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RLENS

민영환 자결터

서울특별시 종로구 인사동5길 41 (공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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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LENS 큐레이션
외국인
Foreigner

민영환 자결터는 민영환이 을사늑약에 항거하다 자결하여 순국한 곳이다.

커플
Couple

조선말의 충신 민영환은 을사늑약의 폐기를 궁궐 앞에서 주장하다가 일본 헌병의 강제해산으로 실패하자 1905년 11월 30일 새벽 6시에 청지기의 집에서 국민, 외교사절, 황제에게 보내는 유서 3통을 남기고 자결하였다

가족
Family

순국 후 피 묻은 옷과 칼을 산청 마루방에 걸어두었는데 이듬해 5월 산청의 문을 열어보니 대나무 네 줄기가 마룻바닥과 피 묻은 옷을 뚫고 올라왔다고 한다.

솔로
Solo

사람들은 그의 충정이 혈죽으로 나타났다고 하여 이 나무를 절죽이라 하였다.

장소 소개

민영환 자결터는 민영환이 을사늑약에 항거하다 자결하여 순국한 곳이다. 조선말의 충신 민영환은 을사늑약의 폐기를 궁궐 앞에서 주장하다가 일본 헌병의 강제해산으로 실패하자 1905년 11월 30일 새벽 6시에 청지기의 집에서 국민, 외교사절, 황제에게 보내는 유서 3통을 남기고 자결하였다. 순국 후 피 묻은 옷과 칼을 산청 마루방에 걸어두었는데 이듬해 5월 산청의 문을 열어보니 대나무 네 줄기가 마룻바닥과 피 묻은 옷을 뚫고 올라왔다고 한다. 사람들은 그의 충정이 혈죽으로 나타났다고 하여 이 나무를 절죽이라 하였다. 종로구 인사동 하나빌딩 앞 민영환의 자결터에 김충헌이 글씨를 쓰고 백문기가 조각한 추모 조형물이 세워져 있다. 이 조형물에는 그의 충정이 나타났다고 하는 혈죽을 상징하는 대나무와 창호문이 조각되어 있고 자결할 때 사용한 단검과 유서 등을 배치했다.

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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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대표다리
181
대본

조선시대 대표다리 이 다리는 600여 년의 역사가 담겨있는 광통교로서, 청계천 복개공사로 묻혀있던 것을 최근에 다시 복원한 것입니다. 원래 광통교는 광교 자리에 위치하고 있었지만, 오래된 광통교를 보호하기 위해서 현재의 자리로 옮겨 놓았고, 왼쪽으로 흐르던 물길마저도 오른쪽으로 틀어놓았습니다. 그럼 이제 다리 아래쪽을 살펴보실까요? 오래된 돌들에 조각된 무늬들이 보이시나요? 신장석이라 불리는 이 무늬들은 고려 말부터 조선 초 왕비들의 무덤 속에서 볼 수 있는 특징인데요. 얼핏 보면 토끼 모양 같지만, 사실은 아래 위가 뒤집힌 부처님의 모습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왕비의 무덤돌이 다리돌로 쓰이게 된 것일까요? 사실 광통교를 세우라 명한 왕은 태종 이방원이고, 무덤돌의 주인은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의 두 번째 부인 신덕왕후입니다. 태종 이방원은 자신을 제치고, 신덕왕후의 아들인 이방석이 세자에 오르게 되자, 신덕왕후를 증오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흙으로 만들어졌던 광통교가 홍수로 무너지는 일이 생기자, 태종은 신덕왕후의 능자리의 무덤돌을 다리에 쓰도록 명했던 것이죠. 그것도 모자랐는지 무덤돌을 뒤집어서 사용하게 했습니다. 그러나 태종의 생각과는 달리 광통교는 왕의 행차나 국가적으로 중요한 외국 사신들이 꼭 이용하는 다리가 되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조선시대의 큰 명절인 정월 대보름에는 다양한 민속놀이가 열리는 장소로도 사랑받았습니다. 정월대보름은 조선시대 사람들이 1년 중 유일하게 밤에 돌아다닐 수 있었던 날인데요, 정월대보름 전날인 14일은 양반들이, 정월대보름달엔 평민들이 그리고 대보름달 다음 날에는 아녀자들이 다리밟기를 하러 광통교에 모여들었다고 합니다. 다리밟기는 다리를 밟으면 다리에 병이 나지 않는다는 믿음 때문에 시작되었는데요, 나중에는 도성 내 모든 다리를 밟는 형태로 발전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명종 때에는 다리밟기를 핑계 삼아 남녀가 몰래 만나는 일이 많아져서 다리밟기를 금지시키기도 했답니다. 옛 조상님들이 건강을 위해 걸었던 광통교에서 우리도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 다리밟기를 해보는 건 어떨까요?

정조의 수원행차를 그린 정조반차도
202
대본

정조의 수원행차를 그린 정조반차도 멀리서도 확연히 눈에 띄는 저 벽화는 정조반차도입니다. 반차도는 길이 192m에, 사용된 타일 수가 4,960장이나 되는 세계 최대 규모의 도자벽화입니다. 반차도는 정조가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회갑잔치와 아버지 사도세자가 묻혀있는 현륭원에 참배를 하기 위해 수원화성으로 가는 모습을 그린 그림입니다. 이 반차도는 수선전도에서 시작합니다. 수선전도는 김정호가 직접 제작한 서울지도로 서울의 거리와 도로 시설 등이 상세하게 묘사되어 있으며, 현재의 지도와 비교해도 큰 차이가 없습니다. 그럼, 이제 반차도를 살펴볼까요? 행렬의 제일 앞부분을 보면 말을 탄 경기감사가 길을 안내하는 모습이 보이고요, 그 뒤로는 반차행렬을 총괄하는 우의정 채제공을 비롯해 84명의 별기대와 군관, 군인들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뒤로는 정조의 어머니 혜경궁 홍씨가 탄 가마가 보입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정조임금은 어디 계신 걸까요? 아쉽게도 정조 임금은 없습니다. 정조임금의 좌마만 그려져 있을 뿐이죠. 조선시대에는 왕의 옥체와 얼굴을 귀하게 여겨서 그림에 함부로 그려 넣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 반차도에서 정조를 찾아 볼 수 없는 것이죠. 왕의 얼굴은 살아계실 때 왕의 초상화라고 할 수 있는 어진에 그려졌고 왕이 세상을 떠난 후에야 공개되었습니다. 아직 끝이 보이지 않는 정조반차도에는 1,779명의 인원과 779필의 말이 표현되어 있는데요, 실제 행렬의 규모는 6,000여명에 달했고, 선두가 노량진 나루에 도착했는데도 행렬의 끝은 아직 창덕궁에서 길을 나서고 있을 정도로 아주 긴 행렬이었습니다. 또한 한강을 건너기 위해서 수많은 배들을 엮어 다리를 만들어 건넜다고 합니다. 무사히 수원화성에 도착한 정조는 아버지 사도세자의 묘소에 들러 성묘를 하고,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회갑 잔치를 열었습니다. 반차도는 그 당시에 가장 뛰어난 화가였던 김홍도의 지휘 아래, 최고의 화원들이 참가한 작품이었습니다. 반차도는 전체 대열을 뒤에서 본 모습으로 세밀하게 표현되어 있어서, 행렬에 참가한 자들의 위치를 한눈에 파악할 수 있도록 만들어졌습니다. 한명 한명 놓치지 않고 세밀하게 그려 넣어 당시 행차의 격식과 복식, 의상, 악대구성 등을 살필 수 있는 귀중한 역사적 자료인 반차도. 정조의 효심마저 엿볼 수 있는 소중한 그림입니다.

새해를 알리는 보신각 범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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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본

새해를 알리는 보신각 범종 지금 계신 이곳 종로의 이름은 어디에서 나왔을까요? 바로 보신각에서 유래되었습니다. 보신각의 원래 이름은 종각으로, 1895년에 대한제국의 황제인 고종이 보신각이라 이름 지은 것이죠. 그런데 고종은 무엇 때문에 종각이라 부르던 이 누각의 이름을 보신각으로 바꿨을까요? 이는 조선이 유교사상을 바탕으로 세워진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조선은 유교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인·의·예·지·신의 다섯 가지 개념을 중요하게 여겼고, 인•의•예•지를 따서 흥인문, 돈의문, 숭례문, 홍지문으로 나뉘고, 조선 말기에 4대문의 기를 보충하기 위해 보신각을 세운 것입니다. 그런데 사실 누각인 보신각과 보신각 안에 걸려 있는 범종은 한 쌍이 아니었습니다. 원래 보신각 범종은 조선을 세운 태조 이성계의 두 번째 부인 신덕왕후의 능 곁에 있었는데요. 이를 탑골공원 자리에 있었던 원각사로 옮겨놓았다가, 임진왜란 후에 원래의 종각과 종이 불타면서 보신각 범종을 종각에 걸게 된 것이죠. 하지만 이마저도 한국전쟁 때 소실되어 1986년 새로이 종을 제작하여 걸게 되었습니다. 보신각 범종은 조선시대부터 새벽 4시에 33번의 종소리로 날마다 아침을 알리고 매일 밤 10시에 28번의 종소리로 밤을 알렸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도성 내에 큰 화재가 나도 종을 쳐서 모든 백성들에게 알렸습니다. 현재는 새해 첫날 0시에 33번의 종소리를 울려 온 국민의 새로운 출발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보신각 타종 행사는 새해 첫째 날 이외에도 1월 2일부터 12월 24일까지 월요일을 제외한 매일 정오에 타종행사를 진행합니다. 서울시청 홈페이지를 통해 신청하면 정해진 날 매일 낮 12시에 보신각의 종을 12번 치는 타종체험을 할 수 있는데, 덕수궁에서 교대식을 마친 당직 수문장과 군사들도 참여합니다. 타종체험 후에는 타종관들과 기념촬영도 할 수 있고, 타종체험증서도 받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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