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공 청년운동 순국 열사 기념비
서울특별시 중구 남산공원길 125-72
4가지 관점으로 본 이 장소
KORLENS 큐레이션반공청년운동 기념비 건립위원회가 반공청년운동을 전개하다 순국한 애국열사들의 넋을 기리고 그들의 호국정신을 길이 계승하고자 1968년 10월 9일 중구 예장동 산5-6에 건립한 기념비이다.
‘이 비석은 돌이 아니고 반공투사들의 심장입니다.’라는 문구가 비석에 새겨져 있다.
앞으로 살아갈 세월이 많았던 어린 애국열사 청년들이 짧은 일생을 영원한 조국에 바친 것에 대해 감사를 표하는 비석으로 의미가 있다.
기념비 주변에 남산 팔각정과 봉수대가 가까이에 있어서 함께 둘러보기 좋다.
장소 소개
위치
이런 곳도 함께 보세요
같은 유형의 인기 명소오디오 가이드
한국관광공사 오디(Odii) 음성 해설대본
조선시대의 통신 수단 남산 정상 팔각정 옆에 있는 봉수대는 조선시대에 중요한 국가사항을 알려주는 연락수단으로 낮에는 연기를 피우고, 밤에는 횃불을 밝혔습니다. 봉수는 평상시에는 1개, 적이 출현하면 2개, 적이 국경에 가까이 오면 3개, 국경을 침범하면 4개, 적과 접전을 벌이면 5개를 올렸습니다. 130여년 전, 조선을 방문했던 미국인 천문학자 ‘퍼시벨 로웰’은 남산 봉수대의 횃불을 보고 ‘마치 다른 세상에서 오는 빛 같다’라고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전국 각지에서 올라오는 소식들은 경복궁에서 잘 보이는 이 봉수대에 모여서 왕에게 전달되었습니다. 원래 남산에는 5개 노선의 봉수대가 설치 되어 있었는데, 함경도, 부산, 평안도 내륙, 평안도 해안, 여수 등에서 출발해 전국을 거쳐 각 봉수대에 집결했습니다. 조선시대의 봉수제도는 1895년 전신과 전화가 도입되면서 사라졌습니다. 지금의 남산 봉수대는 조선시대 지도들을 참고하여 1993년에 복원했습니다. 봉수대에서는 관광객들을 위하여 봉수군이 주변을 순찰하고 봉수를 올리는 것을 재현하고 있습니다. 평화를 상징하는 연기를 피워 올리는 의식이 끝나면 봉수의식도 종료됩니다.
대본
남산의 쉼터, 팔각정 남산 팔각정은 1968년에 설치되었습니다. 이 곳에는 원래 조선의 태조 이성계가 세운 ‘목멱신사’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남산을 조선시대에는 목멱산(木覓山)이라고 부르기도 했습니다. 이성계는 남산의 산신령에게 ‘목멱대왕’이라는 칭호를 내리고 ‘목멱신사’라는 사당을 세워 봄, 가을마다 제사를 지냈습니다. 그래서 신사가 있는 남산을 보호하기 위해 출입을 제한하고, 나무를 베어가거나 묘를 쓰는 일 등을 금지했습니다. 그러나 일제 강점기에는 남산에 식물원과 공원을 만들어 일본인들의 휴식처로 만들고, 목멱신사는 인왕산으로 옮겨졌습니다. 광복 이후부터는 여가와 휴식을 즐길 수 있는 공간으로 조성하였는데요, 정자를 팔각형으로 만든 이유는, 동양에서 신의 세계를 의미하는 원형과 인간 세계를 상징하는 사각형의 중간이기 때문입니다. 목멱대왕이 있던 곳에 사람들이 함께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팔각정 앞 광장에는 분수를 설치하여 여름에는 시원함도 느낄 수 있습니다. 산에 오르느라 지친 관광객과 시민들에게는 도심 속의 쉼터로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대본
600년 역사의 성곽 서울한양도성에는 조선 500년의 발자취, 일제강점기에서 6•25전쟁으로 이어지는 격동의 근현대사가 쌓여있습니다. 남산은 한양 도성중 3구간에 해당하며 광희문에서 시작해 남산을 넘어 숭례문까지 이어집니다. 거리는 5.2㎞, 대략 3~4시간쯤 걸린답니다. 동그란 모양에 ‘서울성곽길’이라고 쓰여진 표지판을 보고 걸어가면, 성벽을 따라 갈 수 있습니다. 남산 성벽은 성돌이 쌓여진 모양만 보고도 벽의 축성시기를 알 수 있는데요, 조선 태조, 세종, 숙종 때 세 번에 걸쳐 쌓았습니다. 어떤 성돌에는 글자도 새겨져 있습니다. 경주, 함안, 경산 등의 고을이름을 찾을 수 있는데, 이것은 일종의 공사실명제로 성벽이 무너지면 그 고을 사람들이 다시 쌓아야 했습니다. 성벽에 숨어있는 암문은 전쟁 시에 몰래 군사와 물자를 운반하기 위해 비밀리에 만들어 둔 문입니다. 조선시대에는 한양도성을 따라가며 한양의 풍경을 즐기는 ‘순성놀이’가 있었습니다. 유구한 역사와 아름다운 경관을 볼 수 있는 성곽을 따라 순성놀이를 해보세요!
대본
서울의 랜드마크 남산 정상에 1975년에 완공된 N서울타워는 한국의 수도 서울의 상징 입니다. N서울타워는 원래 TV와 라디오 전파를 송출하기 위해 세운 전파탑이었습니다. 이곳이 시민들에게 개방된 것은 1980년인데요, 개방되자마자 서울의 관광명소로 떠올라서 지금까지도 많은 시민들의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N서울타워의 높이는 236m이고, 남산 높이까지 더하면 479.7m 입니다. 초고속 엘리베이터를 타면 30초 만에 355m 높이의 전망홀에 이르게 되는데, 엘리베이터 천장에서 펼쳐지는 현란한 미디어아트 덕분에 다른 세계로 들어선 것 같은 느낌이 들게 됩니다. 전면이 유리로 되어있는 전망홀에서는 서울을 360도 방향으로 둘러 볼 수 있습니다. 날씨가 좋은 날에는 동쪽으로는 양평 용문산, 서쪽으로는 한강과 인천 앞바다, 남쪽으로는 남한산성, 북쪽으로는 멀리 북한의 송악산까지 관측이 가능합니다. 전망홀 위의 레스토랑은 실내가 90분마다 한 바퀴 돌기 때문에, 식사를 하는 동안 서울을 한 바퀴 구경할 수 있는 데이트명소입니다. 드라마와 쇼 프로그램에서 자주 나오는 야외 전망대에는 수많은 자물쇠가 달려있습니다. 이 자물쇠들은 소원이 이루어지길 원하는 많은 사람들이 하나씩 달기 시작한 것인데요, 여러분의 소원을 담은 자물쇠도 꼭 달아 보세요!
대본
남산(목멱산) 팔각정 남산 팔각정에 서면 서울 도심이 손에 잡힐 듯 내려다보입니다. 경관은 좋지만 팔각정에 올라설 때마다 남산의 수난사가 떠올라 가슴이 아픕니다. 한 왕조와 국가가 유린당한 역사가 남산자락에 고스란히 깃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팔각정은 도심을 조망할 수 있는 평범한 정자에 불과하지만, 그 내력은 간단치 않습니다. 이곳은 조선 태조가 한양을 도읍으로 정할 때 남산의 산신을 모시려고 지은 국사당(國師堂)이 있던 자리입니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국사당은 나라에서 가장 중요한 국가 사당이었습니다. 하지만 대한민국 대표 민속신앙 터인 국사당은 일제강점기에 쫓겨나고 맙니다. 일본 토착신앙의 대표인 신궁에 밀려 인왕산으로 옮겨진 것입니다. 일제는 1925년 “일본 최고신과 살아 있는 신 천황을 모시는 신궁에 식민지 나라의 굿당이 있다는 게 말이 되느냐”며 국사당을 500년 동안 있던 자리에서 내쳤습니다. 지금은 시민 공원으로 변한 남산. 한때 작위까지 받은 조선과 왕실의 상징 남산은 온갖 수난을 겪었습니다. 특히 남산의 수난은 일본과 많은 관계가 있습니다. 조선 초부터 임진왜란이전까지 남산 기슭에는 일본 사신이 머무른 동평관이 있었습니다. 임진왜란 때는 왜군이 진을 치기도 했습니다. 마시타 나가모리 등 왜장이 살았다고 해서 왜장터라 불렸는데, 그들의 진지는 지금의 정동까지 이르렀다고 합니다. 1884년에는 남산 기슭에 다시 영사관을 지었고 일본 공사관과 통감부, 총독부가 속속 들어섰습니다. 지금의 예장동, 주자동, 충무로1가를 아우르는 진고개 일대가 일본인 거주지였는데, 진고개를 거점으로 숭례문과 회현동, 명동, 을지로 쪽으로 주택가와 상가가 확장되었습니다. 북촌에 사는 조선인이 남촌의 화려한 일본인 상가를 동경했다고 합니다. 서울유스호스텔은 일본 공사관과 통감관저, 서울애니메이션센터는 통감부와 총독관저가 있던 곳입니다. 남산은 경복궁 안에 총독부와 총독관저를 지어 옮겨가기까지 일본 식민통치의 심장부였습니다.
Nearby places worth pairing
Live distance-sorted picks around 반공 청년운동 순국 열사 기념비Book 반공 청년운동 순국 열사 기념비 via our partners
Compare tours, skip-the-line tickets and nearby stay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