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RLENS

공주향교

충청남도 공주시 향교1길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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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가지 관점으로 본 이 장소

KORLENS 큐레이션
외국인
Foreigner

공주향교는 처음 지은 정확한 연대는 알 수 없으나, 원래 웅진동 송산리에 있었으나 인조 원년(1623)에 현재의 자리로 옮겨지었다고 전한다.

커플
Couple

그 뒤 여러 차례 보수가 있었고, 1954년 문묘, 명륜당, 동재, 존경각 등을 보수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다.

가족
Family

즉 교육 공간은 앞쪽에, 제사 공간은 뒤쪽에 구분하여 배치했다.

솔로
Solo

뒤쪽 한층 높은 곳에 있는 내삼문을 들어서면 정면에 사당인 대성전이 있으며, 그 양쪽에 동무와 서무가 있다.

장소 소개

공주향교는 처음 지은 정확한 연대는 알 수 없으나, 원래 웅진동 송산리에 있었으나 인조 원년(1623)에 현재의 자리로 옮겨지었다고 전한다. 그 뒤 여러 차례 보수가 있었고, 1954년 문묘, 명륜당, 동재, 존경각 등을 보수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다. 경내는 2단으로 땅이 나뉘어 있는데, 외삼문을 들어서면 강당인 명륜당이 있고 그 양쪽에 동재와 존경각이 있다. 뒤쪽 한층 높은 곳에 있는 내삼문을 들어서면 정면에 사당인 대성전이 있으며, 그 양쪽에 동무와 서무가 있다. 즉 교육 공간은 앞쪽에, 제사 공간은 뒤쪽에 구분하여 배치했다. 조선시대에는 국가로부터 토지와 노비·책 등을 지급받아 학생을 가르쳤으나, 갑오경장(1894) 이후 교육 기능은 없어지고 제사 기능만 남아있다. 공주향교는 지역유림들의 모성계에서 기금을 마련하여 운영하고 있으며, 소장도서로 89종 337 책이 있다. 1978년 이러한 가치를 인정받아 충청남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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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디오 가이드

한국관광공사 오디(Odii) 음성 해설
무령왕릉의 축조과정과 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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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본

무령왕릉의 축조과정과 기술 [해설] 여기는 백제 무령왕릉의 축조현장입니다. 새로운 신기술로 축조되어지는 무령왕릉의 관심이 날로 커지는 이때, 현장의 기술관들에게 직접 무령왕릉의 축조 과정에 대한 궁금증을 풀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안녕하세요. 기술관님. [기술관] 벽돌에 살고 벽돌에 죽는 기술관입니다. 안녕하세요. [해설] 벽돌에 살고 죽다니요? 무슨 말씀이신지… [기술관] 예, 무령왕릉은 지금까지의 왕릉과는 차원이 다른 무덤입니다. 중국 벽돌 무덤양식을 도입해 저희만의 방법으로 새롭게 발전시킨 벽돌무덤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해설] 벽돌무덤이라 생소한데요. 무덤을 만드는 과정을 자세히 설명 좀 해주세요. [기술관] 총 5단계가 있는데 하나씩 설명해 드리지요. 첫 단계로 무덤을 만들기 전에 제일 먼저 나무관을 만드는 것입니다. 무령왕릉에 들어가는 나무는 습기에 오래 견디는 금송을 사용하는데요. 백제에는 없는 나무라 일본에서 목재를 들여와 만들다 보니 고생이 참 많았습니다. 아! 이건 비밀인데 나무관은 무령왕이 살아있을 때 미리 만들어졌답니다. 하하하. [해설] 그다음은요? [기술관] 두 번째로는 벽돌 제작과 부장품을 모으는 작업을 합니다. 무덤에는 다양한 크기와 형태, 무늬가 제각각인 벽돌이 들어가기 때문에 철저한 계산이 필요합니다. 그래서인지 제 머리에 흰머리가 많아졌답니다. 보실래요? [해설] 아니 됐습니다. 여기 벽돌에 뭔가 적혀 있네요. 뭐죠? 그다음 작업은요? [기술관] 급한 성격이시네. 이 벽돌은 무덤 입구에 들어가는 글자인데 벽돌을 만들기 시작한 시기를 적은 글입니다. 무령왕께서 승하하시기 10년 전부터 만들기 시작했다는 기록이지요. 다음 순서로 무덤 터를 닦고 무덤을 축조하는 과정입니다. 여기서부터 백제 최고의 모든 기술력이 집중되는 작업 과정이죠. 아치형으로 벽돌을 쌓아올려 무덤을 만드는데, 접착제를 하나도 사용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해설] 그럼 벽돌이 약해져서 무령왕릉이 무너지지 않을까요? [기술관] 절대 무너지지 않습니다. 무령왕릉은 완벽한 설계를 바탕으로 만든 아치형 무덤이기 때문이죠. 이런 형태의 무덤을 만들기 위해선 사용할 위치에 따라 모양이나 문양이 다른 다양한 형태의 벽돌이 필요하죠. 이런 벽돌 형태만 30여 가지나 됩니다. 정말 대단하지 않습니까. 하하하. 이렇게 준비된 벽돌을 퍼즐 맞추듯 잘 짜 맞춰야 절대 무너지지 않는 무덤이 됩니다. 준비된 벽돌을 쌓기 위해서는 설계도에 의한 철저한 계산 없인 절대 불가능한 일이에요. 먼저 나무틀을 만들고, 그 위에 벽돌을 쌓아 올린 후 틀을 제거하는 방법을 사용하고 있죠. 이런 독창적인 방법이야말로 백제 최고의 기술이라 할 수 있어요. [해설]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정말 무령왕릉에는 역사적으로 중요한 부장품들도 많이 들어가고 최신식의 무덤기술로 제작되고 있군요. 후세사람들이 이 무덤을 통해 백제 고유의 문화를 알고 자부심을 느낄 수 있었던 현장이었습니다.

송산리 6호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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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산리 6호분 지금부터 비밀의 무덤으로 여러분을 안내할게요. 벽돌로 쌓은 아치형의 방이 보이시죠? 자, 함께 안으로 들어 가 볼까요? 이곳은 보존을 위해 출입이 통제된 송산리고분군 6호분을 복원해놓은 거예요. 말이 좀 어렵나요? 쉽게 풀이하자면, 백제의 왕들의 무덤이 모여 있는 공주 송산리에서 발굴된 6번째 무덤이라는 뜻이에요. 안타깝게도 우리나라의 고대국가의 무덤들은 이처럼 그 주인을 알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에요. 왕의 무덤에는 금관과 같은 귀한 보물들을 같이 묻기 때문에 도굴꾼들의 표적이 되거든요. 이 무덤 역시 큰 규모였기 때문에 무령왕릉의 무덤이 아닐까 해서 도굴의 피해를 입어 아무것도 남지 않게 되었죠. 불행인지 다행인지 덕분에 바로 근처에 있던 진짜 무령왕릉이 무사할 수 있었어요. 그럼 이 무덤의 진짜 주인은 누구일까요? 이 송산리 6호분의 특징은 벽돌로 된 돌방무덤으로 나중에 발견된 무령왕릉과 아주 비슷한 구조예요. 그렇다면 무령왕과 비슷한 시기에 살았던 왕이나 왕의 가족일 가능성이 높아요. 더군다나 송산리 6호분에서는 무령왕릉에는 없는 벽화가 발견되었답니다. 한번 고개를 들어 살펴보시겠어요? 조금 흐릿하긴 하지만 네 방향으로 청룡, 백호, 주작, 현무가 보이나요? 무덤의 주인을 지키기 위해 사방의 벽에 그려진 사신도는 그 자체로 귀중한 문화유산인 거예요. 이 정도나 되었으니 무령왕릉이라고 착각한 것도 무리는 아니었죠. 이후에도 사람들은 송산리 6호분을 정성껏 돌보았고, 어느 날 무덤에 습기가 차오르기 시작하자 주변에 배수로 공사를 하게 되었어요. 그러다 새로운 무덤을 발견하게 된 거죠. 그것도 단 한 번도 도굴이 되지 않은 왕의 무덤을요. 그 무덤에서 백제 사람들의 손길이 생생히 살아있는 귀한 보물들과 무령왕의 무덤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묘지석이 발견되었습니다. 이처럼 무령왕릉의 발굴은 천 년이 넘도록 어둠 속에 있던 백제를 밝혀주는 빛과 같았던 거예요. 그럼 이제 위기의 백제를 중흥으로 이끌었던 위대한 왕 무령왕에 대해 알아볼까요?

백제를 다시 일으킨 무령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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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를 다시 일으킨 무령왕 여러분 눈앞에 있는 흉상은 백제 제25대 임금인 무령왕이에요. 바람 앞의 등불 같았던 백제를 다시 일으켜 세웠던 분이죠. 무령왕이 왕으로 오르기 전, 백제는 매우 어려운 상황이었어요. 백제의 전성기였던 4세기 중엽에는 한반도 남쪽 일대를 비롯해 중국과 일본의 해외무역을 장악하고 있었어요. 일본에 문화를 전파하는 등 정치와 문화를 꽃피웠던 시기였죠. 하지만 5세기 말, 고구려와의 오랜 전투로 국력을 소모하고 전투 중 왕마저 죽는 어려운 상황에 놓였어요. 이후, 수도를 빼앗기는 수모를 당하며 지금 공주인 웅진으로 눈물의 천도를 했답니다. 더구나 내부분열이 심해져 귀족들에게 왕들이 피살되는 일들도 일어났죠. 그 어려운 시기에 등장한 사람이 바로 눈앞에 있는 무령왕입니다. 왕위에 오른 무령왕은 왕실을 위협하던 귀족 세력과 균형을 유지하며 점차 왕권을 강화해 나갔어요. 그리고 민심을 다잡기 위해 수리시설을 확충하고 유민을 귀농시켜 경제적 안정을 꾀했죠. 이렇게 내실을 다지던 무령왕은 고구려와의 전쟁에서도 연이은 승리를 거두고, 빼앗겼던 영토를 조금씩 되찾았어요. 또한 중국 양나라와의 외교관계를 강화하고 일본에 문화를 전파하는 등 6세기 초, 백제를 중흥으로 이끌었죠. 하지만 백제의 멸망 이후 천 년이 지나는 시간 동안 대부분의 유물들은 파괴되고 왕들의 무덤조차 모두 빈 껍질로 발견되어 백제의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었어요. 1971년, 기적처럼 무령왕의 무덤이 완전한 모습으로 나타나게 된 거죠. 그제서야 사람들은 기록으로만 존재했던 무령왕에 대한 진실, 찬란했던 백제인의 문화를 이해할 수 있게 됐습니다. 살아서 위기의 백제를 중흥으로 이끈 무령왕. 1500년이 지난 오늘날, 잊혀져버린 왕국 백제의 신비를 보여주려 다시 나타난 거예요. 자, 지금부터 무령왕이 들려주는 백제의 이야기 속으로 함께 떠나볼까요?

두 장의 석판이 전해준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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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장의 석판이 전해준 비밀 [해설] 여러분 앞에 보이는 두 장의 석판은 무령왕과 왕비의 묘지석이에요. 묘지석은 무덤에 묻힌 사람의 이름과 생년월일 등 주인공의 일대기를 적어 놓은 것인데요. 우리나라의 고대 무덤은 묻힌 자에 관한 기록이 남아있지 않는데, 이 묘지석을 통해 우리는 무덤의 주인공이 무령왕임을 알게 되었어요. 왕의 묘지석에 쓰인 ‘사마왕’은 무령왕의 또 다른 이름이기 때문이죠. 그리고 여기에는 일반 묘지석과는 다르게 흥미로운 내용이 담겨 있어요. [여학생] 어떤 내용인데요? [해설] 묘지석 뒷면을 보면 ‘땅의 신에게 무덤으로 사용할 토지를 샀다는 내용’이 적혀 있어요. 일종의 묘지 매매계약서죠. [여학생] 네? 왕이 자기 무덤을 만들려고 땅을 샀다고요? [해설] 네, 그래요. 무령왕릉에서는 중국 양나라의 동전이 발견됐는데, 바로 땅의 신에게서 토지를 사기 위해 사용된 거예요. [여학생] 정말 재밌네요. 그런데 석판이 두 개인데 어느 것이 무령왕 거예요? [해설] 오른쪽에 있는 게 무령왕의 묘지석이고 왼쪽이 왕비의 묘지석이에요 [여학생] 그렇구나. 그런데, 묘지석엔 뭐라고 쓰여 있는 거예요? [해설] 왕의 묘지석부터 설명해 줄게요. 여기엔 사마왕, 즉 무령왕이 523년에 62세의 나이로 죽었다는 내용이 쓰여 있어요. 그리고 왕비 묘지석에는 ‘왕비가 526년에 수명을 다해 죽었다는 내용과 무령왕이 땅의 신에게서 토지를 매입한다는 내용이 적혀 있어요. 우리나라의 고대사는 당시의 기록이 많지 않아 연구에 어려움이 있어요. 또, 남아 있는 기록들도 내용이 서로 일치하지 않는 부분이 있죠. 하지만 이 묘지석에 적힌 무덤 주인과 사망년도는 백제만이 아니라 신라, 고구려 나아가 동아시아의 시대 흐름의 기준점을 마련해 주었어요. 그저 작은 돌판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 담긴 글씨들은 어두운 역사의 흐름을 밝혀 주는 한 줄기 빛과 같은 존재였답니다.

벽돌무덤, 무령왕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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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돌무덤, 무령왕릉 여기는 무령왕릉 내부를 재현한 곳이에요. 그럼 함께 들어가 보실까요? 아치형의 넓은 방이 나왔네요. 여기가 바로 무령왕릉의 묘실인데요, 바닥을 한 단 높게 쌓아올린 걸 확인할 수 있을 거예요. 그 이유는 왕과 왕비를 모실 신성한 공간이기 때문에 다른 곳과 분명한 경계를 짓기 위해 만든 것이랍니다. 고개를 들어 이제 벽면을 한번 살펴보세요. 연꽃무늬 벽돌이 바탕을 이루고 있고, 중간에 불꽃무늬 등잔이 설치되어 있죠? 등잔은 관을 안치하고 마지막 의례를 행할 때 쓰인 것으로 보여요. 마지막으로 무덤 입구를 막을 때에는 무덤 안에 불이 켜진 상태였다가 기름이 떨어지면서 등잔의 불이 꺼지고 무덤 속은 어둠 속에 잠기는 거죠. 무령왕릉 같은 벽돌무덤은 왕의 관을 먼저 모신 후 나중에 왕비를 합장하는데 편리한 구조를 가지고 있어요. 하지만 관 위에 수많은 돌을 쌓아 도굴이 힘들었던 신라의 무덤과는 달리, 무덤의 입구가 만들어져 있어 도굴에는 취약했죠. 다행히 무령왕릉은 그 존재가 알려지지 않아 오늘날까지 온전한 모습으로 남을 수 있었어요. 다음은 무령왕릉에 어떤 보물들이 있었는지 살펴볼까요? 무덤 내부 관 출구를 나오면 왼쪽편에 발굴 당시 무령왕릉 내부를 전시한 무령왕릉 현시의 단면이 있어요. 함께 가보실까요? 이곳은 무령왕릉의 바닥을 간략하게 만들고 그 위에 주요 유물을 배치했어요. 등잔이 있는 벽면은 무령왕릉과 똑같은 문양을 가진 벽돌을 쌓아서 비교적 세밀하게 표현했죠. 우선 앞쪽으로 길게 나와 있는 곳이 보이시죠? 무덤으로 들어가는 입구랍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생긴 돌짐승이 있네요. 꼭 뿔 달린 돼지처럼 생겼죠? 이 돌짐승의 이름은 진묘수인데 묘지를 지키는 수호신이에요. 진묘수에 대해선 다음에 자세히 설명할게요. 약속해요. 그럼 안쪽으로 들어가 볼까요? 바닥에 흩어져 있는 부장품들이 보이시죠? 완전 보물창고네요. 금동신발도 보이고 청동 다리미도 보이고, 이 보물들에 대해서도 천천히 설명할게요. 어! 저 U자형으로 만든 나무는 아시겠죠? 맞아요. 왕과 왕비의 베개와 발 받침이에요. 공주 송산리 고분군에 있는 무령왕릉은 1996년 벽돌이 처지고 습기가 차는 것을 발견되어, 왕릉 보존을 위해 외부공개를 중단했어요. 그래서 지금은 아쉽게도 실제 무덤 내부를 볼 수 없답니다. 이제 무령왕릉의 보물들에게 대해 알아볼까요. 첫 번째로 발굴단장님께 진묘수에 대해 여쭤보기로 해요. 발굴단장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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