기 위한 다리가 바로 ‘영제교(永濟橋)’입니다. 예로부터 풍수지리적으로 좋은 집터는 ‘배산임수(背山臨水)’라 하여 뒤에 산을 두고 앞에 물을 둔 곳이 명당이라 했습니다. 산은 적을 막고 땔감과 먹을 것을 구할 수 있었고, 겨울에는 추운 바람을 막아주었기 때문에, 집 뒤에 두었습니다. 물은 나쁜 기운을 막고, 깨끗하게 씻어내는 정화의 의미가 있었습니다. 왕실 가족이 실제로 살고 있는 근정전과 내전을 집이라고 생각하면, 금천을 두어 배산임수의 효과를 낸 것이지요. [김상궁] “저기, 김내관! 저 금천 벽에 있는 건 뭔가요? 무슨 동물같이 생겼는데요??” [김내관] “바로 상상의 동물인 천록(天禄)이지요! 나쁜 기운이 들어오지 못하게 지켜보면서 궁궐과 왕을 수호하는 역할을 한답니다. 다리 난간 위에 있는 건 ‘서수(瑞獸)’라고 해서, 조선시대 상상의 동물들을 가리키는 말인데, 서수의 역할도 잡귀나 사악한 것을 물리쳐 법궁을 지키는 것이에요.” [김상궁] “들어오는 다리부터 상상의 동물들이 눈을 부릅뜨고 지키고 있으니, 정말 나쁜 기운은 들어오지도 못하겠네요.” [김내관] “이 영제교는 태조전하 때 처음 지었어요. 하지만 우리가 지나는 이 다리는 2000년대 복원공사를 진행하면서, 기존에 남아있는 영제교의 부재를 활용해 만든 것이에요. 영제교라는 이름도 세종 전하 때 집현전의 학자들이 지었는데, ‘깨끗한 물에 마음을 씻고, 백성을 편안하게 하여 태평성대를 이뤄보자~’고 생각하며 지나가라는 깊은 뜻이 있습니다.“ [김상궁] “우와- 다리를 지나며 깨끗해진 마음으로 입궐을 하는 것이니, 산뜻한 출발이네요!” [김내관] “그렇지요, 그 기분을 가득 안고 안으로 더 들어가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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