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산성 전통음식마을
경기도 광주시 남한산성면 남한산성로 731
4가지 관점으로 본 이 장소
KORLENS 큐레이션남한산성 전통음식마을은 경기도 광주시 남한산성로 남한산성세계유산센터 인근에 조성된 전통 음식 거리이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속하는 만큼 볼 것이 풍부하며 남한산성 주변에는 한국의 전통적인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전통 가옥과 문화를 경험할 수 있는 곳이 많이 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속하는 만큼 볼 것이 풍부하며 남한산성 주변에는 한국의 전통적인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전통 가옥과 문화를 경험할 수 있는 곳이 많이 있다.
전통 한옥으로 지은 70여 개의 음식이 한곳에 모여 있는 이곳은 쌀밥, 도토리묵, 토종닭, 닭볶음탕 등의 전통 음식을 맛볼 수 있다.
장소 소개
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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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관광공사 오디(Odii) 음성 해설대본
현절사 병자호란 당시, 조선 조정은 남한산성 행궁으로 피신해 있었습니다. 조선을 침공한 청나라는 조선더러 명나라와 손을 끊고 청나라와 손잡기를 요구했습니다. 주화파는 이러한 청나라의 요구를 받아들여 청나라와 손을 잡자는 쪽이었습니다. 주화파 : 우리가 명나라와 오랜 친분을 가져왔지만 이제 명나라는 쇠약해졌습니다. 머지않아 청나라의 세상이 될 터! 따라서 청나라와 손잡는 것이 조선의 앞날을 위해서도 좋을 것입니다. 척화파 : 부끄러운 줄 알아야지! 명나라는 임진왜란 때 우리를 도와 준 고마운 친구요. 어찌 그런 친구를 버리고 청나라와 손을 잡는단 말이오? 하지만 전쟁은 조선에게 점점 불리하게 전개되었습니다. 조선을 궁지에 몰아넣은 청나라는 잔인한 요구를 하지요. 용골대 : 나, 청나라 장군 용골대가 우리 황제 폐하의 말씀을 전한다. 조선조정의 척화파 중 유독 강경한 자들을 묶어 우리 청나라 진영에 포로로 보내도록 하라. 이때 자진하여 나선 세 명의 충신이 있었습니다. 오달제, 윤집, 그리고 홍익한이었습니다. 윤집 : 전하! 신 윤집, 이 목숨, 조선을 위해 바치겠사옵니다. 윤집은 당시 교리라는 벼슬에 있었습니다. 그가 맡은 임무는 조정의 각종 문서를 작성하는 것이었습니다. 지금으로 치면 외교부나 문화체육관광부의 5급 사무관에 해당합니다. 오달제 : 전하! 신 오달제, 부교리로서, 윤교리와 함께 목숨을 바치고자 합니다. 오달제는 부교리. 그러니 교리 윤집의 측근 부하직원이었습니다. 홍익한 : 전하! 신 홍익한, 조선의 관리로서 조선을 위해 목숨을 바치겠나이다. 홍익한은 장령이었습니다. 장령은 감찰을 담당하는 관리입니다. 지금으로 치면 감사원과 비슷한 성격이군요. 직급은 3급 공무원으로 부이사관에 해당하는 벼슬이죠. 이들은 모두 20대 후반에서 30대 초중반에 이르는 젊은 관리들이었습니다. 젊은이 특유의 열정과 배포, 그리고 애국심으로 뭉친 그들은 적장 용골대 앞에 끌려가서도 한 치의 흔들림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용골대 : 이봐! 이제 보니 아주 젊은 애송이들인데 목숨이 아깝지 않아? 그만 고집 꺾고 우리 청나라에서 일해 보는 건 어떤가? 윤집 : 흥! 나는 조선의 교리 윤집이다. 나는 문서를 담당하는데 과연 오랑캐인 너희 나라에서 문서 담당할 일이 있겠느냐? 오달제 : 나는 부교리다. 문서가 없는 곳에 교리와 부교리가 무슨 필요가 있겠나? 기껏해야 말똥 치우는 일이나 하겠지. 관심 없으니 그냥 죽여라. 홍익한 : 나는 조선의 장령 홍익한이다. 내가 하는 일은 감찰이다. 쉽게 말해 더럽고 추한 거 다 잡아내는 게 내 일인데 법도가 없는 너희 나라에 가면 감찰할 일이 얼마나 많겠느냐? 그것 다 처리하다가 과로사할 수 있으니 그냥 여기서 죽이거라. 드디어 용골대의 인내심도 한계에 이르렀습니다. 용골대 : 나불나불 입만 살아 있는 너희들이랑 일 할 생각을 하니 나도 머리가 아프다. 오냐! 소원대로 죽여주마! 결국 오달제, 윤집, 홍익한은 처형당하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청나라 사람들도 이 세 사람의 충절 앞에서는 숙연해졌습니다. 그래서 이들을 삼학사라 부르고 정중하게 장사를 지내 주었지요. 현절사는 이 삼학사를 위해 세운 사당입니다. 경기도 유형유산으로 지정되어 있지요. 훗날, 이곳에는 대표적인 척화파 대신인 좌의정 김상헌, 이조참판 정온의 위패도 함께 합니다. 사람들은 이들을 일러 오학사라고도 부릅니다.
대본
침괘정 [해설] 우리나라는 무수한 전란을 겪었습니다. 그중에서 병자호란은 참으로 혹독한 전쟁이었습니다. 임금과 관리들이 수도 한양을 버리고 이곳 남한산성에 피신해 있었을 정도였지요. 당시 임금이었던 인조는 청나라 황제 앞에서 무릎 꿇고 이마를 찧으며 항복의 절을 올리는 수모를 당했습니다. 게다가 소현세자와 봉림대군을 비롯한 왕족과 고관대작들이 청나라에 볼모로 끌려가야 했습니다. 훗날 인조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 효종은 병자호란의 치욕을 잊을 수가 없었습니다. [효종] 더 이상 오랑캐에게 고개 숙이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과인은 ‘북벌’을 지향하노라! [해설] ‘북벌!’ ‘북쪽을 정벌한다’. 그러니까 ‘청나라를 정복하겠다’는 뜻이지요. 이후 북벌은 조선 조정을 움직이는 정신으로 자리 잡습니다. 이곳 침괘정은 바로 이러한 북벌의 다짐을 담고 있습니다. 침괘정은 군사집무실로 쓰였습니다. 게다가 근처에는 무기제작소와 무기창고가 있었습니다. 따라서 남한산성의 모든 병사들은 이곳 침괘정을 중심으로 활동했습니다. 그런데 조선시대에 이곳 침괘정에서 활동하던 군사들 사이에서는 이상한 소문이 하나 돌았습니다. [병사1] 이봐 이봐, 들었어? 어제도 나타났대! 김씨가 봤대. [병사2] 뭐야? 또 그 노인귀신이 나타났다는 거야? [병사1] 그렇다니까! 푸른 도포에 금관! 틀림없다니까! [해설] 병사들이 밤에 순찰할 때 종종 나타난다는 그 유령은 푸른 도포에 금관을 쓰고 있었다고 합니다. [늙은병사] 그분은 온조대왕의 혼령이시네. [병사1] 온조대왕이 누구시지? 지금 임금님이신가? [병사2] 으이구, 이 무식한 인간아~ 온조대왕은 백제를 세운 임금이지. [병사1] 백제시대 임금이 왜 조선시대에 나타난대? [늙은병사] 사실 이 남한산성 터가 원래 백제의 도읍지였다는 말도 있다네. 그리고 아마 우리가 그 후손이니 도와주고 싶어서 나타나시는 게 아니겠나? [병사2] 그럼 그 귀신, 아니, 그 대왕님은 우리 편이니까 무서워할 필요 없겠네요. [늙은병사] 당연하지. 혹시라도 마주치면 정중하게 절이라도 올리시게나. 껄껄껄.. [해설] 사실 침괘정이 처음에 누구 손으로 지어졌는지는 정확하게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1624년 인조대왕은 국방을 튼튼히 하기 위해 남한산성을 쌓게 했습니다. 이때 공사 총책임자였던 이서 장군은 울창한 숲 속에서 건물 잔해를 하나 발견했습니다. 비록 벽면이나 지붕은 사라졌지만 기둥과 초석은 완전했고 심지어 온돌도 멀쩡했다고 합니다. 이를 기반으로 건물을 지었지요. 하지만 지금 건물은 인조 시대 이후인 1751년 영조 시대에 보수한 것입니다. 그리고 편액에는 침괘정이 아니라 ‘침과정’이라고 씌어 있습니다. 침은 ‘베개를 베다’, 과는 ‘창’을 말합니다. 그러니 침과는 창을 베고 눕는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세월이 흐르면서 침과정이라는 이름 대신 침괘정으로 불리게 되었지요. 병자호란의 치욕적인 패배를 거울삼아 나라 밖을 경계하고 내실을 기하자는 뜻이 침괘정에 남아 있습니다.
대본
연무관 [병사들] 합! 합! 합! [이무형] 아직 팔이 쳐진다! 다시! [병사들] 합! 합! 합! [이무형] 칼끝을 더 세워라! 한 번 더! [해설] 연무관은 남한산성 안에서 제일 활기차고, 제일 뜨거운 곳이었습니다. 이곳은 병사들을 훈련시키는 곳입니다. 여기서 우수한 성적을 받은 병사들은 왕이 있는 한양으로 가게 되어 있었습니다. 사내들의 기합소리는 해가 중천에 걸려서야 비로소 잦아들었습니다. [이무형] 두 시간 쉬고, 오후에는 활을 다룰 것이다. 밥을 먹고, 활터로 모이도록! [해설] 남한산성 연무관의 훈련교위 이무형은 힘든 기색 하나 없이 사내들에게 소리칩니다. 사내들은 익숙한 손놀림으로 옷매무새를 가다듬습니다. [이무형] 소나기가 올 것 같으니 비를 맞지 않도록 조심하거라. 그럼, 해산! [군사들] 와아~~~ [이무형] 하하, 훈련할 때는 장정이더니, 이럴 때는 꼭 소년들같이 변하는구나. [해설] 이때 누군가가 훈련장으로 들어섰습니다. [구굉] 이무형 교위! [이무형] 아니, 공판대감께서 여긴 어쩐 일이십니까? [해설] 공조판서 구굉. 그도 이무형처럼 뼛속깊이 무관이었습니다. 일찍이 무과에 급제하여 벼슬길에 오른 그는 인조임금이 특히 아끼는 신하였습니다. [구굉] 내가 여길 왜 왔겠나? 쓸 만한 병사가 있나 살펴보려고 온 게지. [해설] 구굉은 뛰어난 용사들을 차출해 한양으로 올려 보내기 위해서 종종 이 곳 남한산성 연무관을 찾아왔습니다. [이무형] 판서영감 오신 거 알면 병사들이 더 열심히 하겠는데요. 그나저나 조정은 어떻습니까? [구굉] 얼마 전에도 청나라 사신이 다녀갔네. 그들이 뭘 요구했겠나? [이무형] 뻔하지요. 우리더러 명나라를 버리고 청나라와 손잡으라는 거 아니겠습니까? [구굉] 처음에는 다들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들 하더니 요즘은 슬슬 청나라와 손잡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말도 나오고 있네. [이무형] 실은 이곳의 병사들도 요새 의견이 분분합니다. 청과 손을 잡아야 한다, 끝까지 맞서야 한다, 의견들이 팽팽합니다. 헌데... 대감 생각은 어떠십니까? [구굉] 난 아직도 잘 모르겠네. 그런데 자꾸 불길한 생각이 드는 건 사실이네. 아무래도 전쟁이 일어날 것만 같으이. [이무형] 전쟁이라.. 그렇게 되면 백성들이 또 얼마나 고단해질까요? [구굉] 그걸 생각하면 청나라와 손을 잡아야겠지. [이무형] 하지만 그렇게 되면 도리를 지키지 않는 정부가 됩니다. [구굉] 그걸 생각하면 명나라와의 손을 놓지 말아야겠지. [이무형] 참으로... 난감하군요. [구굉] 우리는 무인이네. 어떤 결정이 내려지든, 어떤 일이 벌어지든, 우리는 조선과 백성을 위해서 이 목숨을 내놓는 걸세. [이무형] 예. 당연하지요! 장군. [해설] 두 사람의 걱정대로 얼마 후, 병자호란이 터지고 조선은 전쟁의 도가니에 빠집니다. 하지만 구굉과 이무형 같은 무인들이 길러낸 용감한 조선군이 있었기에 결국은 나라를 지켜낼 수 있었지요. 연무는 ‘무예를 펼쳐 보인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이곳 연무관은 바로 군사들의 무술을 연마하기 위해 지은 건물입니다. 여기서 군사 훈련과 무술시합을 열어 뛰어난 인재를 뽑아 중앙으로 보냈습니다. 정조임금 재위 때는 문무과 과거시험을 이곳에서 거행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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