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RLENS

신당동 떡볶이타운

서울특별시 중구 다산로33길 10-18 (신당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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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LENS 큐레이션
외국인
Foreigner

신당동 떡볶이타운은 골목을 따라 떡볶이집이 양쪽으로 들어서 있는 곳이다.

커플
Couple

골목을 이루게 된 건 70년대 후반부이며, 80년대로 넘어오면서 신당동 떡볶이 골목의 전성기를 맞이하였다.

가족
Family

당시 학생이었던 아이들이 중년이 되어 찾는 곳이 바로 이 골목이다.

솔로
Solo

사연과 함께 음악을 틀어주던 이른바 멋쟁이 DJ 오빠가 신당동 떡볶이 골목의 상징으로 떠올랐다.

무장애 편의시설

열린관광 모두의 여행 데이터
안내견 환영

장애인·고령자·영유아 동반 방문객을 위한 편의시설 정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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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 소개

신당동 떡볶이타운은 골목을 따라 떡볶이집이 양쪽으로 들어서 있는 곳이다. 골목을 이루게 된 건 70년대 후반부이며, 80년대로 넘어오면서 신당동 떡볶이 골목의 전성기를 맞이하였다. 80년대에 새롭게 등장한 건 떡볶이집마다 있었던 DJ박스다. 사연과 함께 음악을 틀어주던 이른바 멋쟁이 DJ 오빠가 신당동 떡볶이 골목의 상징으로 떠올랐다. 또한 이 시기는 고교야구의 전성기였는데 인근에 있는 동대문야구장에서 덕수상고와 선린상고가 맞붙는 날이면 경기가 끝나고 신당동 떡볶이 골목은 학생들로 넘쳐났다. 당시 학생이었던 아이들이 중년이 되어 찾는 곳이 바로 이 골목이다. 그들은 그렇게 이십 년이 넘는 단골이 되었고, 전통의 골목이기에 서울미래유산으로도 지정되었다. 사실 떡볶이 골목의 역사는 70년대를 훨씬 더 지나 5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떡볶이 골목에 마복림할머니집이 있는데, 그 할머니 말에 따르면 1953년부터 떡볶이를 팔기 시작했다고 한다. 처음에는 그냥 고추장만 넣어 떡볶이를 만들었고, 그렇게 시작된 신당동 떡볶이는 수십 년 세월이 흐르면서 심심풀이 간식이 아닌 한 끼 식사로 충분한 하나의 요리로 자리 잡았다. 요즘은 떡볶이에 계란, 당면, 어묵, 쫄면, 라면 사리는 기본이고 물오징어에 새우, 치즈까지 들어가 새로운 입맛을 사로잡고 있다.

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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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관광공사 오디(Odii) 음성 해설
광희문
144
대본

광희문 1880년대 후반 한양도성 내에 콜레라가 창궐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감염되어 하루에도 수백 명이 죽어 나갔습니다. 그야말로 생지옥이었지요. 이화학당을 세운 선교사 스크랜턴이 어느 날 광희문으로 갔다가 수많은 아이들이 광희문 밖에 버려진 것을 보았습니다. 스크랜턴이 조선인 안내원에게 물었습니다. “아이들이 성문 밖에 버려진 까닭이 무엇입니까?” 안내원이 대답했습니다. “이 아이들은 콜레라에 감염되었습니다. 죽음이 가까워 성 밖으로 옮겨놓은 것입니다.” 스크랜턴은 기가 막힌 표정으로 물었습니다. “죽어가는 아이들을 집에서 치료해야지 왜 성 밖으로 몰아냅니까?” 혀를 끌끌 차며 고개를 가로젓던 스크랜턴은 결국 한 아이를 데려와 치료하고, 이화학당에 다니게 했습니다. 조선 시대에는 도성 안에 무덤을 조성할 수 없었습니다. 성안에서 생을 마감한 이는 무조건 성을 나가야 했습니다. 이 때 시신은 소의문과 광희문으로만 나갈 수 있었습니다. 광희문을 시구문이라 부른 것도 이 때문입니다. 광희문에는 애틋한 이야기가 많습니다. 시구문 돌가루가 만병통치약으로 불리던 때가 있었습니다. 지방 사람들이 한양에 간다고 하면 “시구문 돌가루를 긁어 오라”는 말까지 했다고 합니다. 이는 세상 어떤 병이라도 시구문이 겪는 고난을 이기지 못하리라는 미신에서 나온 것입니다. 1907년에도 큰 사건이 있었습니다. 일제가 조선 군대를 강제로 해산했으나, 이에 불복한 조선군과 결국 시가전을 벌였습니다. 조선군의 패배로 전투가 막을 내리자 일제는 조선군시신 120여 구를 광희문 밖에 늘어놓고 가족에게 찾아가라고 했는데, 며칠간 곡소리가 끊이지 않았다고 합니다. ‘광명의 문’이라는 이름에 어울리지 않게 우여곡절이 담긴 서글픈 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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