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석구 사택 터
서울특별시 중구 청계천로 100
4가지 관점으로 본 이 장소
KORLENS 큐레이션민족대표 33인 가운데 한 사람인 신석구가 1919년 3·1운동 당시 살던 곳이다.
신석구(1875~1950)는 1907년 기독교에 입교하여 이듬해 세례를 받고 협성신학교에 입학하여 신학을 공부했다.
경기도와 강원도 등지에서 전도사로 일하다가 1917년 9월 남감리교연회에서 목사 안수를 받았다.
1919년 3월 1일 태화관에서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일경에 붙잡혀 2년 8개월 간 옥고를 치렀다.
장소 소개
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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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의 수원행차를 그린 정조반차도 멀리서도 확연히 눈에 띄는 저 벽화는 정조반차도입니다. 반차도는 길이 192m에, 사용된 타일 수가 4,960장이나 되는 세계 최대 규모의 도자벽화입니다. 반차도는 정조가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회갑잔치와 아버지 사도세자가 묻혀있는 현륭원에 참배를 하기 위해 수원화성으로 가는 모습을 그린 그림입니다. 이 반차도는 수선전도에서 시작합니다. 수선전도는 김정호가 직접 제작한 서울지도로 서울의 거리와 도로 시설 등이 상세하게 묘사되어 있으며, 현재의 지도와 비교해도 큰 차이가 없습니다. 그럼, 이제 반차도를 살펴볼까요? 행렬의 제일 앞부분을 보면 말을 탄 경기감사가 길을 안내하는 모습이 보이고요, 그 뒤로는 반차행렬을 총괄하는 우의정 채제공을 비롯해 84명의 별기대와 군관, 군인들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뒤로는 정조의 어머니 혜경궁 홍씨가 탄 가마가 보입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정조임금은 어디 계신 걸까요? 아쉽게도 정조 임금은 없습니다. 정조임금의 좌마만 그려져 있을 뿐이죠. 조선시대에는 왕의 옥체와 얼굴을 귀하게 여겨서 그림에 함부로 그려 넣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 반차도에서 정조를 찾아 볼 수 없는 것이죠. 왕의 얼굴은 살아계실 때 왕의 초상화라고 할 수 있는 어진에 그려졌고 왕이 세상을 떠난 후에야 공개되었습니다. 아직 끝이 보이지 않는 정조반차도에는 1,779명의 인원과 779필의 말이 표현되어 있는데요, 실제 행렬의 규모는 6,000여명에 달했고, 선두가 노량진 나루에 도착했는데도 행렬의 끝은 아직 창덕궁에서 길을 나서고 있을 정도로 아주 긴 행렬이었습니다. 또한 한강을 건너기 위해서 수많은 배들을 엮어 다리를 만들어 건넜다고 합니다. 무사히 수원화성에 도착한 정조는 아버지 사도세자의 묘소에 들러 성묘를 하고,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회갑 잔치를 열었습니다. 반차도는 그 당시에 가장 뛰어난 화가였던 김홍도의 지휘 아래, 최고의 화원들이 참가한 작품이었습니다. 반차도는 전체 대열을 뒤에서 본 모습으로 세밀하게 표현되어 있어서, 행렬에 참가한 자들의 위치를 한눈에 파악할 수 있도록 만들어졌습니다. 한명 한명 놓치지 않고 세밀하게 그려 넣어 당시 행차의 격식과 복식, 의상, 악대구성 등을 살필 수 있는 귀중한 역사적 자료인 반차도. 정조의 효심마저 엿볼 수 있는 소중한 그림입니다.
대본
청계천의 깊이를 재는 수표와 수표교 이 다리는 수표교입니다. 원래 석재로 만들어진 것을 대신해 나무로 복원해 놓은 것 인데요, 수표교라는 이름은 이 다리 아래에 수표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수표는 장영실이 측우기와 함께 만든 기상 관측기구로, 수표에는 기둥 양면에 물높이를 나타내는 표시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표시를 보고 청계천의 범람을 미리 예측하여 백성들이 대비할 수 있게 했습니다. 또한 수표교는 조선의 임금들이 선대왕들의 초상이 모셔져있는 영희전에 제사를 지내러 가기 위해서 자주 이용했던 다리인데요, 광통교와 더불어 다리밟기의 명소로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던 곳이기도 합니다. 이 수표교는 숙종임금과 훗날 왕비까지 오른 후궁 장희빈이 처음 만난 곳으로도 유명한데요. 숙종이 영희전에서 궁궐로 돌아오던 중 수표교 근처에서 역관의 딸인 장희빈을 보게 되었습니다. 숙종은 궁궐로 돌아가서도 장희빈을 잊지 못했고. 결국 장희빈을 불러 궁녀로 일하게 했습니다. 이후 장희빈은 숙종의 장자로 훗날 왕까지 오르는 왕자 윤을 낳은 후 왕비의 자리까지 올랐습니다. 수표교에는 재미난 이야기도 전해집니다. 조선시대 수표교 아래는 생활하수로 인해 물도 더럽고 지저분한 곳이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이곳은 갈 곳 없는 사람들이 모여 살던 곳으로 거지들의 은신처였습니다. 당시 이들은 맨땅 위에서 먹고 자는 사람들이라 하여 ‘땅꾼’이라 불렸습니다. 그러나 땅꾼들을 불쌍히 여긴 영조임금은 그들의 생계를 위해 뱀을 파는 독점권을 주었고, 오늘날까지도 뱀을 잡는 사람을 ‘땅꾼’이라고 부르게 되었습니다. 수표교를 지나 청계천을 따라 걷다보면 하늘로 쏘아지는 안개분수에 아름다운 레이저 불빛들이 그려지는 청계천 명물 디지털캔버스를 볼 수 있습니다. 가족이나 연인과 함께 감상하며 즐거운 시간을 함께 보내보세요.
대본
새해를 알리는 보신각 범종 지금 계신 이곳 종로의 이름은 어디에서 나왔을까요? 바로 보신각에서 유래되었습니다. 보신각의 원래 이름은 종각으로, 1895년에 대한제국의 황제인 고종이 보신각이라 이름 지은 것이죠. 그런데 고종은 무엇 때문에 종각이라 부르던 이 누각의 이름을 보신각으로 바꿨을까요? 이는 조선이 유교사상을 바탕으로 세워진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조선은 유교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인·의·예·지·신의 다섯 가지 개념을 중요하게 여겼고, 인•의•예•지를 따서 흥인문, 돈의문, 숭례문, 홍지문으로 나뉘고, 조선 말기에 4대문의 기를 보충하기 위해 보신각을 세운 것입니다. 그런데 사실 누각인 보신각과 보신각 안에 걸려 있는 범종은 한 쌍이 아니었습니다. 원래 보신각 범종은 조선을 세운 태조 이성계의 두 번째 부인 신덕왕후의 능 곁에 있었는데요. 이를 탑골공원 자리에 있었던 원각사로 옮겨놓았다가, 임진왜란 후에 원래의 종각과 종이 불타면서 보신각 범종을 종각에 걸게 된 것이죠. 하지만 이마저도 한국전쟁 때 소실되어 1986년 새로이 종을 제작하여 걸게 되었습니다. 보신각 범종은 조선시대부터 새벽 4시에 33번의 종소리로 날마다 아침을 알리고 매일 밤 10시에 28번의 종소리로 밤을 알렸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도성 내에 큰 화재가 나도 종을 쳐서 모든 백성들에게 알렸습니다. 현재는 새해 첫날 0시에 33번의 종소리를 울려 온 국민의 새로운 출발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보신각 타종 행사는 새해 첫째 날 이외에도 1월 2일부터 12월 24일까지 월요일을 제외한 매일 정오에 타종행사를 진행합니다. 서울시청 홈페이지를 통해 신청하면 정해진 날 매일 낮 12시에 보신각의 종을 12번 치는 타종체험을 할 수 있는데, 덕수궁에서 교대식을 마친 당직 수문장과 군사들도 참여합니다. 타종체험 후에는 타종관들과 기념촬영도 할 수 있고, 타종체험증서도 받을 수 있습니다.
대본
조선시대 쇼핑타운, 육의전과 시전 9층 건물 지하에 위치한 이 박물관은 육의전 박물관입니다. 2003년 12월 말, 한 건설사가 주상복합건물을 세우기 위해 낡은 건물을 철거하던 중 육의전의 모습이 너무나 자세히 남아있어 이를 보존 처리하면서 박물관이 만들어졌습니다. 육의전은 조선시대 국가에서 공인한 상점으로 일정한 세금을 내고 비단, 무명, 종이, 생선 등을 판매했던 여섯 종류의 상점을 말합니다. 육의전은 지금의 종각역이 있는 종로 사거리 부근에 위치했는데요, 당시에는 그 부근을 운종가라고 불렀습니다. 조선시대 때 운종가에는 약 2,500여 칸의 시전이 배치되어 있는 큰 규모의 상점가였죠. 박물관의 내부로 들어가면 육의전을 상징하는 깃발들이 걸려있고, 유리바닥 밑으로는 시전 행랑을 복원한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15~17세기 시대별로 시전들의 위치를 확인할 수 있는 지도와 상인들의 흥정하는 모습이 담긴 애니메이션이 있어 당시 시장의 모습을 엿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박물관에는 피맛골도 복원되어 있는데요. 피맛골은 ‘말을 피하는 길’에서 유래했습니다. 당시 운종가는 경복궁과 연결되어 왕과 신분이 높은 사람들이 많이 지나다녔습니다. 신분이 낮은 사람들은 이들과 마주치면 걸음을 멈추고 길가로 비켜서서 땅에 엎드려야 했기 때문에 이들을 피하기 위해 골목으로 지나 다녔습니다. 피맛골은 두 사람이 나란히 걸으면 겨우 지나갈 정도로 좁은 골목이지만, 맛있고 가격이 저렴한 음식점들이 즐비한 종로의 명소였습니다. 하지만 도심재개발로 인해 지금은 종로 북쪽과 돈화문로에만 일부 남아있습니다. 아직도 해장국•생선구이•낙지볶음•빈대떡 등을 파는 식당과 술집•찻집들이 모여 있어 종로에 온 사람들은 꼭 한번쯤은 찾는 맛의 골목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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