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RLENS

삼일사

울산광역시 중구 병영성11길 25 (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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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LENS 큐레이션
외국인
Foreigner

삼일사는 울산 병영에서 일어났던 1919년 삼일운동에서 순국한 독립투사들을 봉안한 사당이다.

커플
Couple

1919년 3월 1일 서울에서 일어난 독립만세운동은 지방에도 파급되어 울산의 병영에서도 4월 5일과 6일의 양일에 걸쳐 일어났다.

가족
Family

울산 병영의 삼일운동은 청년회에서 주도하에 독립선언서를 배포하고 일본 순사들의 눈을 피해 현재 병영 초등학교(당시 일신 학교) 운동장에서 축구 대회를 가장하여 사람들이 모였을 때 축구공을 높이 치켜 올리는 것을 시작

솔로
Solo

삼일사는 울산 병영에서 일어났던 1919년 삼일운동에서 순국한 독립투사들을 봉안한 사당이다.

장소 소개

삼일사는 울산 병영에서 일어났던 1919년 삼일운동에서 순국한 독립투사들을 봉안한 사당이다. 1919년 3월 1일 서울에서 일어난 독립만세운동은 지방에도 파급되어 울산의 병영에서도 4월 5일과 6일의 양일에 걸쳐 일어났다. 울산 병영의 삼일운동은 청년회에서 주도하에 독립선언서를 배포하고 일본 순사들의 눈을 피해 현재 병영 초등학교(당시 일신 학교) 운동장에서 축구 대회를 가장하여 사람들이 모였을 때 축구공을 높이 치켜 올리는 것을 시작으로 만세운동을 일으키자 일신 학교 학생과 성내의 온 주민들이 이에 호응하여 동참하였다. 이때 총검으로 무장한 일본 수비대와 충돌하여 그 자리에서 엄준, 문성초, 주사문, 김응룡의 네 사람이 순국하고 송근찬, 김규식, 김두갑 등 많은 사람들이 중경상을 입고 천추의 한을 품은 채 해산하고 말았다. 실형을 받았던 동지들이 형기를 마치고 돌아오자 그들은 기미계를 만들어 순국한 동지의 외로운 넋을 달래기 위해 매년 비밀리에 빠짐없이 제사를 4월 6일에 받들어 오다가 1955년 영모각을 개수하여 삼일사를 세우고 이들을 안치하는 한편 삼일사 봉제회를 만들어 길이 그들의 뜻을 받들어 오고 있다. 삼일사는 1955년에 현 위치에 세웠다가 이를 남외동 549-1번지로 한동안 옮겼으나 다시 이 자리에 사당을 새로 지었다.

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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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관광공사 오디(Odii) 음성 해설
울산 경상좌도 병영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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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는 1987년 7월 사적 제320호로 지정된 울산 경상좌도병영성 (蔚山 慶尙左道兵營城)에 대해 이야기 해보고자 합니다. 조선시대에는 전국 8도(道)의 육군을 효율적으로 지휘하기 위해 병마절도사라는 직책을 두었습니다. 병마절도사는 군대가 집단으로 거처하는 ‘병영’에서 무예훈련과 무기제작 등 국방의 의무를 수행했습니다. 태종7년인 1407년, 태종은 군사행정상의 편의를 위하여 임금이 있는 한양에서 경상도를 바라보는 기준으로 낙동강의 좌우를, 경상좌도와 경상우도로 나누었습니다. 그 3년후인 1417년에는 현재 북구 중산동에 자리한 기박산성에 있던 좌병영을 오늘날 중구 병영성 자리로 옮겼습니다. 처음 경상좌도 병영성을 쌓았을 당시에는 기본적인 시설만 갖추고 있었으나 세종 때에 국방력을 강화하기 위해 사대문에 옹성과 적대를 쌓고, 해자를 팠습니다. 이때 성의 둘레는 1.2km, 높이는 3.7m, 성안에는 우물, 도랑 창고 등이 있었다고 합니다. 기박산성에서 옮겨온 경상좌도 병영성과 관련된 설화가 <기 따라온 병영성>이라는 제목으로 지금까지 구전되어 오고 있습니다. 간략하게 내용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기박산성에서 성을 쌓던 어느날 갑자기 사나운 바람이 불어와 깃발 하나가 바람을 타고 남으로 날아갔습니다. 그래서 날아간 곳을 확인해 보니 지금의 병영이었습니다. 이에 이 곳은 하늘이 정해준 곳이라 여겨 좌병영을 기박산성에서 지금의 자리로 옮기게 되었습니다.’ 한편, 울산경상좌도병영은 1426년 잠시 폐지되었다가 1437년 다시 설치된 후 약 458년 동안 울산 지역에 위치해 있었으나, 1895년 을미개혁 때 군사제도가 개편되면서 완전히 폐지되었습니다.

울산 외솔 기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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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은 한평생 교육자로, 한글학자로, 독립운동가로 살아온 외솔 최현배(崔鉉培)의 고향입니다. 이에 따라 울산 지역에 최현배의 생애를 되돌아보고 그를 기념하기 위한 시설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지속적으로 제기되어 생가 복원과 기념관 건립 사업이 추진되었다. 기념관 건립 사업은 최현배 생가를 2001년 12월 20일 울산광역시 기념물 제39호로 지정한 후, 2002년 10월 외솔최현배선생 생가복원위원회가 구성되면서 본격적으로 추진되었습니다. 외솔최현배선생기념관은 2009년 9월 30일 준공하여 2010년 3월 23일 개관하였습니다. 기념관은 대지 면적 3,646㎡, 총면적 852.37㎡의 지상 2층~지하 1층 규모로 건립되었습니다. 1층에는 외솔실·한글실·영상실·체험실이, 2층에는 모듬실·외솔최현배선생생가터가 있습니다. 전시실인 외솔실과 한글실에는 유족과 한글 관련 단체로부터 기증 받은 『우리말본』·『한글갈』·『조선민족갱생의 도』 등 일반 서적 1만여 권과 최현배가 생전에 사용하던 타자기와 장롱 등의 생활 유품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체험실은 어린이를 위한 공간으로, 스탬프 찍기와 탁본 떠 보기, 틀리기 쉬운 한글 받아쓰기가 마련되어 있습니다. 2층에 있는 외솔최현배선생생가터는 집터와 축대만 남아 있던 생가를 2008년 복원하였으며, 안채와 아래채, 부속채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울산 외솔 최현배 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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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현배(崔鉉培)는 1894년 10월 19일 울산광역시 중구 병영2동에서 출생하였다. 1910년 현재의 병영초등학교인 일신학교를 졸업하였고, 서울로 올라가 1915년 경성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였습니다. 경성고등보통학교 재학 당시 조선어강습원에서 주시경(周時經)의 국어강습회에도 참가하여 수학하였습니다. 이후 1919년 일본에서 히로시마고등사범학교를 졸업했고, 이어 1925년과 1926년 교토제국대학 문학부 철학과 학부와 대학원을 각각 졸업하였습니다. 1926년 4월 연세대학교의 전신인 연희전문학교의 교수로 부임했으며, 1927년 한글사 조직, 1931년 조선어학회 창립 등에 기여하였습니다. 1938년 흥업구락부사건으로 인해 교수직에서 파면 당했다가 1941년에 복직하여 도서관 일을 담당하였습니다. 이듬해인 1942년 조선어학회사건으로 경찰에 검거되어 1945년 광복 때까지 함흥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습니다. 광복 후에는 1945년 9월부터 3년간, 그리고 1951년 1월부터 3년간 문교부 편수국장으로 재직하였습니다. 이어 1954년 연희대학교 교수로 부임하여 문과대학 학장과 부총장을 지냈고 1961년에 정년 퇴임하였습니다. 연희대학교에 재직 중이던 1955년 국어학 연구에 대한 기여와 공로로 명예 문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으며, 퇴임 후에는 연세대학교 명예 교수로도 추대되었습니다. 한편, 최현배는 1949년 한글학회 이사장에 취임하여 20년간 한글학회를 이끄는 등 한글학회에서도 활발하게 활동하였습니다. 또한 한글전용촉진회위원장을 맡아 한글전용운동을 펼치기도 했고, 1957년부터 세종대왕기념사업회의 핵심 인물로서 활동했으며, 1968년에는 회장을 맡았습니다. 그리고 1970년 3월 23일 타계하였다. 외솔 최현배는 한글 연구, 한국어 정책 수립, 교육학 및 한글 운동 등에 관한 20여 권의 저서 및 100여 편의 논문 등 많은 저술을 남겼다. 특히 한글 연구 부분에서는 『한글갈』과 『우리말본』이 대표적 연구 성과이며, 그 외에도 『조선민족갱생의 도』, 『민주주의와 국민도덕』, 『나라사랑의 길』, 『나라 건지는 교육』 등의 저서가 있다. 또한 공동으로 작업·편찬한 『한글 맞춤법 통일안』, 『조선어 표준말 모음』, 『외래어 표기법』, 『새 한글 사전』, 『한국지명총람』 등도 있습니다. 1970년에는 유고집인 『한글만 쓰기의 주장』이 간행되었습니다.

병영성 권역_외솔최현배선생기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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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이 목숨’ 외솔의 흔적을 찾아 아마 많은 사람들이 ‘한글’이라고 하면 훈민정음을 창제한 세종대왕을 먼저 떠올릴 겁니다. 하지만 세종대왕 외에도 한글 보급에 이바지한 많은 한글학자들이 있는데요. ‘한글은 목숨’이라며 일제강점기 우리말을 지키기 위해 힘썼던 외솔 최현배 선생이 그중 한 분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가로쓰기를 하고 한글 전용으로 된 책을 읽고 맞춤법이 통일된 것도 모두 최현배 선생 덕분입니다 “국어는 우리 민족정신의 형성 기반이며 우리의 생각과 행동 세계를 지배하는 것”이라는 국어학자 주시경 선생의 언어관에 영향을 받아 최현배 선생 역시 평생 국어 운동의 길로 들어섰습니다. 하지만 바로 그 해, 한일 합방이 되어 우리말은 ‘국어’의 지위를 잃고 일본어가 국어가 됐으며, 우리말은 ‘조선어’가 됐습니다. 그러자 최현배 선생은 1920년부터 우리말을 가르치고 연구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때 국어의 문법 체계를 세울 목적으로 어법 및 문법에 관한 [우리말본]의 초고를 만들었습니다. 조선어학회의 전신인 조선어 연구회의 회원이 되어 <한글>지를 창간하고, ‘한글날’ 제정에 참여하기도 했죠. 하지만 1942년,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검거돼 해방이 될 때까지 옥중 생활을 해야 했는데요. 조선어학회 사건은, 일제가 조선어학회를 독립운동 단체로 규정해 주요 회원들을 체포하며 징역형에 처한 사건입니다. 이 사건을 모티브로 만들어진 영화가 2019년에 개봉한 [말모이]입니다. 울산은 한평생 교육자로, 한글학자로, 독립운동가로 살아온 외솔 최현배 선생의 고향인데요. 최현배 선생의 생가가 있는 중구 병영에 2010년 외솔기념관이 개관했습니다. 전시실에는 유족과 한글 관련 단체로부터 기증받은 『우리말본』 『한글갈』 『조선민족 갱생의 도』 등 일반 서적 1만여 권과 최현배 선생이 생전에 사용하던 물건이 전시돼 있습니다. 2층에는 생가터가 있는데 집터와 축대만 남아 있던 생가를 2008년에 복원했습니다. 또한 기념관 옆에는 외솔한옥도서관이 있는데 한옥의 정취를 느끼며 고즈넉하게 책을 읽고 싶다면 같이 들러보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병영성 권역_산전샘과 어련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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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옥 게스트하우스 (가성비 숙소) 400여 년 전 만들어진 자연샘 울산 중구엔 마르지 않는 샘물이 있습니다. 이 샘물의 이름은 산전샘인데요. 이곳은 약 400년 전부터 자연수가 솟아올라 병영성을 지키던 병사들과 울산 주민들의 식수로 널리 사용됐고 물맛이 좋아 장생포에 주둔했던 미군들도 트럭을 타고 와 산전샘물을 길어갔다고 합니다. 여름에는 차고 겨울에는 김이 날 정도로 따뜻하며, 가뭄이나 장마 기간에도 샘물의 수량이 일정하게 유지되었다었다고 해요. 한때는, 지하수 고갈로 폐쇄됐다가 주민들이 흙을 묻어 보존하던 것을 2002년에 복원해 400년이 흐른 지금도 여전히 샘물이 샘솟고 있습니다. 산전샘이 있는 곳엔 관광객들이 쉬어갈 수 있는 한옥 숙소가 있는데요, 울산에서 한옥 체험이 가능한 가성비 좋은 숙소를 찾는다면 어련당을 추천합니다. 울산에서 가장 먼저 한국관광품질인증을 받은 한옥체험숙소인 어련당은 동천강이 흐르는 동동에 위치해 있는데요. 동천의 옛 이름인 어련천(語連川)에서 이름을 따와 '아름다운 말이 흐르는 집'이라는 뜻입니다. 어련당에는 총 7개의 객실이 있는데 객실 이름은 어련재를 포함해 조선시대 행정기관인 ‘이-호-예-병-형-공’의 음을 빌려지었습니다. 각 객실은 4~6명이 사용할 수 있으며, 여러 명이 숙박할 수 있어 가족 단위, 친구들끼리 오는 숙박객에게 인깁니다. 혹시 한옥이라고 해서 보안이 걱정된다면, 안심하십시오! 방문마다 보안장치가 돼 있어 안전하게 숙박할 수 있습니다. 어련당 길 건너로는 동천이 흐르고, 숙소 뒤로는 사적으로 지정된 병영성으로 가는 길이 이어져 있어 산책하기에도 좋은데요. 산책후에는 근처에 있는 외솔기념관과 외솔한옥도서관도 함께 들러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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