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화암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쌍북리
4가지 관점으로 본 이 장소
KORLENS 큐레이션낙화암은 부여군 부소산 북쪽 백마강(금강) 변에 서 있는 바위 절벽이다.
백제 사비성이 나당연합군에게 점령될 때 수많은 백제 여인들이 꽃잎처럼 백마강에 몸을 던지는 모습이 꽃이 떨어지는 것과 같아 낙화암이라는 이름을 얻었다는 전설이 있지만, 실제 역사적 사실과는 거리가 멀다.
절벽에는 조선 후기 학자인 우암 송시열이 쓴 낙화암 글씨가 선명하게 남아있다.
낙화암의 기암절벽은 부소산성을 통해 직접 올라가 정자에서 백마강을 바라보는 것도 좋고, 백마강에서 유람선을 타고 올려다보는 것도 좋다.
장소 소개
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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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관광공사 오디(Odii) 음성 해설대본
백마강 남쪽 부소산을 감싸고 쌓은 부소산성은 백제 사비시대의 도성입니다. 백제시대에는 사비성 또는 소부리성으로 불리다가 현재는 성이 위치한 산의 이름을 따서 부소산성이라 부르고 있지요. 부소산성은 웅진에서 사비로 도읍을 옮겼던 성왕 시기에 축조된 것으로 보이나, 이보다 먼저 동성왕 때 이미 산 정상을 둘러쌓은 테뫼식 산성이 축조되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후 사비 천도 시기를 전후하여 개축되었고, 무왕 경에 지금의 모습으로 완성한 것으로 짐작되지요. 부소산성에는 수많은 백제 여인들이 꽃잎처럼 떨어져 죽음으로 절개를 지킨 낙화암을 비롯하여 해맞이하는 영일루, 성충.흥수.계백의 백제 충신을 모신 삼충사, 곡식 창고터였던 군창지 등 백제의 역사와 백제 왕실의 이야기가 곳곳에 배어 있습니다. 성 안에 군창터와 건물터 등이 있는 것으로 보아, 급하거나 비상시에는 군사적 목적으로 이용하고, 평상시에는 백마강과 부소산의 아름다운 경관을 이용하여 왕과 귀족들이 즐기던 곳으로 쓰인 듯합니다. 이러한 부소산성은 사비시대의 중심 산성으로서 백제가 멸망할 때까지 수도를 방어한 곳으로 역사적 의의가 있으며, 백제의 성곽 발달사를 보여주는 데에도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는 곳입니다.
대본
꽃이 지다, 낙화암 “삼천궁녀를 아시나요?, 그녀들의 슬픈 전설을 아시나요?” 그녀들의 전설이 시작되고 끝나는 곳, 부소산성 북쪽 끝에 외롭게 고개 숙인 바위절벽, 그곳이 바로 낙화암입니다. 나당연합군에 의해 사비성이 함락되고 백제 멸망이 임박하자 사비성의 궁녀들이 살아서 치욕을 당하느니 죽음을 택해 백마강에 몸을 던졌다는 전설이 생겼죠. 훗날 궁녀들이 떨어지는 모습을 꽃잎에 비유하여 이곳을 낙화암이라 부르게 되었습니다. 낙화암의 전설은 백제 의자왕이 정사를 게을리하고 삼천궁녀와 향락에 빠져 지내다 결국 나라까지 망하게 했다는 이야기와 함께 자주 언급되곤 했죠. 정말 백제에는 삼천궁녀가 있었을까요? 실제로 삼천 명이나 되는 궁녀들이 실존했다는 기록은 어디에도 나오지 않는답니다. 조선중기 시인이었던 민제인의 [백마강부]란 시에서 삼천궁녀에 대한 말이 처음 나오는데, 그 이후부터 삼천궁녀에 대한 이야기가 널리 퍼지면서 의자왕은 호색한 왕으로 왜곡되었어요. 일반인의 상상력이 만들어낸 역사적 아이러니가 바로 의자왕이라고 할 수 있겠죠. 그럼 실제 의자왕은 어떤 왕이었을까요? 의자왕은 어린 시절 효심이 지극하여 ‘해동증자’라고 불렸어요. 또한 강력한 정복군주로서의 면모를 보이기도 했죠. 그가 신라에게 빼앗은 30여 개의 성은 광개토대왕이 백제에게 빼앗은 수보다 더 많았다는 사실이 이를 증명해주고 있어요. 하지만, 역사는 승자의 편이기에 패망한 나라의 마지막 왕, 의자왕은 불공평한 역사적 평가를 받은 것이죠. 낙화암에 새겨진 비장한 슬픔은 단순히 삼천궁녀만의 슬픔이 아니랍니다. 나당연합군에 쫓겨 이곳까지 이른 백제의 병사, 민초들의 비장한 슬픔입니다. 한 나라의 패망과 슬픔, 또 왜곡된 전설이 서려 있는 이곳 낙화암에서 왜곡된 의자왕과 궁인들을 위해 명복을 빌어보면 어떨까요?
대본
고란사 ‘젊음을 주는 샘물’이 있다면 여러분은 마실 건가요, 안 마실 건가요? 여기, 고란사에 그 신비한 물이 있어요. 한 번만 말할 테니까, 잘 들으시고 선택은 여러분이 하세요. 고란사 뒤편에 있는 고란사 약수터가 그 신비한 물이 나오는 곳이랍니다. 그 신비한 물에 대한 전설이 있는데 한번 들어보실까요? 아득한 옛적, 소부리의 한 마을에 금실 좋은 노부부가 살고 있었어요. 하지만 노부부에게는 불행하게도 자식이 없었답니다. 너무나 자식을 갖고 싶어 하던 할머니에게 어느 날, 일산의 산신으로부터 부소산 강가, 바로 여기죠? 고란사 바위틈에서 나오는 물이 있는데 그 물을 마시면 젊어진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산신의 말에 흥분한 할머니는 할아버지를 재촉해 그 물을 찾아 마시고 오라고 했습니다. 할머니의 재촉에 못 이겨 산에 올라온 할아버지는 고란초가 무성하게 나 있는 곳을 찾았어요. 그 주변을 살펴보니 진짜로 바위틈에서 물이 나오고 있었죠. 할아버지는 그 물을 받아 시원하게 마셨답니다. 그랬더니 진짜로 젊어졌데요. 기분이 좋은 할아버지는 물을 계속 마시기 시작했답니다. 아무리 기다려도 할아버지가 산에서 내려오지 않자, 할머니는 할아버지를 찾아 산으로 올라갔어요. 신비한 물이 나오는 바위에 도착한 할머니는 깜짝 놀랐어요. 예쁜 갓난아기가 울며 누워있는데, 그 아기가 할아버지의 옷을 입고 있는 게 아니겠어요. 아기가 할아버지임을 알아본 할머니는 물 한 잔에 3년씩 젊어진다는 말을 안 한 게 생각났죠. 자신의 잘못을 한탄하던 할머니는 아이를 데려와 키웠고, 그 아이는 커서 훗날 백제의 좌평이 되었다는 전설이 있답니다. 백제 의자왕은 이 물맛을 본 후, 매일 고란사의 약수를 먹었어요. 궁에서 먼 고란사까지 물을 길어오는 것은 몹시 힘든 일이라 혹시나 다른 물을 떠올까봐 약수에 고란초를 꼭 띄워오라 명했다고 합니다. 의자왕은 고란사의 약수를 먹고 원기가 왕성해지고 위장병에도 걸리지 않았는데요. 실제로 고란사 약수는 위장병에 효력이 있다고 합니다. 그럼 우리도 시원한 약수 한 잔 어때요?
대본
백제 병영 시설 백제시대 병영으로 사용했던것으로 추정되는 수혈주거지가 보입니다. 수혈주거지란 땅을 파고 그 속에서 사람이 생활하거나 창고로 사용했던 움집 같은 곳을 말합니다. 부소산성 안에서는 총 3개의 수혈주거지가 발견 되었는데요, 그 중 제3호 주거지는 한 변의 길이가 4m, 깊이가 90㎝ 내외이며 내부에 구들이 설치되었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수혈주거지의 내부에서는 금으로 만든 봉황장식, 기와, 철제 무기와 갑옷 조각 등 많은 유물이 발견되어서 이곳이 병영이나 창고로 사용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목소리 공모전을 통해 선발된 김효정님께서 재능기부 해주셨습니다.
대본
부소산성에서 제일 높은 곳 사자루는 부소산에서 제일 높은 곳에 위치하여 주변의 풍광을 즐길 수 있는 곳입니다. 원래 이곳에는 달을 맞이 하던 ‘송월대’가 있었는데, 흔적만 남아 있었다고 합니다. 1919년에 이곳에 임천관아의 정문이었던 ‘배산루’를 옮겨 놓고 ‘사자루’라는 현판을 달았는데요, 당시 사자루의 현판은 고종황제의 아들인 의친왕 이강공이 썼다고 합니다. 백마강 쪽으로 가면 ‘백마장강’이라는 현판도 달려 있는데요, 이 현판은 해강 김규진 선생의 글씨라고 합니다. 땅을 다지는 공사를 진행할 당시에 이곳에서 백제시대의 기와와, 건물 기둥을 받쳤던 초석 등이 발견되었고, ‘정지원’이라는 이름이 새겨진 금동석가여래입상이 발견되었는데요. 금동석가여래입상은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만나 보실 수 있답니다. 목소리 공모전을 통해 선발된 송아리님께서 재능기부 해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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