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강영당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부소로 15
4가지 관점으로 본 이 장소
KORLENS 큐레이션부여동헌 옆에 있는 홍가신·허목·채제공의 영정을 봉안하고 제사를 모시는 곳이다.
이 건물은 원래 조선말 부여현의 관아 건물이던 것을 1971년 신축하여 이들을 모신 것이다.
동강영당 주변으로 부여동헌을 비롯하여 부여관북리유적, 부여객사, 사비도성가상체험관이 있어 연계 방문하기 좋다.
그림, 글씨, 문장에도 능하였으며 특히 전서에 뛰어나 동방 제1인자라는 찬사를 받았다.
장소 소개
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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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관광공사 오디(Odii) 음성 해설대본
백마강 남쪽 부소산을 감싸고 쌓은 부소산성은 백제 사비시대의 도성입니다. 백제시대에는 사비성 또는 소부리성으로 불리다가 현재는 성이 위치한 산의 이름을 따서 부소산성이라 부르고 있지요. 부소산성은 웅진에서 사비로 도읍을 옮겼던 성왕 시기에 축조된 것으로 보이나, 이보다 먼저 동성왕 때 이미 산 정상을 둘러쌓은 테뫼식 산성이 축조되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후 사비 천도 시기를 전후하여 개축되었고, 무왕 경에 지금의 모습으로 완성한 것으로 짐작되지요. 부소산성에는 수많은 백제 여인들이 꽃잎처럼 떨어져 죽음으로 절개를 지킨 낙화암을 비롯하여 해맞이하는 영일루, 성충.흥수.계백의 백제 충신을 모신 삼충사, 곡식 창고터였던 군창지 등 백제의 역사와 백제 왕실의 이야기가 곳곳에 배어 있습니다. 성 안에 군창터와 건물터 등이 있는 것으로 보아, 급하거나 비상시에는 군사적 목적으로 이용하고, 평상시에는 백마강과 부소산의 아름다운 경관을 이용하여 왕과 귀족들이 즐기던 곳으로 쓰인 듯합니다. 이러한 부소산성은 사비시대의 중심 산성으로서 백제가 멸망할 때까지 수도를 방어한 곳으로 역사적 의의가 있으며, 백제의 성곽 발달사를 보여주는 데에도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는 곳입니다.
대본
백제의 충신 성충, 흥수, 계백을 아시나요? 부소산성을 걷다 보면 이 3명의 충신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곳을 만날 수 있는데요. 바로 삼충사입니다. 삼충사의 사당 안쪽을 보면 세 충신의 초상화를 볼 수 있어요. 왼쪽부터 차례로 성충, 흥수, 계백이죠. 먼저, 성충은 백제의 마지막 임금인 의자왕 때의 충신입니다. 당시 지금의 장관에 해당하는 좌평 벼슬을 지낸 인물로 잘못된 정치를 바로잡기 위해 애를 쓰다가 옥에 갇힌 인물이죠. 성충은 옥중에서 단식을 하면서 죽음에 이르기까지 임금을 생각했습니다. 죽기 직전, 곧 전쟁이 일어날 것을 예감하여 임금에게 충언을 올렸지만 이는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성충과 마찬가지로 자신을 버린 임금이지만, 원망하는 마음 하나 없이 백제의 앞날을 걱정했던 충신이 또 있습니다. 의자왕을 비판하다가 귀양을 떠나게 된 흥수입니다. 나당 연합군이 백제를 공격해 혼란에 빠진 의자왕은 멀리 귀양 가있는 흥수에게 의견을 묻는 서찰을 보냈습니다. 흥수는 지략이 뛰어난 인물이었기 때문이죠. 흥수는 “당나라 군대는 백강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고, 신라인으로 하여금 탄현을 넘지 못하게 하십시오”라고 언급했지만 역시 받아지지 않았습니다. 오랫동안 유배 중에 있어 임금에 대한 원망이 깊어 거짓을 말했을 거라는 다른 신하들의 의견 때문이었어요. 그러는 사이, 나당연합군이 침략해 사비성은 함락되었고, 의자왕은 성충과 흥수의 말을 듣지 않을 것을 후회했다고 합니다. 한편, 계백은 황산벌에서 신라군의 공격에 맞서 싸운 인물입니다. “죽을 각오로 싸운다면 신라군을 이기지 못할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그대들의 용기가 이 계백과 함께한다면 5만 신라군을 무찌르고 백제는 이 전쟁에서 승리할 것이다”라며 5천의 결사대를 모았지요. 비록 전투에서 패배를 하게 되고 목숨까지 잃게 되었지만 계백 장군은 ‘나라와 함께 죽은 충신’으로 존경을 받고 있어요. 승자는 사람들의 머릿속에 기억되지만, 충신은 사람들의 가슴속에 새겨진다는 말이 있습니다. 삼충사에서 백제의 충신 성충, 흥수, 계백의 충의와 절개를 느끼고, 가슴속에 새겨보는 것은 어떨까요?
대본
판축기법이 사용된 성벽 부소산성을 향해 올라오면서 튼튼하게 지어진 성벽을 보셨을거에요. 부소산성의 성벽은 ‘판축기법’으로 지어진 백제시대 성벽인데요, 판축기법은 뒤에 설명할 나성의 축조에도 동일하게 사용되었습니다. 성벽을 쌓기 위해서는 먼저 흙과 모래를 섞은 후 벽을 쌓는데, 이때 흙벽이 무너지지 않게 하기 위해 나무를 두 줄로 세웁니다. 그 안쪽에 진흙과 마사토를 번갈아가며 다져서 성벽을 만들었습니다. 성벽의 바깥쪽으로는 급한 경사로 인해 성벽이 밀리는 것을 막기 위해 돌을 사용하여 보강하였습니다. 그리고 성벽 중심의 흙을 한 번 더 다져서 성벽을 완성하였습니다. 부소산성은 백제시대에 건축된 성벽이 남아있는 몇 안되는 유적이기 때문에 그가치가 높습니다. 자, 이제 성벽을 따라 본격적으로 부소산성을 둘러보겠습니다. 목소리 공모전을 통해 선발된 김효정님께서 재능기부 해주셨습니다.
대본
백제 병영 시설 백제시대 병영으로 사용했던것으로 추정되는 수혈주거지가 보입니다. 수혈주거지란 땅을 파고 그 속에서 사람이 생활하거나 창고로 사용했던 움집 같은 곳을 말합니다. 부소산성 안에서는 총 3개의 수혈주거지가 발견 되었는데요, 그 중 제3호 주거지는 한 변의 길이가 4m, 깊이가 90㎝ 내외이며 내부에 구들이 설치되었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수혈주거지의 내부에서는 금으로 만든 봉황장식, 기와, 철제 무기와 갑옷 조각 등 많은 유물이 발견되어서 이곳이 병영이나 창고로 사용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목소리 공모전을 통해 선발된 김효정님께서 재능기부 해주셨습니다.
대본
부소산의 폐사지 부소산성의 서남부 언덕에는 사지(寺址)가 위치하는데, 기록에는 그 내용이 남아 있지 않은 백제시대 사찰입니다. 1980년에 고고학적 조사가 이루어져 사찰임이 확인되었는데요, 백제의 전형적인 사찰 구조인 1탑 1금당식이며, 특이하게 강당지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사비시대에 세워진 대부분의 절은 평지나 나지막한 약한 경사지에 자리잡는데, 이 절터는 산의 능선을 따라 건물을 배치한 것이 특징입니다. 이러한 지형 조건으로 인해 이곳에서는 서남쪽으로는 금강이, 동남쪽으로는 부여 시가지를 잘 볼 수 있답니다. 발굴 당시 이곳에서 출토된 유물로는 금동제 허리띠, 연화문 와당, 인장와, 금동풍탁, 소조불상, 치미 등이 있습니다. 특히 최고 신분의 인물이 사용한 금동제 허리띠 등을 볼 때 왕이나 왕족을 위한 사찰이었음을 추측할 수 있답니다. 목소리 공모전을 통해 선발된 김예슬님께서 재능기부 해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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