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수궁 돌담길
서울특별시 중구 세종대로 지하 101
4가지 관점으로 본 이 장소
KORLENS 큐레이션기존의 도로를 보행자 중심의 도로로 재정비하고, 보행자를 위해 보도와 차도 공존도로 및 푸르름이 가득한 가로공간인 녹도의 개념을 복합적으로 도입한 우리나
낭만이 가득한 덕수궁 돌담길은 연인들이 걷기에 더없이 좋은 곳이며, 주변에 서울시립미술관과 서울역사박물관이 있어 문화산책 코스로도 제격이다.
휴식 공간을 위해 느티나무 외 2종 130주 식재, 평의자 20개 설치하였으며 주변의 역사적 시설인 덕수궁과 연계한 역사적 가로 경관의 창출 및 가로환
낭만이 가득한 덕수궁 돌담길은 연인들이 걷기에 더없이 좋은 곳이며, 주변에 서울시립미술관과 서울역사박물관이 있어 문화산책 코스로도 제격이다.
무장애 편의시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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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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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관광공사 오디(Odii) 음성 해설대본
청계광장의 숨은 매력들 이곳 청계광장은 회사원들뿐만 아니라, 국내외 관광객들도 자주 찾는 도심 속 쉼터입니다. 광장에 파란색 소라기둥이 보이시죠? 이 기둥은 스프링이라고 불리는 미술작품으로 미국의 팝 아트 미술가 ‘클래스 올덴버그(Claes Oldenberg)’와 ‘코샤 반 브루군(Coosje Van Bruggen)'의 작품이에요. 이 작품을 제작할 당시 작가는 한국의 도자기와 한복, 보름달에서 느껴지는 한국적인 아름다움에 영감을 받았고, 생동감 있게 도약하는 서울을 상징하는 이 작품을 만들게 되었다고 합니다. 스프링 내부는 천정에서 바닥으로 물이 떨어지게 만들어져 있는데요, 이 물은 바닥에 놓인 청계천 미니어처로 흘러가 청계천 물길로 흘러가도록 되어 있습니다. 청계천 미니어처는 청계천을 1/100으로 축소한 모양이라고 합니다. 지금의 청계광장은 청계천이 복원되면서 같이 만들어졌는데요. 청계천은 조선이 건국될 때 작은 생활하천으로 만들어져서, 세종 때와 영조 때 청계천 정비 사업으로 지금과 같은 물길로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하지만 일제 강점기 때부터 1960년대까지 청계천을 덮어나갔고, 1970년대에는 청계고가로가 들어서자, 청계천은 우리의 기억 속에서 잊혀져갔습니다. 그러다 2003년부터 청계천을 덮었던 콘크리트를 걷어내고, 물이 흐르는 하천으로 만들면서, 다시 서울 시민들의 곁으로 돌아오게 된 것이죠. 광장에서 청계천으로 내려가시면 보기만 해도 시원해지는 분수와 2단 폭포를 만나실 수 있습니다. 2단 폭포 아래에 있는 팔석담은 전국 각지에서 가져온 돌들과 청계천의 물로 조선의 팔도와 미래의 통일된 한반도를 상징하는 청계천의 명물이랍니다. 팔석담에는 자세히 살펴보시면 각 지방의 이름들이 적혀있는데요. 아쉽게도 이 중 북한지역은 질감이 비슷한 바위들을 대신 가져다 놓았다고 합니다. 통일이 되면 실제 북한지역의 바위가 놓여 지길 바래봅니다. 그리고 팔석담에 동전을 던지면 소원이 이뤄진다는 이야기가 있어서, 동전을 던지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던져진 동전들은 매년 걷어 불우 이웃을 돕는데 쓴다고 합니다. 이 뿐만 아니라 청계광장에는 계절마다 다양한 이벤트들과 축제들이 여러분들을 기다리고 있답니다.
대본
시민들과 함께 울고 웃어온 시청광장 서울광장의 시작은 광장이 아닌 길이었습니다. 대한제국의 고종황제가 근대화를 위해 덕수궁의 정문인 대한문 앞에 태평로, 소공로 등의 주요 도로를 만들면서 넓은 교차로 지역이 만들어졌습니다. 이후 서울광장은 나라에 큰 위기가 닥칠 때마다 많은 시민들이 모여 한목소리를 내는 장소가 되었습니다. 일제시대 최대 항일독립운동인 3.1운동, 민주주의를 위한 4.19혁명, 6월 민주화 항쟁 등 굵직한 역사적 사건들이 이곳 서울광장에서 일어났죠. 하지만 서울광장은 기쁨의 역사가 새겨진 곳이기도 합니다. 2002년 한일 월드컵 당시 수많은 사람들이 광장에 모여 다 함께 ‘대한민국!!’을 외쳤고, 온 국민이 대한민국 축구 대표팀에 아시아 최초 4강 진출에 기쁨을 누렸습니다. 당시 서울광장과 태평로를 꽉 메우고 승리를 꿈꿨던 붉은 물결은 세계적으로 이목을 끌었습니다. 2002년 월드컵 응원이 펼쳐진 이후, 이곳에 시민들이 모일 수 있는 광장을 만들자는 의견이 형성되었습니다. 결국 2004년에 서울광장 자리에 있던 분수대를 헐고 잔디를 깐 서울광장이 완성되었습니다. 서울광장은 봄, 여름, 가을, 겨울 늘 사람들로 활기가 넘칩니다. 여름이면 바닥분수대가 시원하게 물을 뿜어 사람들이 찾고, 겨울이면 스케이트장이 마련되어 가족과 연인들이 찾습니다. 뿐만 아니라 하이 서울페스티벌과 같은 다양한 이벤트들이 끊임없이 열려 늘 흥겨운 곳입니다. 서울광장은 서울시민의 활기찬 에너지가 만들어 낸 살아있는 역사공간입니다. 시민들을 위한 열린 공간, 서울시청 서울시 청사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지금 앞에 보이는 고전 풍의 건물이 구청사이고요, 뒤에 보이는 유리 건물이 신청사입니다. 구청사는 일제시대인 1926년에 만들어진 것으로 해방 이후에는 서울시청 건물로 사용되었습니다. 현재는 내부를 개조하여 1층부터 5층까지 도서관으로 사용하고 있는데요, 남녀노소 누구나 이용이 가능합니다. 특히 시장 집무실은 과거 서울시장들이 실제로 근무했던 장소로 구청사를 방문한 관광객이라면 누구나 앉아보고 사진 찍는 곳입니다. 2012년 새롭게 문을 연 서울시 신청사는 그 모습이 매우 특이한데요. 1층 현관으로 들어서면 1층부터 7층까지의 벽면에 담쟁이와 자스민, 라벤더와 같은 6만 5천 분의 식물들이 붙어있어 거대한 식물원에 들어온 느낌이 듭니다. 이 식물들은 공기를 정화하고 실내온도와 습도도 알맞게 조절해 주는 역할을 합니다. 이곳을 방문하는 관광객들이 놓쳐선 안 될 신청사의 가볼 만한 곳으로는 하늘광장과 시민청이 있는데요. 하늘광장은 옥상에 위치해 있어 편안히 누군가와 이야기할 수 있는 카페가 마련되어 있습니다. 저렴한 가격 탓에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는 곳이죠. 신청사의 지하에 위치한 시민청은 시민들을 위해 만들어진 장소로 시민발언대와 같은 시민들을 위한 프로그램들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럼 이제 시민을 위한 공간으로 다시 태어난 서울시 청사에 들어가 볼까요?
대본
전통과 현대가 어우러진 정동길 정동길은 백 년이 넘는 건물들과 아름다운 가로수가 어우러져 낭만적인 분위기를 자아내 연인들이 자주 찾는 데이트 코스입니다. 인근에는 서울 시립미술관, 정동극장을 비롯한 문화시설과 고궁이 있어 많은 사람들이 정동길을 찾고 있습니다. 그러나 정동길은 대한민국의 굴곡진 근대사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곳이기도 합니다. 현재 정동길 주변에 위치해 이국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는 근대 서양식 건물들은 대부분 조선 말기부터 대한제국 시절에 지어진 것이죠. 당시 정동에는 각국 공사관들이 있었고, 이들의 보호 아래 교회들이 들어섰습니다. 그 후 종교단체들에 의해 배재학당, 이화학당과 같은 선교학교들이 들어섰죠. 뿐만 아니라 아름다운 서양식 2층 건물인 중명전, 고종황제의 1년간 피난처가 되었던 구 러시아 공사관, 독립운동의 중심지였던 정동교회 등이 세워졌습니다. 현재 정동길의 남아있는 건물을 통해 당시 외국의 문물을 받아들이려는 조선 말, 대한제국의 의지를 엿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소중한 역사와 낭만이 넘치는 이곳 정동길은 사실 재미있는 소문으로 더 유명합니다. 바로 정동길을 함께 걷는 커플은 헤어진다는 소문이죠. 1980년대 가정법원이 이곳 정동길에 있어 이혼한 부부들이 이 길을 걸어 나왔기 때문에 ‘정동길을 걷는 커플은 헤어진다’는 소문이 퍼졌습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가정법원으로 쓰였던 건물은 현재 서울시립미술관으로 탈바꿈하여 많은 연인들이 찾는 곳이 되었습니다. 구불구불한 도로, 고궁을 따라 이어진 은행나무길, 그리고 오래된 건물들이 조화를 이루어 사계절 중 가을과 가장 잘 어울리는 정동길. 이곳에서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소중한 추억을 만들어 보세요.
대본
대한제국의 꿈을 품은 제단 ‘둥근 형태의 제단’이란 뜻의 환구단은 19세기 말, 조선의 왕이었던 고종이 국권을 위협받는 상황에서 대내외적으로 권위를 높이고 국권을 수호하기 위해 지은 곳입니다. 고종은 이 곳에서 국호를 ‘대한제국’으로 선포한 후, 하늘에 제사를 지내고 황제 즉위식을 올렸습니다. 1910년부터 일본은 조선을 식민지로 만들고, 자신들의 힘을 과시하기 위해 서울에 서양식 건물들을 세우는데요, 이때 환구단의 건물들을 훼손하고 서양식 호텔건물을 짓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석고단, 답도와 삼문 그리고 황궁우만이 남아있습니다. 석고단은 1902년 고종황제의 즉위 40주년을 기념하여 환구단 안에 세웠습니다. 황궁우 앞의 답도는 황제를 위한 길로, 돌계단과 3개의 아치형 문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황궁우는 하늘신들의 위패를 모시는 장소인데요, 건물 외관은 팔각형입니다. 울타리 난간에는 나쁜기운을 물리치고 화재를 막아준다는 ‘해치’라는 상상의 동물이 앉아있고, 건물기둥과 지붕 사이에는 건물을 장식해주는 여러 개의 공포(貢包)가 있습니다. 황궁우의 내부는 3층에 있는 24개의 창을 통해 밝기를 조절해 주었는데요, 천장에는 발톱이 일곱개 달린 ‘칠조룡’이 조각되어 있습니다. 칠조룡은 조선시대와 대한제국시기에 왕이나 황제의 권위를 높이고 대국이 되겠다는 의지를 보여주는 특이한 용인데요. 독립된 근대국가를 세우려고 했던 고종황제의 의지를 보여주는 상징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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