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망덕사지
경상북도 경주시 배반동
4가지 관점으로 본 이 장소
KORLENS 큐레이션경주 낭산[狼山]의 기슭에 자리하고 있는 절터로 사천왕사와 마주하고 있다.
처음 지어진 때는 정확하지 않으나 신라 문무왕 또는 신문왕 때로 전한다.
현재 절터에는 동·서 목탑터와 그 북쪽으로 금당터와 강당터, 남쪽으로 중문터, 그리고 이를 둘러싼 회랑터가 남아 있어 통일신라시대 전형의 쌍탑 가람배치를 볼 수 있다.
이밖에 중문터 남쪽에 계단터가 잘 남아 있고 그 서쪽으로는 당간지주(보물)가 그대로 남아 있다.
장소 소개
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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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 신라 최초의 여왕 [선생님] 여기는 신라 최초의 여왕 선덕여왕릉이에요. 선덕여왕이 묻혀 있는 이 산을 낭산이라고 하는데, 마치 이리가 엎드려 있는 모양이라고 해 붙여진 이름이죠. 신라 사람들은 예로부터 이 산을 매우 신성시 여겼답니다. 혹시, 여러분은 신라에 몇 명의 여왕이 있었는지 아세요? [학생] 음. 선덕여왕하고 다음 왕위에 오른 진덕여왕이요. [선생님] 네, 잘 알고 있네요. 하지만 한 명이 더 있답니다. 선덕여왕과 진덕여왕 그리고 신라 말에 재위에 오른 진성여왕까지 모두 3명이에요. [학생] 백제나 고구려에는 여왕이 없는데, 신라에만 3명의 여왕이 있는 걸 보면 신라는 남녀가 평등한 사회였나 봐요. [선생님] 꼭 그렇지는 않아요. 신라도 다른 나라와 같이 여왕이 통치자로 살기에는 사회적으로 이겨내야 할 것들이 많았어요. 특히, 선덕여왕은 신라의 첫 여왕으로 오를 때 많은 어려움을 겪었죠. [학생] 그렇군요. 그런데 왜 선덕여왕은 다른 왕들과는 다르게 산에 묻혀 계세요? [선생님] 선덕여왕이 이곳에 묻힌 이유는 선덕여왕의 유언 때문이에요. 어느 날, 선덕여왕은 신하들을 불러 모아 자신이 죽으면 도리천에 묻어 달라고 했어요. 그런데 도리천이 어딘지 알 수 없는 신하들이 여왕에게 물었더니, 선덕여왕은 낭산이라고 대답했죠. 여왕이 돌아가시고 신하들은 유언대로 장례를 지냈지만, 그때까지 왜 낭산이 도리천인지 알지 못했어요. 이후 30년이 흐른 뒤, 비로소 이곳이 왜 도리천이지 알게 되고 여왕의 선견지명에 감탄했다고 해요. [학생] 그럼, 선덕여왕은 어떻게 이곳이 도리천인지 미리 안 거죠? [선생님] 선덕여왕릉으로 오는 주차장 입구에 사천왕사지를 보셨죠? 사천왕사지는 선덕여왕 이후 문무왕 시절 지어진 절이에요. 불경에서는 도리천이 사천왕천 위에 있다고 전해지는데, 선덕여왕릉이 바로 사천왕사의 위에 있어 이곳이 바로 도리천임을 알게 된 거예요. 도리천은 부처님이 계시는 세계를 말하죠. 이 이야기는 선덕여왕이 예견한 세 가지 일 중 하나인데, 나머지 이야기는 능 앞에서 들어보기로 해요. 그럼, 능으로 올라가 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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