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RLENS

팔색찬란

서울특별시 종로구 효자로13길 45 (효자동)

02-723-0300

공식 홈페이지 https://cwdsarangcha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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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가지 관점으로 본 이 장소

KORLENS 큐레이션
외국인
Foreigner

문화체육관광부는 이달부터 12월까지 청와대 사랑채 1층에서 특별전 '팔색찬란 : K로 가득한 지역'을 개최한다.

커플
Couple

이번 전시는 '우리가 이야기하는 케이(K)의 뿌리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에서 출발한다.

가족
Family

한국의 역사와 문화예술, 지역 고유의 문화자산이 K-콘텐츠로 이어지고 확장되는 과정을 지역 콘텐츠 전시와 미디어아트를 통해 입체적으로 선보인다.

솔로
Solo

특히 대한민국의 다양한 지역에 축적된 문화적 자산이 오늘날 K-컬처의 기반이 됐음을 조명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장소 소개

문화체육관광부는 이달부터 12월까지 청와대 사랑채 1층에서 특별전 '팔색찬란 : K로 가득한 지역'을 개최한다. 이번 전시는 '우리가 이야기하는 케이(K)의 뿌리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에서 출발한다. 한국의 역사와 문화예술, 지역 고유의 문화자산이 K-콘텐츠로 이어지고 확장되는 과정을 지역 콘텐츠 전시와 미디어아트를 통해 입체적으로 선보인다. 특히 대한민국의 다양한 지역에 축적된 문화적 자산이 오늘날 K-컬처의 기반이 됐음을 조명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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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관광공사 오디(Odii) 음성 해설
김해경이 이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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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가이드는 김영하님의 목소리로 녹음 되었습니다. 일제강점기, 독특한 문학세계로 유명했던 문학가 이상은 어린 시절 큰아버지에게 입양돼 통인동 토박이로 자랍니다. 그의 큰아버지의 집은 원래 거대한 한옥이었는데, 나중에 이상이 물려받았고, 사업에 실패하자 집을 팔게 됩니다. 팔린 집은 5개의 땅으로 나뉘어서 계속 주인이 바뀌어 지금에 이르렀습니다. 현재 이상의 집이 있는 곳은 그 5개의 땅 중 하나입니다. 이상의 본명은 김해경으로, 3살 때 이 집에 양자로 들어왔습니다. 그의 큰아버지는 아들이 없어서 이상을 입양했는데, 재혼한 큰어머니도 이상에게 애정이 없었습니다. 이상은 어렸을 때부터 그림에 특별히 재능을 보였지만, 큰아버지는 돈을 벌 수 있는 건축기사로서의 길을 강요했습니다. 결국 이상은 경성고등공업학교 건축과에 진학해 건축기사가 됩니다. 조선총독부에서 건축기사로 취업한 이상은 필명을 사용해서 글을 썼는데, 주로 자신의 정체성 혼란과 시대적인 혼란을 문학작품으로 풀어냈습니다. 그의 필명인 ‘이상(李箱)’도 한글로 읽을 때 여러 가지 의미를 지녔기 때문에, 천재적인 재능을 갖춘 사람의 좌절과 소망을 담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난해한 문학세계와 고뇌하는 이미지로 각인된 이상이지만, 자신의 진짜 가족에게는 효도하는 아들이자 든든한 큰오빠였다고 합니다. 여동생의 증언에 의하면, “큰오빠는 어머니에게 늘 공손했고, 뭘 못해드려서 애태우곤 했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상은 여동생을 “나의 유일한 이해자”라고 하며 아꼈다고 합니다. 이 집은 이상의 어린 시절의 어둠과 희망을 품고 있는 공간입니다. 전시실 제일 안쪽, 어두운 공간에서 그의 일생을 담은 작은 이야기를 만날 수 있지요. 계단의 끝에 무거운 미닫이 문을 열면, 이상의 집 마당과 지붕이 보입니다. 자유로의 출구를 찾기 위해 끊임없이 고민한 문학가의 집에서, 이상을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엽전 하나로 통하는 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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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가이드는 김영하님의 목소리로 녹음 되었습니다. 통인동의 골목 안쪽, 동네 살림을 책임지는 통인시장이 있습니다. 통인시장이 언제부터 이 골목에 자리잡았는지는 생각보다 쉽게 알 수 있는데, 이 시장에서 대대로 장사해온 분들이, 그 시절의 이야기를 해주시기 때문입니다. 한국전쟁이 일어난 1950년대, 서울은 그야말로 아수라장, 아비규환이었습니다. 폭격과 군인들이 지나간 자리는 초토화 되었지만, 경복궁과 중앙청 등 큰 건물들이 있었던 종로일대는 민가들이 일부 살아 남았습니다. 하지만 돌아온 사람들, 휴전선이 생기면서 돌아가지 못한 사람들, 가족의 생사를 들을 수 있을까 해서 서울에 남은 사람들이 이 곳에 정착했습니다. 사람이 몰리자 자연스럽게 여러 가지를 사고 팔았고, 한 골목에 모이면서 통인동에 있는 ‘통인시장’이 되었습니다. 통인시장에서는 맛있는 음식도 팔고, 튼튼한 물건도 팔았지만, 무엇보다 ‘소식’을 주고받는 사람이 많았다고 합니다. 전쟁 때 헤어진 가족의 생사, 남겨두고 온 가족의 생사. 시장을 오고 가는 많은 사람들은 고향 생각나는 음식 앞에서 두런두런 이야기를 주고 받으며 모두의 소식이 통하는 시장이 되었습니다. 경복궁 옆 동네, 청와대에서 가까운 동네가 되면서 이 곳은 개발제한 구역이 되었습니다. 어느날부터 동네에 사람들이 떠나고, 시장을 누비던 상인들도 하나 둘 떠나며 빈 가게도 늘어났습니다. 그래서 시장을 지키고 싶었던 상인들은 고객을 다시 불러오기 위한 아이디어를 냈습니다. 경복궁 옆에 있다는 장점을 살려서, 조선시대 시장처럼 엽전으로 사용하는 것이지요. 엽전으로 시장 안에 있는 가게에서 음식을 사서, 도시락에 가득 담으면 골라먹는 재미가 있는 한 끼 식사가 완성되는 겁니다. 통인시장 중간에 있는 ‘엽전 도시락 카페’에 가면 현금을 엽전과 도시락 식판으로 바꿔줍니다. 식판을 들고 시장을 누비다 보면 기름떡볶이, 닭강정, 김치, 샐러드까지 식판 가득 담아와서 먹을 수 있습니다. 맛도 가득 담아 먹고, 엽전으로 조선시대 체험도 해 볼 수 있는 문화와 맛이 공존하는 통인시장입니다.

이조판서댁 6형제의 애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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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가이드는 김영하님의 목소리로 녹음 되었습니다. 일제강점기, 집안에서 독립운동가가 한 명도 나오기 어려운 시기에 6형제가 모두 독립운동에 헌신한 집이 있습니다. 바로 우당 이회영선생의 가문입니다. 그의 아버지는 이유승으로, 고종대에 이조판서를 지낸 선비입니다. 이조판서는 지금으로 치면 장관인데, 관리를 채용하는 이조를 통솔하는 직책입니다. 이회영 선생은 6형제 중 넷째로, 1907년 만국평화회의에 헤이그 특사를 보낼 계획을 세운 사람 중 한 명이었습니다. 헤이그 특사가 실패하고, 1910년 한일 강제 병합조약이 체결되자, 형제들을 불러 회의를 시작합니다. 6형제는 나라를 되찾기 위해서는 강한 군대를 가져야 한다고 생각했고, 이를 실천하기 위해 만주로 이주해 학교를 세우자 결의합니다. 그래서 갖고 있던 모든 재산을 처분해서 현금과 식량을 마련하고, 따르고자 하는 모든 식솔을 챙겨 만주로 떠납니다. 그들이 처분한 땅은 대부분 서울 명동과 종로 일대의 땅이었는데, 현재 가격으로 환산하면 약 600억원 정도의 어마어마한 금액이었습니다. 만주 삼원보에 정착한 6형제는 독립운동가를 양성하기 위해 ‘신흥강습소’를 세워, 조선인을 교육하고 훈련합니다. 나중에는 많은 사람들이 교육을 받길 원하여 ‘신흥무관학교’로 확장하게 됩니다. 많은 학생들을 교육하다 보니 자금이 부족해졌고, 이회영선생의 부인이 삯바느질로 독립자금을 모아 보태는 상황이 매일이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 기간도 잠시. 일본군의 탄압이 심해지면서, 1920년 신흥무관학교는 문을 닫게 됩니다. 이 후에도 이회영 선생은 항일투쟁을 이끌었는데, 1932년, 중국에서 일본군에 체포되어 고문을 당하다가 같은 해 11월에 순국합니다. 그의 형제들도 독립운동을 하다가 순국하거나, 가난과 배고픔에 시달리다 생을 마감하게 됩니다. 유일하게 살아 남은 다섯째 이시영만이 광복된 조국땅을 밟을 수 있었습니다. 우당 이회영 선생과 가족들의 이야기는 후손들에게 전해지고, 신흥무관학교 출신의 독립군들이 용감하게 활동하면서 6형제의 의지를 이어나갔습니다. 광복을 맞이한 조국의 사람들은 6형제를 잊지 않았고, 그 뜻을 기리기 위해 ‘우당기념관’을 세웠습니다.

대한민국 국민에게 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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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가이드는 김영하님의 목소리로 녹음 되었습니다. 광복을 맞이한 한반도의 남쪽에는 민주주의를 지향하는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었습니다. 그리고, 대한민국 정부요인과 대통령이 선출되었습니다. 국가의 대표인 대통령이 머무를 공간이 필요해 진 상황에서, 경복궁 뒤에 있던 ‘경무대’가 선택되었습니다. 경복궁의 북쪽은 조선 태조가 경복궁을 창건한 이후, 시대에 따라 여러 건물이 들어섰습니다. 일제 강점기에는 이 곳을 총독 관저로 사용했고, 광복 이후 미군정시대에는 미군 사령관이 사용하는 관사가 되었습니다. 대한민국정부가 수립된 이 후, 이승만대통령이 이곳을 대통령 집무실 겸 관저로 사용하면서, 경복궁의 ‘경’자와 신무문의 ‘무’자를 따와 ‘경무대’라 부르게 된 것 입니다. 그렇지만, 이승만대통령의 독재가 길어지면서, 경무대는 독재의 기관이라는 이미지가 생깁니다. 2대 대통령이 된 윤보선 대통령은 독재의 이미지를 없앤 새로운 이름을 생각하는데, 건물의 기와가 푸른색인 것에서 착안해 이름을 ‘청와대’로 바꿉니다. 이 후 청와대를 유지하기 위한 여러 건물들이 주변으로 들어섭니다. 무궁화동산은 청와대의 바로 옆에 있어서 오랜 시간 동안 일반인의 출입이 금지되어 있었습니다. 특히 이곳에는 ‘안가’라 불리는 안전가옥이 있었는데, 군사독재정권 시절, 대통령을 보호한다는 의미의 시설이 있었던 곳입니다. 1993년 2월, 민주적인 투표를 통해 14대 대통령이 된 김영삼 대통령이 안가를 없애고, 공원을 조성하여 개방합니다. 무궁화동산의 입구 표지석에는 ‘새로운 국민시대의 개막과 함께 열린 이 공원이 청와대를 찾는 여러분의 쉼터로, 그리고 어려웠던 민주화의 길을 되돌아 보는 역사의 배움터로 사랑 받기를 바랍니다’ 라는 문구가 있습니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개방되지 않았던 공간이, 대한민국의 주인인 국민들에게 돌아온 상징적인 공간이 된 것 입니다. 무궁화동산은 여름에 가면 활짝 핀 무궁화를 볼 수 있습니다. 만개한 무궁화동산은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든지, 언제든지 갈 수 있는 공간이 되었습니다. 공원 중앙에 가면, 다양한 무궁화의 종류를 설명한 안내판이 있는데, 흰색, 분홍색, 다홍색 등 색상이 다양하지만, 암술의 머리가 5개이고, 새로 자란 잎에서만 꽃이 핀다는 공통적인 특징을 갖고 있습니다. 한반도 어디에서나 잘 피어나는 꽃, 무궁화동산에는 대한민국 국민의 돌려받은 자부심도 함께 피어있습니다.

경복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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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복궁은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가 현재의 서울, 한양으로 천도를 결정하면서 건설한 조선왕조 최초의 궁궐입니다. 임금이 사는 궁궐들 가운데 가장 으뜸이 되는 궁궐을 법궁이라고 하는데 경복궁은 조선왕조 최초이자 제일의 법궁입니다. 경복궁은 태조 이성계를 도와 조선을 세운 정도전이 붙인 이름으로‘새 왕조가 큰 복을 누려 번영할 것’이라는 뜻이 담겨 있어요. 경복궁은 조선의 으뜸 궁궐답게 짓는 기간이 길었습니다. 처음에는 꼭 필요한 건물만 짓고 사용했지만, 이후 지속적으로 늘리거나 고쳐지어 법궁의 모습을 완성해 나가기까지 무려 30여 년이라는 시간이 걸렸지요. 경복궁은 조선 왕조와 더불어 여러 번의 시련을 겪었습니다. 1592년 임진왜란으로 인해 주요 전각이 대부분 사라질 정도로 큰 피해를 입었고, 이후 300여 년 가까이 방치되었습니다. 1865년 흥선대원군 때가 되어서야 다시 지어질 수 있었죠. 그러나 일제에 의해 명성왕후가 시해되는 을미사변과 이로 인해 고종 임금이 러시아 공사관으로 피신을 가게 되어 경복궁은 한동안 주인을 잃은 빈 궁궐이 되기도 했습니다. 대한제국이 망하고 일제에 의해 경복궁은 많이 훼손되어 광화문이 옮겨지고 궐내각사가 철거되었으며, 특히 조선총독부 건물이 세워짐으로써 경복궁을 가리게 되어 버렸습니다. 때문에 많은 건물이 기존의 모습을 잃어버렸지만 이후 복원 사업이 계속된 덕분에, 궁궐의 위엄과 당당함은 지금도 느낄 수 있답니다. 경복궁은 정문인 광화문부터 왕의 침실인 강녕전, 왕비의 침실인 교태전까지 일직선을 이루고 있습니다. 광화문과 근정전을 잇는 일직선상의 길은 왕이 다니는 길이라고 하여‘어도’라고 불렀으며, 기하하적 질서에 따라 대칭적으로 건축되었습니다. 왕의 위엄과 질서를 잘 느낄 수 있지요. 그러나 중심부를 제외한 건축물들은 비대칭적으로 배치되어 변화와 통일의 아름다움을 함께 갖추고 있습니다. 우리의 역사와 아름다움이 깃든 경복궁의 구석구석을 살펴보며 격조 높은 조선 왕실 문화를 느껴 보시는 건 어떨까요? 수문장 교대 의식과 경회루 특별 관람도 진행하고 있으니 함께 관람하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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