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학정
서울특별시 종로구 사직로9길 15-32 (사직동)
4가지 관점으로 본 이 장소
KORLENS 큐레이션황학정(黃鶴亭)은 1899년(광무 3) 고종 황제의 명으로 경희궁 회상전 북쪽에 궁술을 연습하도록 지은 사정(射亭, 활터에 있는 정자)이다.
1894년 갑오개혁 이후 군대 제식무기에서 활이 제외되면서 전국의 사정이 거의 사라졌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고종이 ‘국민들의 심신단련을 위하여 궁술을 장려하라’는 어명을 내렸고, 궁궐 내에 황학정을 지어 일반 백성들에게 개방하였다.
고종은 이곳을 자주 방문하여 직접 활쏘기를 즐겼다고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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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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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관광공사 오디(Odii) 음성 해설대본
이 가이드는 김영하님의 목소리로 녹음 되었습니다. 조선시대 중인들이 모여 살던 서촌은 다양한 시대를 대표하는 한옥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습니다. 그 중 ‘홍건익 가옥’으로 불리는 이 집은, 1930년대에 지어진 근대 한옥입니다. 홍건익에 대해서는 남은 자료가 거의 없지만, 이전에 있던 집을 헐고, 지금의 집을 지은 사람이기 때문에 그의 이름이 붙었습니다. 홍건익이 살기 전. 이 곳에는 고영주라는 역관과 그의 가족들이 살았다고 합니다. 고영주의 집안은 아버지, 형제, 조카 3대가 역관으로 활동했습니다. ‘역관’은 지금의 통역사, 외교관과 같은 역할을 하는데, 외국인을 직접 만나 교류할 수 있었고, 다양한 문화와 새로운 정보를 빠르게 알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중인이라는 신분에도 불구하고, 부와 명예를 가질 수 있었던 직업이었습니다. 고영주는 중국어(한학)를 배워 활동한 역관이었습니다. 역관으로 더 유명한 건 그의 형제들인데, 둘째 동생인 고영희는 일본어 역관으로, 1876년 강화도 조약 이후 일본에 파견된 수신사의 일원이었습니다. 막내인 고영철은 중국에서 영어를 배운 후 미국에 보빙사(사절단)로 갔습니다. 고영주는 1910년대에 이 땅을 다른 사람에게 팔았고, 시간이 지나 홍건익이 구입하게 되었습니다. 홍건익이 집을 지었을 때는 더 큰 규모였지만, 지금은 절반만 남았습니다. 홍건익 가옥의 일각문으로 들어가면, 집 주인의 취향과 감각이 보입니다. 문간채와 사랑채는 깔끔하게 단장한 느낌이라면, 안채는 좀 더 편안한 느낌입니다. 안채 대청마루 아래쪽에는 태극기에도 쓰이는 팔괘 모양의 구멍이 있는데, 구멍을 뚫어 바람이 통하게 하는 기능적인 면도 있습니다. 근대 한옥답게 문이나 창이 유리로 되어 있는데, 집안의 부를 드러내는 방법 중 하나였습니다. 안채 왼쪽으로 가면 별채와 정원으로 가는 작은 문이 나옵니다. 들어가자마자 보이는 것은 큰 우물인데, 당시에 개인의 집 안에 우물을 만들 정도면 엄청난 부자였다고 합니다. 별채는 작은 도서관으로 사용 중인데, 누구나 무료로 이용할 수 있습니다. 읽고 싶은 책을 골라 방석에 앉으면 정원의 풍경도 보이고 책도 볼 수 있습니다. 이 집의 전경을 보고 싶다면, 정원 꼭대기로 올라가면 됩니다. 별채, 안채, 사랑채, 문간채의 지붕들이 이어져 현재의 서촌 건물들과 어우러지는 풍경이 아름답지요. 정원 벤치에 앉아서 이 소담한 풍경을 느긋하게 즐겨보시기 바랍니다.
대본
이 가이드는 김영하님의 목소리로 녹음 되었습니다. 한국 동양화의 거장으로 평가 받는 남정 박노수 화백은 1973년, 옥인동의 한 집으로 이사를 오게 됩니다. 프랑스양식의 외관을 가진 이 집은 아름다운 정원과 독특한 내부로 화가의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이 집의 외관은 프랑스식, 내부는 일본식과 한국식, 중국식 건축기술이 모두 들어간 독특한 양식을 갖추고 있습니다. 원래 주인은 바로 친일파 윤덕영의 딸입니다. 윤덕영은 딸을 매우 아꼈는데, 가장 좋은 집을 주고 싶은 마음에 당대 최고의 건축가 박길룡에게 설계를 맡겨 집을 완성합니다. 기와집과 초가집 사이에서 2층의 양옥집은 눈에 띄었습니다. 윤덕영의 서양식 저택인 벽수산장이 화재로 소실된 후에는 더 두드러져 보였다고 합니다. 광복 후 친일파의 재산이 모두 환수되면서, 이 집의 주인은 계속 바뀌다가 결국 박노수 화백의 가족이 살게 되었습니다. 박노수 화백은 이 집에서 생을 마감했는데, 이후 종로구에서 집을 매입해 2013년부터 일반에 공개되고 있습니다. 박노수 미술관은 화백의 그림과 생전에 모은 수집품, 직접 사용하던 도구들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전시 내용은 매년 바뀌지만, 박노수 화백이 사용하던 유품, 수석들은 복도와 정원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박노수 화백은 수석을 모으는 취미가 있었는데, 돌 하나에 자연의 모든 모습이 담겨 있어, 그림의 영감을 받는 원천이라 했습니다. 박노수 미술관의 내부는 촬영이 불가능 합니다. 대신, 외부와 정원은 촬영이 가능합니다. 80년이 넘은 오래된 집이기 때문에, 내부를 둘러볼 때 마룻바닥이 삐걱이는 소리가 나고, 계단도 조심조심 올라가야 합니다. 하지만 세월만이 줄 수 있는 소리와 분위기는 이 집의 신비로움을 더해줍니다. 이 곳에 와본 사람들이 극찬한다는 정원은 집을 둘러싼 작은 규모이지만, 수석과 잘 관리된 나무들을 볼 수 있습니다. 선과 여백, 구도를 잘 구현해냈던 박노수 화백의 그림과 그에게 영감을 주던 자연은 정원에서 표현되어 있지요. 찬찬히 둘러보면서 주인을 닮아간다는 집의 모습을 감상하시기 바랍니다.
대본
이 가이드는 김영하님의 목소리로 녹음 되었습니다. 박노수 미술관에서 수성동 계곡으로 올라가는 골목길, 윤동주 시인이 하숙했다고 알려진 장소가 있습니다. 지금은 일반 가정집으로 바뀌고, 기둥에 붙은 팻말만이 그 흔적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윤동주 시인은 북간도 출신으로, 고등교육을 받기 위해 1938년부터 1942년까지 약4년 동안 서울(당시 경성)에 머무릅니다. 원래는 학교 기숙사에서 생활했지만, 3학년 때 소설가 김송의 집에서 정병욱이란 후배와 함께 하숙생활을 시작합니다. 정병욱의 회고록에는 이 시기에 윤동주와 하숙 했던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윤동주와 정병욱은 기숙사에서 나와 하숙할 집을 찾고 있었습니다. 마침, 하숙생을 구한다는 광고를 보게 되어 직접 찾아갔는데, 그 집이 평소에 존경하던 작가 김송의 집이었습니다. 그들은 이 집에서 하숙하기로 결정했고, 머무르는 동안 윤동주는 아침 일찍 인왕산에 올라 사색을 하기도 하고, 흐르는 계곡물 아무데서나 세수를 했다고 합니다. 함께 저녁을 먹으며 집 주인 김송과 문학적인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습니다. 이 집의 주인인 김송은 함경도 출신의 항일작가였는데, 일본 경찰의 ‘요시찰 인물’ 중 하나였습니다. 그래서 거의 매일 저녁마다 형사가 찾아와 집안을 뒤지고, 윤동주가 읽는 책의 제목을 모두 적어갔습니다. 어떤 날은 모든 짐을 검사해 편지를 뺏어가는 일도 있었다고 합니다. 집주인인 김송은 이런 부분을 미안하게 생각했고, 윤동주와 정병욱은 안전을 위해 가을학기가 시작될 쯤, 새로운 하숙집으로 이사했습니다. 윤동주가 옮긴 집은 북아현동이었는데, 이 곳에는 또 한 명의 유명문인인 정지용 시인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윤동주의 고종사촌인 송몽규도 같은 동네에 머무르고 있어서, 유학 전까지 북아현동에서 머무르게 됩니다. 김송의 하숙집에서 머무르는 동안, 윤동주는 <또 다른 고향>이라는 시를 썼습니다. 시의 내용은 실제 자신의 경험과 시대적으로 힘든 현실을 반영한 시로 알려져 있습니다. <또 다른 고향>을 읊으면서, 윤동주가 오고 갔을 골목길을 산책해보시기 바랍니다.
대본
딜쿠샤(테일러가옥) 인왕산으로 이어진 한양도성길에 오르면 오밀조밀 자리 잡은 가옥 사이에 붉은 벽돌로 지은 서양식 이층집이 눈에 띕니다. ‘딜쿠샤’라 불리는 이 집은 지하 1층, 지상 2층 구조로서, 남루하긴 해도 묵직한 시간의 깊이가 느껴지는 것이 주변의 여느 가옥과 다른 인상입니다. 실제로 이 집은 일대에서 처음 세워져 90여 년을 견딘 근대 건축물입니다. 딜쿠샤는 3.1운동 소식이 전 세계에 알려진 진원지로서 사연은 이렇습니다. 딜쿠샤는 1923년 미국인 기자 앨버트 테일러가 지었습니다. 한국 독립운동에 관심이 많던 그는 1919년 AP통신사 서울 특파원으로 활약하며 3.1운동을 뉴스로 타전해 세계에 알린 인물입니다. 그는 이 일로 6개월간 서대문형무소(현재 독립공원)에 갇히기도 했으며 앨버트는 출소 후 딜쿠샤를 짓고 1942년 일제에 추방될 때까지 머물렀습니다. 아버지를 따라 조선에 온 그는 ‘조선’을 고향이라고 여겼습니다. 그는 경성 곳곳을 다니며 사진을 찍던 어느 날 인왕산의 한양도성길을 걷다가 산속에서 커다란 은행나무를 발견합니다. 그 은행나무가 예뻐 그 옆에 지은 집이 딜쿠샤 입니다. 앨버트가 3.1운동을 세계에 알린 사연도 흥미롭습니다. 그는 아들 브루스 테일러가 태어난 날, 아기와 아내를 만나기 위해 세브란스병원에 갔습니다. 당시 이 병원에선 독립선언서 인쇄가 한창이었습니다. 일본 경찰이 이를 간파하고 병원에 들이닥치자 간호사들이 브루스의 요람 밑에 독립선언서를 숨겼고, 앨버트가 발견했습니다. 이날이 3.1운동 하루 전입니다. 그는 일본 경찰의 눈을 피해 독립선언서를 빼돌리고 이를 보도했습니다. 그는 딜쿠샤에 살며 경성에 거주하던 외국인 선교사와 사업가들을 초대해 모임을 열고 정세를 논의했습니다. 앨버트는 강제 추방당한 뒤 1948년 미국에서 생을 마쳤습니다. 그는 유언에 따라 한국의 양화진에 묻혔습니다. 브루스 테일러는 2006년 한국을 방문해 아버지의 무덤이 있는 양화진과 딜쿠샤를 둘러봤습니다. 그 전에 딜쿠샤는 <대한매일신보> 사옥이라거나 선교사의 집이라는 등 추측이 난무했지만, 그의 방문으로 딜쿠샤의 실체가 밝혀졌습니다. 건물 맞은편에는 권율 장군이 심었다고 전해지는 은행나무가 당당한 자태로 서 있으며 문화재 전문가들은 이곳을 권율 장군 집터로 추정합니다.
대본
"3코스 이방인의 은행나무 길 근대 우리나라에 살았던 외국인 이야기 (안내) 성우 김보민 (배역) 메리 린리테일러(딜쿠샤의 주인/남편 알버트테일러) 안녕하세요? 저는 종로 모던길 3코스 이방인의 은행나무길을 안내하게 된 메리 린리 테일러입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목소리를 듣고 알아채신 분도 계실 것 같은데요, 저는 딜쿠샤에 살았던 영국인입니다. 딜쿠샤는 종로에서 제법 유명하다고 들었습니다. ‘이방인의 은행나무길’은 저를 비롯한 이방인들, 100여 년 전 당시 조선 사회를 깊이 체험했던 인물들의 흔적을 찾아가는 코스입니다. 어떤 분은 탁월한 업적을 내기도 했습니다. 사실 그분들이 이 길을 안내해야 하는데 영광스럽게도 제가 안내자가 되었습니다. 아, 먼저 제 소개를 해야겠네요. 저는 영국에서 나고 자랐습니다. 집안의 반대를 무릅쓰고 배우가 되어 세계 곳곳을 찾아 공연하던 중에, 일본에서 미국인 사업가 알버트를 만나 결혼하게 됐고요, 1917년 고요한 아침의 나라, 조선으로 건너오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1917년부터 1942년까지 조선에서 살았는데요, 태평양 전쟁이 일어나 추방되고 말았습니다. 저와 남편은 조선을 무척 사랑했습니다. 특히 알버트는 1896년부터 금광기술자인 아버지를 따라 조선으로 건너와 광산업과 무역업에 종사했습니다. 그에게 조선은 생애 대부분을 보낸 특별한 곳이었죠. 그래서 우리에게 일제의 강제 추방은 단순히 삶의 터전을 잃는 것 이상의 비극적인 일이었습니다. 추방을 거부하던 알버트는 서대문 형무소에서 6개월이나 옥고를 치렀고요, 같은 기간 저는 가택연금을 당했죠. 끔찍한 경험이었습니다. 결국 알버트의 광산을 헐값에 넘기고 어렵게 미국으로 가야만 했습니다. 흠, 어떤 면에서는 저와 알버트에게는 오히려 미국이 타향처럼 느껴졌습니다. 1948년 미국에서 알버트가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나고, 저는 알버트의 유언에 따라 그의 유해를 한국의 양화진 외국인 묘지, 그의 아버지 곁에 묻었습니다. 조선을 떠났던 일, 남편의 유해를 들고 다시 한국을 찾았던 일들을 떠올리니 마음이 아프네요. 우리가 조선에서 보낸 26년은 너무나 행복한 시간이었어요. 공사관길 주변에 모여 살던 여러 나라 사람들과 함께 했기 때문이었죠. 조선 사람들에게 우리는 이방인이었을지 모르지만 우린 이곳을 우리의 집으로 생각했으니까요. 그럼, 우리의 행복했던 시간을 만나러 가 볼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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