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장로
전남광주통합특별시 동구 서석로 37 (충장로1가)
4가지 관점으로 본 이 장소
KORLENS 큐레이션서울에 명동이 있다면 전남광주통합특별시에는 충장로가 있다.
1963년에 완공되어 그 당시에는 드물게 냉, 난방을 갖춘 대형 건물이었던 우체국은 가난한 연인들이나 학생들에게 둘도 없는 만남의 장소였다.
옛날 다방에서 차를 마시거나 흑백사진관에서 멋진 흑 백사진을 찍는 등 MZ세대를 비롯한 다양한 세대가 즐거운 레트로 체험을 할 수 있다.
충장로에 상가가 형성된 것은 일제강점기 직후인 1911년 일본인이 현 산업은행 건너편에 ‘여목’이라는 상호로 일용 잡화점을 낸 것이 효시이다.
무장애 편의시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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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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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관광공사 오디(Odii) 음성 해설대본
뒹굴동굴이란 재미있는 이름과 달리 이 지하 동굴은 일제 식민지 잔재물이랍니다. 일제강점기 당시 광주 도심에 거주하는 일본인들을 미국의 공습으로부터 대피시키기 위해 1940년대부터 공사가 시작된 방공호예요. 일본인 거주 지역에 가깝고 양림산의 지반이 단단하여 안정된 대피가 가능했기 때문에 방공호 건설이 시작되었으나 단단한 화강암 지반으로 인하여 당초 네 곳의 입구와 가운데 광장을 만들 계획이던 것이 미 완공된 채 전쟁이 종료되었지요. 광복 후에 공사가 방치되었던 곳을 복원하여 현재는 네 개의 입구가 별도의 동굴로 남아있어요. 여름철에는 마을 어르신들의 피서지가 되기도 했던 뒹굴동굴을 걸으며 올바른 역사 사실을 알고, 역사 정의를 되새겨보는 시간을 가져보는 건 어떨까요?
대본
갤러리S는 2012년 개관한 이래 광주 전남 미술의 중심에 서 있는 상업화랑이에요. 2021년 가을 광주천이 내려다보이는 아름다운 양림역사문화마을 초입에 주황색 반달모양의 외관이 이색적인 이 장소로 이전하였어요. 일제 강점기 방공호로 사용되었던 25미터 길이의 동굴을 품은 갤러리 카페 CAVE(까브)와 양림산의 화강암 암반이 드러난 독특한 느낌의 전시장에서 현대미술의 작품들을 경험해보는 건 어떨까요? 루프탑에서는 광주천의 풍경을 맘껏 즐길 수 있답니다.
대본
구 도청 앞 원형 분수대와 넓은 광장은 한국 민주주의의 상징적 장소입니다. 5·18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시민들이 분수대를 연단으로 하여 각종 집회를 열어 항쟁 의지를 불태웠습니다. 5월 18일 이전 3일 동안 학생과 시민들은 이곳에 모여 대규모 민족 민주회 대성회를 열고 시국 선언문을 발표, 군사통치 종식과 민주화를 촉구하였습니다. 집회에는 광주 시내 고등학생들도 대거 참여하였습니다. 5월 22일 계엄군 철수 이후 끊임없이 민주화 투쟁 의지를 다지는 각종 궐기대회가 열렸던 이곳은 바로 5·18 광주 민중항쟁 정신을 낳은 산실입니다. 항쟁 후에도 전국에서 벌어진 민주화 투쟁 과정에서 산화한 민주열사들의 영혼이 이곳에 들러 시민들의 분향을 받으며 전 국민의 투쟁 의지를 일깨웠습니다. 도청 앞으로 불렸던 이 일대는 현재 5·18 민주광장으로 명명되어 불리고 있습니다.
대본
구 전남도청 전남의 살림살이를 맡았던 행정기관이자 5·18 광주민주화운동의 본부였던 구 전남도청은 수많은 시민군들이 민주주의를 위해서 기꺼이 산화했던 최후의 결사 항전지입니다. 재야인사들과 함께 사태 수습을 하기 위해서 노력하던 시민군들은 계엄군의 강제진압이 임박한 5월 26일 어린 학생들과 여자들을 귀가 조치시킨 후 자신들은 죽음의 그림자가 짙게 깔린 전남도청에 끝까지 남아 목숨을 걸고 항전했던 것입니다. 전남도청 분수대 앞은 민주화운동 초기 민주화를 위한 각종 집회가 끊임없이 열려 군부독재에 대한 시민들의 항의와 분노가 표출되었던 곳이었고 항쟁 후에도 전국 민주화 투쟁 과정에서 산화한 민주열사들의 영혼을 보내는 곳이었습니다. 지금도 5월이 되면 5·18 민주광장으로 명명된 전남도청 앞은 광주민주화운동을 기념하기 위한 사람들로 가득 찹니다. 80년 5월에는 광주시민들이 외롭게 항쟁을 치러낸 반면에, 지금은 민주 성지 광주의 정신을 계승하기 위한 행사가 국가적으로 치러지는 것은 물론이고 광주의 정신을 배우고자 하는 아시아인들까지 동참하고 있습니다. 민주와 자유를 위해서 붉은 넋으로 산화한 시민군들의 혼이 배어있는 전남도청은 건물 자체만으로도 문화재적 가치를 가지고 있습니다. 전남도청 회의실은 시·도유형유산으로 지정되었습니다. 건축가 김순하에 의해서 설계된 전남도청 회의실은 출입구의 위쪽에서 옥상까지의 모든 면을 유리로 장식하였고 건물 양옆 모서리와 창문을 곡선으로 처리하였습니다. 출입구 앞에 있는 계단의 난간 역시 곡선으로 처리하였는데 이것은 1930년대에 지은 건물로는 매우 혁신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전남도청 회의실은 일제강점기에 활동한 몇 안 되는 한국인 건축가가 설계한 건물이라는 점과 시대를 앞서가는 뛰어난 조형감각이 살아있는 건물이라는 점에서 한국 근대건축의 귀한 작품입니다. 조선시대 이후에 축성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광주 읍성은 1992년 전남도청에 주차장을 만들기 위해서 부지 정리를 하던 중에 확인되었습니다. 광주 읍지에 의하면 광주읍성은 둘레가 팔천이백쉰세 척에, 높이가 아홉 척인 석축이 말굽모양으로 형성된 것으로 보입니다. 성안에는 100개의 우물과 여첩이 있었고 성문으로는 진남문, 광의문, 공복문, 서원문이 있었습니다. 진남문과 광의문 사이에는 혜자가 둘러져 있었습니다. 또한, 북문 앞 2리 지점에는 공북루라는 누문이, 남문 밖 300m 지점에는 홍전문이 있었다고 전해집니다. 현재는 성벽과 관련된 돌들과 흙으로 된 둑만 일부 남아있는데 확인된 성벽의 높이는 1.9m입니다. 전남도청 화단에는 석등이 하나 있습니다. 시·도유형유산으로 지정된 재명석등입니다. 마치 제자리를 못 찾아 건물 앞 화단에 임시로 놓여진 듯 한 재명석등은 광주 남문 안에 있던 대왕사 유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언제 옮겨졌는지는 확실하지 않으나 무각전 앞마당에 있던 것을 1968년 금남로 확장 공사로 인해 무각전이 개축되면서 현 위치로 옮겨졌습니다. 도·의회 건물이었다가 지금은 국립아시아문화전당 홍보관이 된 건물 앞에는 회화나무 한 그루가 서 있습니다. 이 회화나무는 130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광주 도심을 지켜온 것만으로도 충분한 가치가 있지만 80년 5월 광주와 함께 아픔을 같이했다는 점에서 특별합니다. 광주 민주화운동 당시 회화나무 밑에는 시멘트로 된 참호가 있었습니다. 계엄군이 강제 진압을 시작한 80년 5월 27일 새벽, 당시 고등학생이었던 어린 시민군이 어둠 속을 가르던 계엄군의 유탄을 피해서 시멘트 참호에 납작 엎드려 있다가 계엄군에게 굴비처럼 엮여져 잡혀갔습니다. 어린 시민군을 유탄으로부터 보호해 준 회화나무 밑에 시멘트 참호는 없어졌습니다. 오랜 역사와 5월의 아픔을 지켜본 도청 앞 회화나무는 세 차례에 걸쳐 베어질 뻔한 수난을 겪었지만, 지금은 보호수로 지정되어 광주 시민들의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80년 5월 당시 민주주의를 갈망하던 광주시민들의 피와 눈물과 함성으로 가득 차 있던 전남 도청 일대가 지금은 광주문화 수도의 핵심 시설인 국립아시아문화전당 부지가 되어 민주, 인권, 평화, 문화의 정신적 구심처 역할을 하는 장소로 거듭나고 있습니다. 광주의 근대화와 5·18 민주화운동의 역사가 응축되어 있는 전남도청을 광주의 가장 상징적인 건물로 꼽는다고 해도 그다지 틀린 말은 아닐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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