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신문왕릉
경상북도 경주시 배반동
4가지 관점으로 본 이 장소
KORLENS 큐레이션신라 31대 신문왕(재위 681~692)의 무덤이다.
신문왕은 문무왕의 아들로 부왕의 뜻을 이어받아 옛 백제와 고구려 백성을 융합하는데 힘썼다.
국립교육기관인 국학을 설립하고, 귀족들의 기반이 되면 녹읍을 폐지하고 관료전을 지급하였다.
지방을 통치하기 위해 전국을 아홉 개의 주로 나누고 중요한 거점 다섯 곳에 소경을 설치하였다.
장소 소개
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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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 신라 최초의 여왕 [선생님] 여기는 신라 최초의 여왕 선덕여왕릉이에요. 선덕여왕이 묻혀 있는 이 산을 낭산이라고 하는데, 마치 이리가 엎드려 있는 모양이라고 해 붙여진 이름이죠. 신라 사람들은 예로부터 이 산을 매우 신성시 여겼답니다. 혹시, 여러분은 신라에 몇 명의 여왕이 있었는지 아세요? [학생] 음. 선덕여왕하고 다음 왕위에 오른 진덕여왕이요. [선생님] 네, 잘 알고 있네요. 하지만 한 명이 더 있답니다. 선덕여왕과 진덕여왕 그리고 신라 말에 재위에 오른 진성여왕까지 모두 3명이에요. [학생] 백제나 고구려에는 여왕이 없는데, 신라에만 3명의 여왕이 있는 걸 보면 신라는 남녀가 평등한 사회였나 봐요. [선생님] 꼭 그렇지는 않아요. 신라도 다른 나라와 같이 여왕이 통치자로 살기에는 사회적으로 이겨내야 할 것들이 많았어요. 특히, 선덕여왕은 신라의 첫 여왕으로 오를 때 많은 어려움을 겪었죠. [학생] 그렇군요. 그런데 왜 선덕여왕은 다른 왕들과는 다르게 산에 묻혀 계세요? [선생님] 선덕여왕이 이곳에 묻힌 이유는 선덕여왕의 유언 때문이에요. 어느 날, 선덕여왕은 신하들을 불러 모아 자신이 죽으면 도리천에 묻어 달라고 했어요. 그런데 도리천이 어딘지 알 수 없는 신하들이 여왕에게 물었더니, 선덕여왕은 낭산이라고 대답했죠. 여왕이 돌아가시고 신하들은 유언대로 장례를 지냈지만, 그때까지 왜 낭산이 도리천인지 알지 못했어요. 이후 30년이 흐른 뒤, 비로소 이곳이 왜 도리천이지 알게 되고 여왕의 선견지명에 감탄했다고 해요. [학생] 그럼, 선덕여왕은 어떻게 이곳이 도리천인지 미리 안 거죠? [선생님] 선덕여왕릉으로 오는 주차장 입구에 사천왕사지를 보셨죠? 사천왕사지는 선덕여왕 이후 문무왕 시절 지어진 절이에요. 불경에서는 도리천이 사천왕천 위에 있다고 전해지는데, 선덕여왕릉이 바로 사천왕사의 위에 있어 이곳이 바로 도리천임을 알게 된 거예요. 도리천은 부처님이 계시는 세계를 말하죠. 이 이야기는 선덕여왕이 예견한 세 가지 일 중 하나인데, 나머지 이야기는 능 앞에서 들어보기로 해요. 그럼, 능으로 올라가 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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