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아더 사령관 한강방어선 시찰지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신길로 275 (영등포동)
4가지 관점으로 본 이 장소
KORLENS 큐레이션북한군의 남침 직후 맥아더 사령관이 미군의 참전 결정에 앞서 한강방어선 전황을 확인하기 위해 시찰한 장소이다.
1950년 6월 29일 수원비행장에 도착한 미 극동군 사령관 맥아더는 전쟁 상황에 대한 보고를 받았다.
이어 전선을 직접 확인하기로 하고, 시흥을 거쳐 한강 전선을 마주한 영등포 동양맥주공장(현 영등포공원) 옆 언덕으로 이동하여 전황을 관찰하였다.
이때 언덕의 진지를 방어하던 한 병사가 “상관이 철수 명령을 내릴 때까지 지키겠다”라고 말하여 맥아더를 크게 감동시켰다고 한다.
장소 소개
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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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관광공사 오디(Odii) 음성 해설대본
오늘 걸어볼 길은, 영등포역을 중심으로 펼쳐진 코스입니다. 한때는 산업화를 이끌던 중심지였고, 지금은 도시재생을 통해 새로운 미래를 준비하고 있는 곳이죠. 20세기를 전후하여 경부선이 개통되고 영등포에 영등포 정거장이 설치되면서 이 일대가 근대 시가지로 발달하기 시작했어요. 1930년대에 들어서면서는, 본격적인 공업화가 시작됐죠. 맥주회사, 제분회사, 금속·기계 공장들까지— 일본의 자본이 들어오며 영등포 일대는 공업지역으로 탈바꿈하게 됩니다. 지금은 공장들보다는 그 시간을 품은 거리와 새롭게 문을 연 공간들이 여행자를 반기고 있습니다. 그럼, 영등포의 과거와 오늘이 만나는 1코스를 걸어볼까요. 첫 번째로 만나볼 장소는 바로 이곳, 영등포역입니다. 지금도 수많은 사람들의 만남과 삶이 출발과 정차를 반복하는 이 영등포역은, 1900년 경인선 보통역으로 문을 연 뒤, 1905년 경부선이 연결되면서 두 노선이 만나는 교통의 요충지로 자리 잡았습니다. 이곳은 서울 서남권의 공업화와 물류 이동을 이끄는 출발점이 되었죠. 지금 보이시는 이 건물이 바로 영등포역입니다. 현재는 백화점과 철도역이 함께 들어선 복합공간으로 쓰이고 있지만, 사실 이 자리는 오랜 시간 수많은 사람들의 발걸음이 지나간 곳이죠. 영등포에 처음 역이 들어선 건 1900년 무렵, 경인선 보통역이 설치되면서부터입니다. 당시는 간단한 정차 시설에 불과했지만, 1935년에 목조 역사 건물이 세워지며 이 일대는 본격적으로 철도 도시의 모습을 갖춰가게 되죠. 하지만 한국전쟁이 발발하면서 이 목조 건물은 파괴되었고, 전쟁 이후 1960년대에 철근콘크리트 구조의 새 역사가 들어섰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1980년대 후반에는 민간 자본이 참여한 역사 개발 사업이 추진되었고, 롯데가 운영권을 맡아 지금 보이시는 이 복합 역사 건물이 새롭게 지어지게 된 것입니다. 당시로선 매우 파격적인 시도였고, 국내 최초 민자 역사라는 점에서 상징적인 의미도 크죠. 이 영등포역은 단순히 기차를 타고 내리는 장소만은 아니었습니다. 1951년 1·4 후퇴 당시, 한강을 건너 몰려든 수많은 피난민이 이곳에서 기차를 타고 남쪽으로 피난길에 올랐고, 그보다 앞선 1919년 3·1운동 때는 이곳에서 만세 시위가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그 발걸음과 외침은 지금도 이 공간 어딘가에 남아 있는 듯합니다. 이처럼 사람과 물자가 끊임없이 오가던 이곳은 자연스럽게 산업과 상업이 발달하는 도시로 성장했고, 그 흔적은 지금도 영등포 곳곳에 남아 있습니다. 그중 하나가 바로 맥주 공장이었는데요. 당시 그 공장의 사무실로 쓰이던 공간, 지금의 영등포문화원으로 걸음을 옮겨보겠습니다.
대본
두 번째로 도착한 곳은 영등포문화원입니다. 이 건물은 원래, 맥주 공장 사무실로 사용되던 곳이었습니다. 공장이 이전한 뒤 1999년에 리모델링을 거쳐 지금은 지역 주민들을 위한 문화공간으로 다시 태어났습니다. 영등포문화원은 평생교육과 문화 행사가 이루어지는 지역 속 열린 학교 같은 공간입니다. 영등포문화원 근처, 이 신길동 일대는 6·25 전쟁 당시 맥아더 장군이 한강 방어선을 시찰한 곳으로 전해지는 장소입니다. 맥아더는 전쟁 초기, 대한민국을 돕기 위해 파병된 유엔군의 총사령관이었는데요. 1950년 6월 29일, 서울에 도착해 전선을 시찰하던 중 국군 병사와 나눈 짧은 대화가 지금도 전설처럼 전해지고 있습니다. “자네는 얼마 동안 이 참호를 지킬 생각인가?” “상관이 철수 명령을 내릴 때까지, 목숨 걸고 지킬 것입니다.” “잘 알겠네. 내가 곧 동경으로 돌아가 지원병력을 보내줄 테니 믿고 싸우게.” 이 일화는 오늘날까지도 당시 병사들의 결의와 전장의 긴박함을 떠올리게 하는 장면으로 기억되고 있죠. 이 시찰 이후, 맥아더 장군은 유엔군을 이끌고 인천상륙작전을 단행했고, 그 작전은 전세를 뒤집고 서울을 되찾는 데 결정적인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지금 걷고 있는 이 길도 그런 역사적인 순간들과 맞닿아 있는 셈이죠. 자, 이제 영등포공원으로 걸어가 보겠습니다.
대본
이곳은 시민들의 푸른 쉼터가 되어주는 영등포 공원입니다. 그런데, ‘영등포’라는 이름이 어디서 왔는지 궁금하지 않으신가요? 영등포라는 지명은 조선 후기부터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지금의 여의도 샛강 부근, 한강을 따라 이어지는 작은 나루터를 가리켰는데요. 『대동여지도』에도 이 일대가 실제 나루로 표시되어 있죠. 지명 유래에는 몇 가지 설이 전해지는데요. 가장 널리 알려진 건 이 지역에서 성행했던 ‘영등굿’과 관련된 이야기입니다. 바람을 다스린다고 전해지는 ‘영등할망’을 모시는 제사였는데, 이 ‘영등’과 물가 마을을 뜻하는 ‘포(浦)’가 합쳐져 ‘영등포’가 되었다는 것이죠. 이 외에도 영등포 일대의 풍광이 아름다워 ‘꽃부리 영’ 자를 붙여 영등포로 불렀다는 설 등 여러 설이 전해지고 있기도 합니다. 앞서 말씀드린 대로 지금 걷고 계신 이곳은 영등포공원인데요, 나무 그늘에서 산책을 즐기기에도, 잠시 쉬어가기에도 딱 좋은 이곳은 지금은 시민들의 쉼터지만, 예전에는 아주 다른 모습이었습니다. 바로 이 자리에, 1933년 일본 자본으로 세워진 쇼와기린(昭和麒麟)맥주 공장이 있었어요. 해방 이후엔 동양맥주, 지금의 OB맥주가 공장을 인수해 1997년까지 맥주를 생산했죠. 이후에는 서울시가 이 부지를 매입하면서 1998년, 영등포공원으로 새롭게 단장되었답니다. 공원 안을 둘러보시면, 커다란 솥 모양의 조형물이 보이실 텐데요. 이 조형물은 실제로 공장에서 사용되던 순동 담금솥이에요. 높이 4.5미터, 지름 7미터에 달하는 이 대형 설비는 한 번에 500헥토리터(hL), 그러니까 500ml 맥주병 약 10만 병 분량을 생산할 수 있었다고 해요. 지금은 이곳의 상징처럼 남아 당시의 흔적을 전해주고 있습니다. 도보로 10분 정도 떨어진 영등포 푸르지오 아파트 단지 자리에도 또 하나의 맥주 공장이 있었습니다. 1933년, 대일본맥주가 이곳에 세운 ‘조선맥주주식회사’였어요. 해방 후에는 미 군정청의 관리를 받다가 1950년 이후 민영화되었고, 그 뒤에 시간이 지나 지금의 하이트진로로 이어졌죠. 하지만, 이 공장도 1998년 강원도 홍천으로 이전되고, 지금은 아파트 단지가 조성돼 예전의 흔적은 거의 남아 있지 않아요. 단지 내의 맥주통 조형물만 조용히 그 시절을 기억하고 있을 뿐입니다. 1930년대 이후, 영등포역 일대는 교통과 수자원이 풍부하다는 점 때문에 각종 공장이 모여드는 공업지대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당시 공업화는 조선의 발전을 위한 것이 아니라, 일제가 군수 물자를 조달하기 위해 전략적으로 추진한 것이었습니다. 우리의 자원과 노동이 이용된 슬픈 역사이기도 하지요. 이제 다음 장소에서 이야기를 이어가겠습니다. 공원을 나와서 영등포역 파출소를 지나 영등포 철로육교 방향으로 걸어가 볼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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