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RLENS

의열사 (부여)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동남리 산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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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가지 관점으로 본 이 장소

KORLENS 큐레이션
외국인
Foreigner

의열사는 이 고장 충신인 백제의 성충·흥수·계백과 고려 후기의 충신 이존오를 위해 부여현감 홍가신이 세운 사당이다.

커플
Couple

후에 조선 선조(재위 1567∼1608) 때 선비 정택뢰, 인조 (재위 1623∼1649) 때 문신 황일호(1588∼1641)를 추가로 모셔 현재는 6명을 모시고 있는데, 해마다 봄·가을에 제사를 지내고 있다.

가족
Family

조선 선조 8년(1575)에 처음 지어 인조 19년(1641)에 새로 고쳐지었으며, 고종 3년(1866)에 헐렸다가 그 뒤 다시 지었다.

솔로
Solo

지금 있는 건물은 원래 용정리의 망월산에 있던 것을 1971년 현 남령공원으로 옮긴 것이다.

장소 소개

의열사는 이 고장 충신인 백제의 성충·흥수·계백과 고려 후기의 충신 이존오를 위해 부여현감 홍가신이 세운 사당이다. 후에 조선 선조(재위 1567∼1608) 때 선비 정택뢰, 인조 (재위 1623∼1649) 때 문신 황일호(1588∼1641)를 추가로 모셔 현재는 6명을 모시고 있는데, 해마다 봄·가을에 제사를 지내고 있다. 조선 선조 8년(1575)에 처음 지어 인조 19년(1641)에 새로 고쳐지었으며, 고종 3년(1866)에 헐렸다가 그 뒤 다시 지었다. 지금 있는 건물은 원래 용정리의 망월산에 있던 것을 1971년 현 남령공원으로 옮긴 것이다. 사당은 앞면 3칸·옆면 3칸 규모의 건물로, 지붕은 옆에서 보았을 때 사람 인(人) 자 모양을 한 맞배지붕으로 꾸몄다. 주변에는 그 외에도 부여향교, 국립부여박물관, 부여 관북리 유적, 부여 쌍북리 요지, 부소산성 등이 있다.

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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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디오 가이드

한국관광공사 오디(Odii) 음성 해설
정림사지 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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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본

정림사지 박물관은 정림사를 비롯하여 백제시대 중 가장 화려했던 사비시기의 불교유적 등을 전시하고 있습니다. 사비 시대 중심 사찰이 있었던 정림사지에 위치하고 있지요. 불교 유적에 대한 전시를 하고 있는 만큼 정림사지 박물관의 건물 형태 또한 불교의 상징 모양을 띠고 있는데요. 중앙홀을 중심으로 진입로, 전시실, 관리실 등이 사방으로 뻗은 날개 모양으로 상호 연계하고 있습니다. 전시실은 크게 정림사지관과 백제불교역사관, 제2전시실 중층으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먼저, 정림사지관에서는 정림사지 발굴 현장을 실감 나게 표현한 모형을 볼 수 있으며, 정림사지의 의의와 가치를 첨단 기술을 활용한 콘텐츠를 통해 감상하고 체험할 수 있습니다. 백제불교역사관에서는 불교 수용이 빨랐던 백제의 불교역사를 살펴볼 수 있습니다. 우아한 미소가 깃든 불상과 석가모니의 사리를 모시기 위한 탑 등을 감상하고, 주변 국가와의 불교문화 교류도 알아볼 수 있지요. 또한, 제2전시실 중층에서는 통일신라시대 이후 정림사지에서 출토된 기와, 토기, 청자 등 다양한 유물도 관람이 가능합니다. 각 전시실을 둘러보며 정림사지를 더욱 생생하게 느끼고, 백제의 꿈과 땀이 담긴 사비 시대의 불교유적 등을 감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백제의 불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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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본

백제의 불교 [해설] 백제가 침류왕 때인 384년, 인도 승려 마라난타를 통해 불교를 받아들인 후, 불교는 국가적으로는 통치이념으로, 민간에서는 신앙생활로 뿌리 깊게 자리하게 되었어요. 이후 백제의 불교는 제26대 임금인 성왕 때 크게 부흥하게 되죠. 성왕이 태자일 때 불교의 계율을 공부하기 위해 인도로 유학 갔던 승려 겸익과 성왕의 재회장면을 잠시 들어보시죠. [성왕] 겸익법사, 5년 만에 다시 보는구려. 실로 고생이 많았소. [겸익] 아니옵니다. 폐하께서 이리 친히 맞아주시니 황공하기 그지없사옵니다. [성왕] 그래, 인도에서 율법에 관한 책은 가져오셨소? [겸익] 예, 폐하. 율법과 관련된 인도의 여러 경전들을 가지고 돌아왔사옵니다. [성왕] 큰일을 하셨소. 정말 큰일을 하셨소. 흥륜사에 법사가 기거할 곳을 마련해 놓았으니 며칠 동안은 모든 것을 잊고 푹 쉬도록 하시오. [겸익] 아니옵니다. 폐하! 가지고 들어온 경전들은 모두 범어로 되어 있사옵니다. 하루바삐 이를 한자로 옮겨야만 부처님의 귀한 가르침을 널리 펼칠 수 있을 것이옵니다. [성왕] 참으로 귀한 마음이오. 백성들은 부처의 말씀으로 하나 되고, 나 역시 부처의 말씀을 통해서 백성들에게 우리 백제의 꿈과 미래를 전할 것이오. [해설] 성왕은 이후에도 많은 사찰과 탑을 만들며 불교를 장려하여 오랜 전쟁으로 지친 백성들의 마음을 위로했어요. 동시에, 왕을 중심으로 하는 통치체계를 확립하고 백제를 수호하려 했죠. 당시 불교는 종교이자 국가를 통치하는 이념이었던 거예요. 또한, 일본에 불교를 전파해서 종교, 문화적인 중흥의 계기를 마련해 주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성왕시대에 크게 중흥한 백제의 불교는 이후에도 지속되며 화려한 불교문화를 꽃피웠답니다.

백제의 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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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본

백제의 탑 [해설] 탑은 본래 고대어인 탑파의 준말로 석가모니의 사리를 모시기 위한 축조물이란 뜻이에요. 석가모니가 열반한 후 시신을 화장하니 사리가 나왔어요. 인도의 여덟 나라에서 석가모니의 사리를 똑같이 나누어 탑을 만들었는데 이것이 불탑이 만들어지게 된 기원이랍니다. 불교가 전해진 이후 백제는 석탑을 건립하기 이전에 나무로 만든 목탑을 먼저 만들었어요. 그래서 7세기 들어 처음 석탑을 만들었을 때는 그 재료만 나무에서 돌로 바뀌었을 뿐, 목탑의 모습을 그대로 재현하는 데 중점을 두었답니다. 그럼 석탑은 어떤 과정을 통해 지어졌는지 알아보기 위해 사비백제 시대 왕실을 위한 사찰을 짓고 있는 현장으로 함께 가볼까요? [궁인] 폐하께서 납시옵니다! [임금] 석탑 건립을 위해 모두들 수고가 많도다. 석탑은 우리 백제에서 처음 짓는 것이니, 한 치의 오차도 없어야 할 것이야. 석탑을 어찌 지을지 궁금하니 내게 고하도록 하라. 그래 지금 하고 있는 작업이 무엇인가? [장인] 질 좋은 화강암을 골라 각 부위에 쓸 부재를 만들고 땅을 다지고 있습니다. [임금] 이 단단한 돌로는 목탑의 부드러움이 사라지겠지? [장인] 아니옵니다, 폐하. 석탑의 설계도를 보시옵소서. 석탑은 재료만 바뀌었을 뿐, 목탑의 양식을 그대로 따르고 있습니다. 탑신부에 들어갈 네 기둥은 위아래가 좁고 가운데를 볼록하게 표현하는 배흘림기법으로 목탑의 양식을 석재로 표현할 것입니다. [임금] 정말 대단하구나. 이 단단한 돌로 이런 부드러움과 정교함을 표현할 수 있다니, 정말 대단하구나. 그런데 이 무거운 석재들로 탑을 쌓아 올리는 것이 보통일이 아닐 텐데, 어찌 할 생각인가? [장인] 석탑의 무게를 지탱하도록 성벽을 쌓는 방법인 판축법을 사용하여 지반을 단단히 다질 것이옵니다. [임금] 그 무거운 석재를 어찌 들어 올릴 것인가? [장인] 대나무로 계단을 만들어 올리는 방법과 도르래를 이용해 올리는 방법을 사용하려 하옵니다. [임금] 그대의 설명을 들으니 정말 대단하도다. 그대들 같은 멋진 솜씨를 가진 백성을 둔 것은 짐에게 하늘이 주신 축복이야. 그대들은 명심하라. 안전과 속도, 어느 것 하나 소홀히 하지 말고 불사에 최선을 다하도록 하라. [해설] 앞에서 들으신 대로 석탑은 전체 사찰 규모에 맞게 그 크기를 정한 후, 치밀하게 사전설계도를 그리고, 화강암을 채취해서 각 부위의 석재를 만든 후, 지반을 단단히 다지고, 석재를 아래부터 차곡차곡 쌓아올리는 순서로 만들어졌어요. 커다란 화강암 덩어리를 정교하고 아름다운 석탑으로 완성하기까지 이렇게 세세한 과정을 거쳐야 했어요. ‘석탑’은 우리나라 불교의 특징임과 동시에 중국의 ‘전탑’과 일본의 ‘목탑’과는 전혀 다른 독창적인 양식이라고 할 수 있답니다.

백제의 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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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본

백제의 불상 이곳은 불상제작 현장을 재현해놓은 곳입니다. 백제의 불상은 우아하면서도 날렵한 맵시, 둥근 얼굴에 가득한 맑고 잔잔한 미소가 특징인데요. 백제의 불상은 만드는 재료에 따라 돌로 만든 석불, 나무를 깎아 만든 목조불, 놋쇠에 금박을 입힌 금동불, 흙으로 만든 소조불 등으로 나뉩니다. 이 중에서 백제의 금동불을 만드는 과정을 알아보도록 해요. 지금 여러분 앞에 세 가지 불상이 보이죠? 첫 번째 불상은 밀랍을 입힌 진흙으로 만든 불상이에요. 불상의 설계가 끝나면 철심으로 뼈대를 만들고 그 위에 진흙을 입혀 대강의 모양을 만들어요. 그 위에 밀랍을 입히고 상을 조각한답니다. 그다음 순서로 밀랍 불상 위에 다시 진흙을 덮어 외형 틀을 제작한 후 말리는 과정을 거치게 되죠. 두 번째 불상은 놋쇠를 부어 만든 불상이에요. 건조된 밀랍 불상을 가마에 넣고 불에 구워요. 그러면 외형 틀과 내형 틀 사이에 있던 밀랍이 녹아 흘러내리고 틈이 생기겠죠? 이때 주의할 점은 밀랍을 완전히 제거시켜야 돼요. 그렇지 않으면 불사 주조가 실패로 끝나버릴 테니까요. 밀랍이 제거된 틈 속에 뜨거운 놋쇠 물을 부어 굳힌 다음 외형 틀과 내형 틀을 제거한답니다. 마지막으로 불상에 금을 입히는 과정이 보이시죠? 금동불을 만드는 데 가장 중요한 순간이에요. 금동불의 가장 중요한 금을 입히기 위해서는 먼저 금가루를 수은에 잘 녹인 후 이것을 불상에 고르게 바르고 열을 가하면 수은은 날아가고 금가루만 청동상에 남게 된답니다. 이런 복잡한 과정을 거치면서 백제인의 염원이 불상의 미소로 다시 태어나는 경이로운 순간, 비로소 아름다운 백제 금동 불상이 완성되는 것이랍니다.

사비도성의 중심지, 정림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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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본

사비도성의 중심지, 정림사 지금 보시는 것은 사비도성의 중심지에 있었던 사찰 정림사를 재현한 모형이에요. 절의 규모에 놀라셨죠? 이렇게 큰 규모의 절이 도성 한가운데 왜 있었을까요? 사비백제에게 정림사는 어떤 의미가 있는 사찰이었을까요? 자세히 알아보도록 해요. 정림사는 언제 누가 창건했는지 정확하게 전해지지 않았는데요, 정림사라는 절 이름도 출토유물을 통해서 확인된 고려 때의 이름이죠. 백제의 제26대 성왕은 웅진에서 사비로 천도를 단행했어요. 사비 천도는 백제의 중흥을 위해 오랜 기간에 걸쳐 치밀하게 준비한 국가 숙원 사업이었죠. 그래서 사비는 철저한 도시계획과 사전개발을 통해 만들어진 새로운 수도였어요. 당시로는 매우 혁신적인 신도시였죠. 철저한 계획을 통해 만들어진 도성 한가운데 세워진 사찰이 바로 정림사예요. 성왕은 불교사상을 국가질서의 기본이념으로 삼아 왕권 확립과 혼란한 사회를 통합하여 새로운 백제를 만들고 싶었어요. 그래서 사비도성이 만들어질 당시부터 국가의 적극적인 지원 아래 절터를 동시에 조성했고 도성 한가운데 정림사를 세워 백제의 중심 사찰로 만들었죠. 정림사는 백제 사비시대 123년 역사의 혼이 담겨져 있는 사찰이에요. 사비백제의 출범과 함께 사찰이 창건되었고, 백제의 멸망도 함께한 사찰, 그곳에는 백제 치욕의 역사가 남아있답니다. 당나라 장수 소정방이 백제 정복기를 정림사의 5층 석탑에 새겨놓았어요. 백제의 혼이 서려 있는 상징물을 훼손하여 백제를 모욕한 것이죠. 진취적이고 새로운 백제를 꿈꾸며 만든 정림사는 곧 백제였고, 백제는 곧 정림사였어요. 비록 정림사는 불타 없어졌지만, 우뚝 솟은 5층 석탑이 백제의 정신을 보여주고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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