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산성행궁
경기도 광주시 남한산성면 산성리 935-1
4가지 관점으로 본 이 장소
KORLENS 큐레이션임금이 서울의 궁궐을 떠나 도성 밖으로 행차하는 경우 임시로 거처하는 곳을 행궁이라 한다.
남한산성 행궁은 전쟁이나 내란 등 유사시 후방의 지원군이 도착할 때까지 한양 도성의 궁궐을 대신할 피난처로 사용하기 위하여 조선 인조 4년(1626)에 건립되었다.
실제로 인조 14년(1636) 병자호란이 발생하자 인조는 남한산성으로 피난하여 47일간 항전하였다.
이후에도 숙종, 영조, 정조, 철종, 고종 등이 여주, 이천 등의 능행길에 머물러 이용하였다.
장소 소개
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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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관광공사 오디(Odii) 음성 해설대본
남한산성은 조선시대의 산성으로 북한산성과 함께 수도 한양을 지키던 곳입니다. 조선 인조 때 대대적으로 구축하였지요. 조선의 인조 하면 어떤 사건이 떠오르나요? 바로 병자호란일 텐데요. 병자호란 때 인조가 청의 공격을 피해 몸을 숨은 곳이 남한산성입니다. 남한산성은 지형적으로 해발 고도가 높고 산세 험준해 방어력을 극대화할 수 있었어요. 또, 둘레가 12km에 이르러 산위에 도시가 있을 만큼 넓은 분지이기 때문에 백성과 왕조가 대피할 수 있는 조선 왕실의 보장처였습니다. 현재 남한산성에는 방어시설, 비밀통로, 우물, 관아, 군사훈련시설 등이 남아있습니다. 이곳에는 백제 전기 유적이 많이 있어 백제 온조왕 때의 성일 것이라는 주장이 있어요. 온조의 위패를 모시기 위해 만든 사당 숭렬전이 있는 것도 이와는 무관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남한행궁 터에서는 통일신라의 각종 기와와 석축이 발굴되고 있고, 남한산성 성벽 안쪽에서 문무왕 때 만들어진 주장성 성벽으로 추정되는 화강암 성돌이 확인되기도 했습니다. 때문에 남한산성이 신라 문무왕 대의 주장성 터였다는 의견도 있지요. 남한산성의 기원이 어느 쪽이던 변하지 않는 것은, 남한산성이 조선 국방의 보루로서 그 역할을 유감없이 발휘한 장소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남한산성은 각종 시설이 잘 정비되어 우리나라 산성 가운데 시설이 잘 정비된 곳으로 손꼽히며, 축성술의 시대별 발달단계를 잘 나타내는 좋은 자료로 인정받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도 등재되었습니다.
대본
행궁 [해설] 1636년 12월. 인조임금은 청나라의 공격을 피해 이 곳 남한산성 행궁에 머물고 있습니다. 청나라와 손을 잡자는 주화파 신하들과 청나라에 맞서 싸우자는 척화파 신하들은 벌써 며칠째 격렬한 말싸움을 벌이고 있습니다. [주화파1] 청이랑 싸우자니! 그게 대체 무슨 말이오? 지금 우리가 청과 싸울 힘이나 있소? [척화파1] 아 그러니까 머리를 써야지 머리를! 그렇다고 명을 배신하자는 말이오? 명이 우리 형제의 나라라는 걸 잊은 게요? [주화파2] 형제의 나라였어도 이젠 그저 이빨 빠진 호랑이일 뿐이오! [척화파2] 청이 아무리 강하다고 해도, 난 화친을 맺자는 그 말에 절대로 찬성할 수 없소! [해설] 인조는 가슴이 답답해집니다. 만나기만 하면 으르렁대는 양 측의 신하들을 뒤로 하고 그는 조용히 밖으로 나옵니다. 왕의 마음을 헤아린 내관은 말없이 뒤를 따라 나왔습니다. 흰 눈발이 세차게 흩날리고 있었습니다. 인조는 곧 행궁 안보다 밖이 더 곤욕스럽다는 걸 깨닫고 맙니다. 도무지 성 바깥과 안쪽 그 어디에도 눈을 제대로 둘 수가 없었습니다. 성 바깥에는 청나라의 십만 대군이 기세등등하게 진을 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성 안쪽에는 배고픔과 추위에 시달리고 있는 군사와 백성들이 보입니다. 왕은 가슴이 미어지는 걸 느낍니다. 그는 울적한 마음을 달래려 발길가는 대로 행궁 안을 걷기 시작합니다. 어느 때보다도 행궁 안은 조용하고, 어두웠습니다. 그 때, 인조의 눈에 행궁 주변을 순시하는 장수와 병사들이 들어옵니다. 그런데, 그들의 옷은 온통 젖어있었습니다. [인조] 너흰 왜 젖은 옷을 계속 입고 있는가? [장수] 예, 전하, 날씨가 계속 이런 까닭에 옷을 말릴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해설] 인조의 눈시울이 뜨거워집니다. [인조] 지금 당장 내 침소로 가, 이불과 옷을 뜯어 이들에게 입히도록 하라. [해설] 병사들은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이며 눈물을 흘립니다. 인조는 고개를 들어 원망스러운 눈으로 하늘을 노려봅니다. 곧 왕의 눈에서도 눈물이 흘러내렸습니다. [인조] 하늘이시여, 왜 우리를 버리려 하시나이까! 제가 지은 죄로 말미암아 우리 백성들이 고통을 당하지 않도록 지켜주시옵소서! 벌은 저만 받겠나이다. 하늘이시여, 하늘이시여... [해설] 인조와 그의 병사들은 한참동안 그렇게 서로를 바라보며 울었습니다. 세차게 내리던 눈발이 조금씩 잦아듭니다. 구름 사이로 언뜻 별이 반짝입니다. 임금이 서울의 궁궐을 떠나 도성 밖으로 행차하는 경우 임시로 거처하는 곳이 여기 행궁입니다. 남한산성의 행궁은 전쟁이나 내란 때 피란처로 사용하기 위하여 조선 인조 4년에 건립되었습니다. 실제로 인조는 병자호란이 발생하자 남한산성으로 피난하여 47일간 항전하였습니다.
대본
수어장대 [해설] 조선의 마지막 전성기를 이끌었던 정조대왕. 그분이 남한산성의 군사 상황을 직접 보기 위해 이곳에 들르셨을 때의 일입니다. [정조] 으... 으흐억! 으핫! 아... 내가 또 악몽을 꾸었구나. [해설] 정조는 고질적인 불면증을 앓고 있었습니다. 악몽을 꾸는 일도 종종 있었습니다. [내관] 전하.. 어디 불편하신 데라도... [해설] 늙은 내관 장한용이 어느 새 정조의 곁으로 다가와 앉았습니다. 오랜 세월 정조를 보필해 온 충직한 내관이었습니다. [정조] 아, 장내관... 아무 일도 아니다. [해설] 정조는 성군이었습니다. 백성들에게 부담을 주기 싫다며 하루에 두 끼만 먹고, 거친 베옷만 고집했습니다. 방에는 비단보료 대신 부들자리를 깔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정조에게는 깊은 아픔이 있었습니다. 아버지 사도세자가 뒤주에 갇혀 죽은 뒤 정적들은 당시 어린 세손이었던 정조마저 죽이려고 걸핏하면 자객을 넣었던 것입니다. 결국 정조는 자신을 지키기 위해 무예를 닦는 한편, 아무도 반론을 제기할 수 없는 유능한 임금이 되기 위해 학문에도 열심이었습니다. 그래서 문무를 겸비한 성군이 될 수 있었지요. 하지만 여러 차례의 암살 위협은 정조를 극도로 예민하게 만들었고, 결국 이렇게 불면증이라는 병까지 불러온 것이지요. [내관] 전하, 이왕 이렇게 잠이 깨신 참에, 남한산성 산책이나 하시지요. [정조] 그래. 그게 좋겠구나. [해설] 정조와 장내관은 밤길을 걸어 남한산성 수어장대 부근에 도착했습니다. 거기에는 달빛을 받아 반짝이는 우물이 하나 보였습니다. [정조] 안 그래도 목이 말랐는데 잘 됐구나. 목 좀 축이자꾸나. 아, 참 시원하구나. [내관] 예. 이곳을 지키는 조선군사들이 마시는 물입니다. [정조] 다행이구나. 우리 군사들이 이렇게 깨끗하고 맑은 물을 마실 수 있으니. [해설] 정조는 수어장대 앞뜰로 나아갔습니다. 그리고 2층 누각의 현판을 바라보았습니다. [해설] 그것은 할아버지 영조대왕이 직접 지은 이름입니다. 물망... 잊지 말라는 뜻이지요. 무엇을 잊지 말라는 것일까요? 그것은 바로 병자호란이었습니다. [정조] 병자호란은 조선역사상 가장 치욕스런 일이었다. 뼈저리게 기억하고 있다가 절대 그런 일이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나는 반드시 조선을 강한 나라로 만들 것이다. 그리하여 다시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할 것이다.. [해설] 정조는 평생 이 뜻을 가슴에 담고 살았습니다. 비록 갑작스런 죽음으로 그 뜻을 이루지는 못했지만 정조의 그 정신만은 오늘날까지 우리 영혼 속에 살아 숨쉬고 있습니다. 장대는 장수의 지휘소입니다. 안전하면서도 사방을 다 조감할 수 있는 위치에 세우곤 했지요. 애석하게도 남한산성에 구축된 장대는 전란으로 모두 붕괴되었습니다. 그러다 18세기 중후반에 서장대와 남장대를 누각형태로 다시 세웠고 지금은 서장대인 수어장대만 남아 있습니다.
대본
숭렬전 [해설] 청나라의 공격을 피해 수도 한양을 등지고 남한산성으로 피신 온 지 며칠, 인조는 몸과 마음이 지칠 대로 지쳐 있었습니다. 그 날도 그는 피곤한 몸을 이끌고 정사를 고민하다 그만 깜빡 잠이 들고 말았습니다. [온조] 적이 코앞까지 와 있는데 어찌 잠이나 자고 있는가! [해설] 난데없는 호통소리에 인조는 깜짝 놀라 고개를 듭니다. 화가 잔뜩 난 얼굴의 백발노인이 꼿꼿하게 선 채로 그를 쏘아보고 있었습니다. 노인은 화려하게 장식된 금색 도포를 걸치고 있었는데, 그 위엄이 참 대단했습니다. [온조] 네 이놈! 시간이 별로 없다! 지금 북쪽 성벽으로 어서 가보거라! [인조] 어, 어르신은 누, 누구십니까? [온조] 나는 이 성의 주인인 온조니라. [해설] 백발노인, 그는 다름 아닌 백제의 시조 온조왕이었습니다. 온조는 다시 인조를 재촉합니다. [온조] 어서! 지체할 시간이 없다! 지금 즉시 북쪽 성벽으로 장수들을 보내어라! [해설] 그 순간, 인조는 꿈에서 깨어났습니다. 그는 잠에서 깨자마자 부랴부랴 이서 장군을 불렀습니다. [인조] 지금 즉시 북쪽 성벽으로 달려가 적이 있는지 살피라! [이서] 예, 전하! [해설] 인조가 가장 총애하는 장수, 이서 장군은 임금의 명에 바람처럼 말을 달려 북쪽 성벽으로 향했습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몰래 성벽을 타고 오르던 청나라 군사 수 백 명은 이서 장군과 그의 휘하 병사들에 의해 모조리 격퇴당하고 말았습니다. 인조는 꿈에 나타나 위험을 미리 알려준 온조대왕에게 깊이 감사하며, 그의 넋을 기리기 위한 온조왕의 사당을 만들고 신하들과 함께 제사를 지냈습니다. 다시 며칠이 지났습니다. 인조는 다시 꿈을 꾸었습니다. 온조대왕이었습니다. [온조] 날 위해 제사를 지내주다니 참으로 고맙구나. [인조] 대왕, 성을 지켜주셔서 감사합니다. [온조] 한 가지 부탁이 있느니라. 그 큰 사당에 혼자 있자니 너무 적적하구나. 신하 중에 딱 한 명만 내게 보내줄 수 있겠느냐? [해설] 인조는 순간 멈칫했습니다. 온조대왕의 부탁대로 하자면 신하 한 명이 죽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차마 그 청을 거절할 수가 없었습니다. [인조] ...알겠습니다. 그렇다면.. 어느 신하를? [온조] 그건 내가 알아서 할 것이다. [해설] 아침이 되었습니다. 인조는 자리에서 일어나 어젯밤의 꿈에 대해 곰곰이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왠지 마음이 무겁습니다. 그때, 도승지가 놀란 얼굴로 황급히 뛰어 들어오며 외쳤습니다. [도승지] 전하! 망극하옵니다! 어젯밤, 이서 장군이... 이서 장군이 죽었다고 하옵니다! [해설] 인조는 그대로 쓰러져 오열하고 말았습니다. 이서 장군은 인조가 아끼던 장수였습니다. 그는 충신이었고, 맹장이었으며, 남한산성 축성에도 공이 컸습니다. 그가 죽고 난 후 한참이 지나도록 인조는 슬퍼하며 신하의 충성을 기렸습니다. 전쟁이 끝난 뒤, 1638년, 인조는 원래 온왕묘이던 곳에 온조대왕의 위패를 모셔 ‘온조왕사’를 건립하였고, 이서 장군을 함께 배향하도록 하였습니다. 이후 정조는 1795년 이 곳을 ‘숭렬전’이라 부르게 하였고, 그 때부터 지금까지 매년 음력 9월 5일에 제향을 드리고 있습니다.
대본
청량당 [해설] 남한산성 축성 작업이 한창 진행되고 있을 때의 일입니다. 공사의 총지휘를 맡고 있는 이서 장군의 막사에서 호통소리가 들렸습니다. [이서] 뭣이? 이 구역이 아직도 공사가 이 정도 밖에 진행이 안 됐다고? [장군1] 예. 수차례 독촉을 했지만 이회 장군이 워낙 고집이 세서... [이서] 이런 고얀! 당장 이회를 잡아들여라! [해설] 이윽고 수어장대 앞으로 이회 장군이 밧줄에 꽁꽁 묶인 채 끌려왔습니다. [이서] 이회, 네 이놈! 내가 너를 믿어 큰일을 맡겼는데, 너는 어째서 일을 태만히 했느냐! [해설] 호랑이로 불리는 이서 장군의 호통에도 이회는 침착함을 잃지 않았습니다. [이회] 장군! 제가 맡은 동남쪽 구역은 지형이 아주 가파르고 험합니다. 그래서 평지보다 더 꼼꼼하게 공사를 진행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서] 나라의 녹을 먹는 관리가 게으름을 피우다가 이젠 변명을 늘어놓는구나. 당장 이회의 목을 베도록 하라! [이회] 아, 장군... [해설] 북소리에 맞춰 망나니가 춤을 추기 시작했습니다. 이회는 눈을 감고 처형을 기다렸습니다. [이서] 이회! 마지막으로 남기고 싶은 말이 있는가? [이회] 모든 건 하늘의 뜻! 죽음은 두렵지 않습니다. 하지만 나랏일에 태만히 했다는 누명은 절대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제가 죽는 순간 기이한 일이 일어날 겁니다, 만일 그렇게 된다면 제게 죄가 없다는 것으로 살펴주시기 바랍니다. [해설] 바로 그 순간 망나니의 칼이 허공을 가르며 이회의 목을 베었습니다. 그런데! [군사1] 악! 저게 뭐야? [군사2] 아니, 저건 새 잖아! 이회의 목에서 새가 나왔어! [해설] 그렇습니다. 잘려나간 이회의 목에서는 피 한 방울도 나지 않았습니다. 대신, 커다란 매 한 마리가 날아오르는 것이었습니다. 매는 바위 위에 앉더니 임금이 계신 남쪽을 향해 마치 절을 하듯이 고개를 주억거렸습니다. 그러더니 높이 날아올라 사람들의 시야에서 사라졌습니다. [군사1] 앗, 장군님! 이것 보십시오. 매 발자국입니다. [해설] 정말로 바위 위에는 매의 발자국이 선명하게 남아 있었습니다. 이서 장군은 이회의 마지막 말을 떠올렸습니다. [이회] 제가 죽는 순간 기이한 일이 일어날 겁니다, 만일 그렇게 된다면 제게 죄가 없다는 것으로 살펴주시기 바랍니다. [이서] 아, 이회.... 이것이 그대의 진심이었구나.. 내가.. 이런 충신을 죽이고 말았구나.. [해설] 사람들은 이회의 죽음을 애도하며, 그가 죽음을 당한 수어장대 곁에 사당을 만들었습니다. 매가 앉았던 바위는 매바위라고 불렸는데, 아쉽게도 매 발자국은 없습니다. 그럼 이 설화가 거짓이었을까요? 아닙니다. 일제강점기 때 어느 일본인 관리 하나가 매 발자국이 찍힌 부분을 도려내서 가져갔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사각형의 흔적만 남아있습니다. 그 후 사람들은 이회 장군이 흉한 운수로 죽었다 하여 횡수 대감이라 부르며, 수많은 남한산성 신들 중 가장 영험한 신으로 모셨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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