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선창고터
부산광역시 동구 초량로13번길 53
4가지 관점으로 본 이 장소
KORLENS 큐레이션남선창고터는 1900년 함경도에서 배로 물건을 싣고 와서 보관하던 최초의 물류 창고로, 초기에는 북선창고라 불리었으며 경부선을 통해 서울까지 물류를 운반하기 전에 보관하는 곳이었다.
이후 경원선이 생기면서 윗지방에 북선창고가 만들어지자 이름을 남선창고로 변경하였다.
부산 최초의 근대적 물류창고인 남선창고는 1900년 초량객주 정치국이 초량동에 세웠다.
냉동고가 없던 시절에 바닥에 수로를 만들어 물기를 제거하고 서늘하게 유지하는 방법을 사용했다.
장소 소개
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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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란한 붉은색 거리를 밝히는 중국식 홍등의 행렬 덕분에 소박한 한복을 입고 초가집 사이를 거니는 옛 부산사람들의 초상이 오히려 이국적으로 보이는 이곳은 초량근대역사갤러리입니다. 사진에서 보듯 이곳 초량의 과거는 푸르른 소나무 아래 흰 모래밭이 펼쳐진 작은 바닷가 마을이었답니다. 1884년, 현재 부산 차이나타운의 모태가 된 청관거리가 들어서기 전까진 말이죠. 부산항 개항 후 남포동 쪽에 조성되었던 일본 거류지에 상점을 내려던 중국 상인들이 일본인들과 마찰을 일으킨 사건을 계기로 조선정부는 초량 일대를 청국의 조계지로 내어주게 됩니다. 근처 화교학교 자리엔 청나라 영사관이 들어섰지요. 거류지, 조계지란 단어가 낯설게 들리실 텐데요, 외국인들이 자유로이 거주하면서 무역을 할 수 있는, 지금으로 말하면 경제 특구 같은 곳이었습니다. 이러한 거류지, 조계지 설치의 이면엔 한반도를 선점하려는 두 나라의 제국주의적 야욕이 숨겨져 있었죠. 이 시기를 기점으로 ‘새띠’ 그러니까, 갈대밭 마을이라 불렸던 평화로운 동네 초량은 동아시아 근대사의 소용돌이 속에 빠져들게 됩니다. 혹시, 여러분이 지금 서 계신 이곳이 백 년 전까지만 해도 바다였다면 믿으시겠어요? 1900년대로 들어서면서 세력을 불린 일본은 대대적인 매축공사를 벌여 초량 앞바다를 메워 나갔습니다. 거류지를 확장하는 동시에 부산을 발판 삼아 대륙 진출을 용이하게 하려는 속셈이었죠. 경부선 철도를 부설한 일제가 부산역을 부산항과 지척의 거리에 둔 것도 도쿄에서 서울로 가는 사람들이 부산에서 배를 내려 빠르게 기차로 환승할 수 있게 하기 위한 것이었답니다. 이렇게 초량은 일제 40년 동안 한반도 식민지화 정책의 전초기지로 쓰이는 슬픈 운명을 감당해야 했습니다. 해방이 되고도 초량의 험난한 세월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곧이어 일어난 한국전쟁으로 기차에 배에 몸을 싣고 남쪽으로 떠밀려 온 피난민들의 종착지가 바로 부산역이고 부산항이었기 때문이죠. 전쟁의 직접적인 화마는 면했지만 폭주하는 피난민들로 초량은 포화상태가 됩니다. 벽면 사진 속에 다랑이 논처럼 산위로 차곡차곡 줄지어 쌓여 올라간 집들의 행렬이 보일 텐데요, 넘쳐나는 피난민들을 어떻게든 수용해 보려는 궁여지책이었던 거죠. 그렇게 가난이 뿌리내린 산동네 그늘 아래에선 한국전쟁을 계기로 주둔하기 시작한 미군들이 차이나타운 옆 텍사스 거리로 몰려들면서 초량은 외화가 흐르는 환락가로 변모합니다. 90년 초반 러시아와 수교를 맺으면서는 러시아 보따리 상인들이 대거 들어와 텍사스 거리를 나누어쓰게 되지요. 최근엔 동남아와 중국인들이 눈에 많이 띈다고 하는데요, 이렇게 초량은 한반도의 나들목이자 부산의 대문으로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정세를 거울처럼 비추고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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