탑골공원 팔각정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99 (종로2가)
4가지 관점으로 본 이 장소
KORLENS 큐레이션탑골공원 팔각정은 종로2가 탑골공원에 있는 누정으로 1989년 9월 19일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고종 34년(1897) 도지부 고문인 영국인 브라운의 건의에 따라 탑골공원을 조성할 때 함께 건립하였다.
탑골공원은 서울 최초의 근대식 공원이며 팔각정은 1902년 고종 즉위 40년을 기념하는 대대적인 행사를 위해 군악대의 연주 장소로 지은 것으로 추정된다.
1919년 3·1운동 때에는 학생들과 시민이 이 누정 앞에 모여 독립선언문을 낭독하고 대한민국 만세를 외치며 시위 행진을 벌였던 곳이다.
장소 소개
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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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관광공사 오디(Odii) 음성 해설대본
청계천의 깊이를 재는 수표와 수표교 이 다리는 수표교입니다. 원래 석재로 만들어진 것을 대신해 나무로 복원해 놓은 것 인데요, 수표교라는 이름은 이 다리 아래에 수표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수표는 장영실이 측우기와 함께 만든 기상 관측기구로, 수표에는 기둥 양면에 물높이를 나타내는 표시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표시를 보고 청계천의 범람을 미리 예측하여 백성들이 대비할 수 있게 했습니다. 또한 수표교는 조선의 임금들이 선대왕들의 초상이 모셔져있는 영희전에 제사를 지내러 가기 위해서 자주 이용했던 다리인데요, 광통교와 더불어 다리밟기의 명소로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던 곳이기도 합니다. 이 수표교는 숙종임금과 훗날 왕비까지 오른 후궁 장희빈이 처음 만난 곳으로도 유명한데요. 숙종이 영희전에서 궁궐로 돌아오던 중 수표교 근처에서 역관의 딸인 장희빈을 보게 되었습니다. 숙종은 궁궐로 돌아가서도 장희빈을 잊지 못했고. 결국 장희빈을 불러 궁녀로 일하게 했습니다. 이후 장희빈은 숙종의 장자로 훗날 왕까지 오르는 왕자 윤을 낳은 후 왕비의 자리까지 올랐습니다. 수표교에는 재미난 이야기도 전해집니다. 조선시대 수표교 아래는 생활하수로 인해 물도 더럽고 지저분한 곳이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이곳은 갈 곳 없는 사람들이 모여 살던 곳으로 거지들의 은신처였습니다. 당시 이들은 맨땅 위에서 먹고 자는 사람들이라 하여 ‘땅꾼’이라 불렸습니다. 그러나 땅꾼들을 불쌍히 여긴 영조임금은 그들의 생계를 위해 뱀을 파는 독점권을 주었고, 오늘날까지도 뱀을 잡는 사람을 ‘땅꾼’이라고 부르게 되었습니다. 수표교를 지나 청계천을 따라 걷다보면 하늘로 쏘아지는 안개분수에 아름다운 레이저 불빛들이 그려지는 청계천 명물 디지털캔버스를 볼 수 있습니다. 가족이나 연인과 함께 감상하며 즐거운 시간을 함께 보내보세요.
대본
새해를 알리는 보신각 범종 지금 계신 이곳 종로의 이름은 어디에서 나왔을까요? 바로 보신각에서 유래되었습니다. 보신각의 원래 이름은 종각으로, 1895년에 대한제국의 황제인 고종이 보신각이라 이름 지은 것이죠. 그런데 고종은 무엇 때문에 종각이라 부르던 이 누각의 이름을 보신각으로 바꿨을까요? 이는 조선이 유교사상을 바탕으로 세워진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조선은 유교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인·의·예·지·신의 다섯 가지 개념을 중요하게 여겼고, 인•의•예•지를 따서 흥인문, 돈의문, 숭례문, 홍지문으로 나뉘고, 조선 말기에 4대문의 기를 보충하기 위해 보신각을 세운 것입니다. 그런데 사실 누각인 보신각과 보신각 안에 걸려 있는 범종은 한 쌍이 아니었습니다. 원래 보신각 범종은 조선을 세운 태조 이성계의 두 번째 부인 신덕왕후의 능 곁에 있었는데요. 이를 탑골공원 자리에 있었던 원각사로 옮겨놓았다가, 임진왜란 후에 원래의 종각과 종이 불타면서 보신각 범종을 종각에 걸게 된 것이죠. 하지만 이마저도 한국전쟁 때 소실되어 1986년 새로이 종을 제작하여 걸게 되었습니다. 보신각 범종은 조선시대부터 새벽 4시에 33번의 종소리로 날마다 아침을 알리고 매일 밤 10시에 28번의 종소리로 밤을 알렸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도성 내에 큰 화재가 나도 종을 쳐서 모든 백성들에게 알렸습니다. 현재는 새해 첫날 0시에 33번의 종소리를 울려 온 국민의 새로운 출발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보신각 타종 행사는 새해 첫째 날 이외에도 1월 2일부터 12월 24일까지 월요일을 제외한 매일 정오에 타종행사를 진행합니다. 서울시청 홈페이지를 통해 신청하면 정해진 날 매일 낮 12시에 보신각의 종을 12번 치는 타종체험을 할 수 있는데, 덕수궁에서 교대식을 마친 당직 수문장과 군사들도 참여합니다. 타종체험 후에는 타종관들과 기념촬영도 할 수 있고, 타종체험증서도 받을 수 있습니다.
대본
조선시대 쇼핑타운, 육의전과 시전 9층 건물 지하에 위치한 이 박물관은 육의전 박물관입니다. 2003년 12월 말, 한 건설사가 주상복합건물을 세우기 위해 낡은 건물을 철거하던 중 육의전의 모습이 너무나 자세히 남아있어 이를 보존 처리하면서 박물관이 만들어졌습니다. 육의전은 조선시대 국가에서 공인한 상점으로 일정한 세금을 내고 비단, 무명, 종이, 생선 등을 판매했던 여섯 종류의 상점을 말합니다. 육의전은 지금의 종각역이 있는 종로 사거리 부근에 위치했는데요, 당시에는 그 부근을 운종가라고 불렀습니다. 조선시대 때 운종가에는 약 2,500여 칸의 시전이 배치되어 있는 큰 규모의 상점가였죠. 박물관의 내부로 들어가면 육의전을 상징하는 깃발들이 걸려있고, 유리바닥 밑으로는 시전 행랑을 복원한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15~17세기 시대별로 시전들의 위치를 확인할 수 있는 지도와 상인들의 흥정하는 모습이 담긴 애니메이션이 있어 당시 시장의 모습을 엿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박물관에는 피맛골도 복원되어 있는데요. 피맛골은 ‘말을 피하는 길’에서 유래했습니다. 당시 운종가는 경복궁과 연결되어 왕과 신분이 높은 사람들이 많이 지나다녔습니다. 신분이 낮은 사람들은 이들과 마주치면 걸음을 멈추고 길가로 비켜서서 땅에 엎드려야 했기 때문에 이들을 피하기 위해 골목으로 지나 다녔습니다. 피맛골은 두 사람이 나란히 걸으면 겨우 지나갈 정도로 좁은 골목이지만, 맛있고 가격이 저렴한 음식점들이 즐비한 종로의 명소였습니다. 하지만 도심재개발로 인해 지금은 종로 북쪽과 돈화문로에만 일부 남아있습니다. 아직도 해장국•생선구이•낙지볶음•빈대떡 등을 파는 식당과 술집•찻집들이 모여 있어 종로에 온 사람들은 꼭 한번쯤은 찾는 맛의 골목이랍니다.
대본
3.1 독립운동의 발상지 이곳은 탑골공원입니다. 탑골공원 정문에 들어서기 전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건 ‘삼일문’ 이라 적힌 한글 현판입니다. 왜 탑골공원의 정문 이름을 삼일문이라고 지었을까요? 그 이유는 탑골공원이 독립운동 중 가장 큰 3.1 독립운동이 시작된 곳이기 때문이죠. 일제강점기 1919년에 민족대표 33인은 탑골공원에서 독립선언서를 낭독하려다 장소를 바꿔 인사동에 위치한 태화관에서 독립선언서를 낭독했습니다. 그러나 학생대표 정재용이 탑골공원 팔각정에 마련된 단상에 올라서서, 군중들 앞에서도 독립선언문을 낭독했습니다. 탑골공원에서 시작한 ‘대한 독립만세’라는 군중들의 함성소리는 크게 울려 퍼졌고, 3.1 운동은 전국으로 확산되었습니다. 팔각정을 중심으로 3.1운동 당시의 모습을 기록한 기념 부조와 찬양비, 독립선언서 내용이 적혀 있는 독립선언 기념탑과 3.1운동을 이끈 민족대표 33인의 지도자라 할 수 있는 독립투사 의암 손병희 선생의 동상 등이 이곳 탑골공원이 3.1운동의 발상지였음을 증명해 주고 있습니다. 한적한 도시공원으로만 생각했던 탑골공원이 3.1 운동의 발상지라니, 새삼 탑골공원이 새롭지 보이지 않나요? 그런데 탑골공원이라는 이름은 어디서 유래한 것일까요? 서울 최초 도시 공원 탑골공원에는 3.1 운동뿐만 아니라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의 역사도 함께 숨 쉬고 있습니다. 원래 탑골공원 자리에는 고려시대 흥복사가 있었고, 조선 초기에는 흥복사 터에 원각사라는 절이 세워져 있었습니다. 그 흔적으로 남아 있는 것이 바로 팔각정 오른쪽에 위치한 대원각사비입니다. 원각사비는 원각사를 창건한 경위가 적혀져 있는 비석인데, 불교 신자였던 세조임금은 양주 회암사에서 나누어 온 사리를 기념하기 위해서, 흥복사 터에 원각사를 짓고, 13층 석탑을 세웠습니다. 그리고 다음 왕인 성종이 원각사의 창건 이야기를 대원각사비에 새겨 넣은 것이랍니다. 대원각사비는 거북이 모양의 거대한 받침돌을 만들고 그 등 위에 연잎을 새겨 비석을 세울 자리를 만들어, 비석 위에는 마치 살아있는 듯한 쌍룡 조각을 볼 수 있어요. 그리고 팔각정 뒤편에 위치한 국보 원각사지십층석탑 역시 원각사 시절에 세워진 석탑입니다. 과거에는 석탑 주변을 탑동 혹은 탑골 이라고 불렀기 때문에 지금의 탑골공원이라는 이름이 붙여지게 되었습니다. 석탑은 조선시대 석탑으로는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우수한 조각솜씨를 보여 주고 있습니다. 자세히 살펴보면 석탑의 아래에는 삼장법사가 손오공, 저팔계, 사오정 일행을 이끌고 인도에서 불법을 구해오는 과정이 새겨져 있고, 윗부분에는 부처님의 일생과 일화를 조각해 놓았습니다. 하지만 대리석으로 만들어 화려하고 세밀하게 조각할 수 있었던 원각사지 십층석탑은 손상되기도 쉬워 현재는 유리 보호벽을 설치하여 석탑을 보호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화려한 유산을 가지고 있던 원각사는 연산군 때 무너지고, 탑골공원 터는 오랜 세월 동안 방치되었습니다. 그러다 1897년 고종황제가 영국인 브라운의 건의를 받아들여, 공원으로 만들게 되었습니다. 탑골공원은 제사를 지내는 재실이나 음악연주회장으로 사용되다가 1920년에 서울 최초의 근대식 공원으로 변모해 일반인들에게 개방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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