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인지문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288 (종로6가)
4가지 관점으로 본 이 장소
KORLENS 큐레이션흥인지문은 서울성곽 8개의 문 가운데 동쪽에 있는 문으로 서울성곽은 서울 한양도성의 옛 이름이며 옛날 중요한 국가시설이 있는 한성부를 보호하기 위해 만들었다.
동쪽에 있는 큰 문이라 하여 동대문이라고도 부른다.
조선 태조 5년(1396) 도성 축조 때 건립했으며 단종 원년(1453)에 고쳐 지었고, 지금 있는 문은 고종 6년(1869)에 새로 지은 것이다.
앞면 5칸, 옆면 2칸 규모의 2층 건물이고 지붕은 앞면에서 볼 때 사다리꼴모양을 한 우진각 지붕이다.
장소 소개
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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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관광공사 오디(Odii) 음성 해설대본
조선시대 최대 준설 공사 현장 지금 보시는 다리가 바로 오간수교입니다. 오간수교는 원래 동대문이라 불리는 흥인지문 성벽 아래의 오간수문이었는데요. 한양 도성 내부에서 흐르는 청계천 물길이 오간수문을 통해서 도성 밖으로 나갈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물뿐만 아니라 온갖 오물들이 이 오간수문을 통해 흘러나갔기 때문에 '더럽기로는 오간수문'이라는 말이 생기기도 했습니다. 오간수문은 도성의 4대문과 달리 경계가 허술했기 때문에 몰래 도망치는 자들의 탈출구로 이용되기도 했는데요. 의적 임꺽정도 부하들과 함께 감옥을 탈출한 후 이곳 오간수문을 통해 도성 밖으로 도망쳤다고 합니다. 조선시대의 청계천은 산에서 흘러내린 흙과 백성들의 생활하수로 인해 바닥에 흙이 많이 쌓여 홍수가 자주 일어났는데요. 홍수를 막기 위해 조선 시대 내내 크고 작은 준천 사업이 이루어지다가 영조 임금에 이르러서는 준천사라는 관청을 만들고 대대적인 준설공사가 진행되었습니다. 그래서 오간수교 아래에는 영조가 개천 준설공사에 공이 있는 신하들에게 내린 ‘영조어필’, 번암 채제공이 청계천 석축 공사 후 적은 ‘준천가’, 영조의 모습을 그린 ‘준천도’를 전시해 놓았습니다. 오간수문은 조선시대 때까지 유지되다가 일제시대 때 물길의 흐름을 막는다는 이유로 해체되었고, 같은 자리에 청계천을 건널 수 있는 콘크리트 재질의 오간수교가 세워지게 되었습니다. 나중에는 다리 옆으로 전차가 다니는 노선이 생기기도 했고,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제였던 순종의 장례행렬이 지나가면서, 4.5m였던 다리가 8.2m로 확장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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