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RLENS

천진궁

경상남도 밀양시 중앙로 324 (내일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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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LENS 큐레이션
외국인
Foreigner

천진궁(天眞宮)은 영남루 경내 북쪽에 위치한 건물로 우리나라 시조인 단군을 비롯해 8대 왕조의 위패가 모셔져 있는 성스러운 곳이다.

커플
Couple

위패의 배열은 중앙에 단군 영정을 시작으로 좌측에는 부여, 고구려, 가야, 고려의 시조 위패와 우측으로는 신라, 백제, 발해, 조선 시대의 시조들의 위패가 모셔져 있다.

가족
Family

음력 3월 15일 어천 대제와 10월 3일 개천 대제 일 년에 두 번 제사를 지낸다.

솔로
Solo

단군 영정을 봉안한 곳은 전국적으로 크게 25개소가 있지만, 8대 왕조 시조까지 봉안한 곳은 밀양의 천진궁이 유일하다.

장소 소개

천진궁(天眞宮)은 영남루 경내 북쪽에 위치한 건물로 우리나라 시조인 단군을 비롯해 8대 왕조의 위패가 모셔져 있는 성스러운 곳이다. 위패의 배열은 중앙에 단군 영정을 시작으로 좌측에는 부여, 고구려, 가야, 고려의 시조 위패와 우측으로는 신라, 백제, 발해, 조선 시대의 시조들의 위패가 모셔져 있다. 음력 3월 15일 어천 대제와 10월 3일 개천 대제 일 년에 두 번 제사를 지낸다. 단군 영정을 봉안한 곳은 전국적으로 크게 25개소가 있지만, 8대 왕조 시조까지 봉안한 곳은 밀양의 천진궁이 유일하다. 그래서 이곳을 잘 아는 학자들은 천진궁을 두고 밀양 선비와 전국 유림의 국가관, 민족사관을 엿볼 수 있는 곳으로 평가하고 있다. 천진궁의 규모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단층 팔작의 기둥과 지붕을 연결하는 고유의 건축양식인 주심포식 건물로 대리석으로 기단을 쌓고 그 위에 높은기둥을 세워 웅장한 위용을 느끼게 한다. 건축적인 가치를 지니고 있는 천진궁은 역사적인 아픔이 고스란히 녹아 있는 장소이기도 하다. 일제강점기 당시 일제는 조선왕조의 정통성을 말살하기 위해 역대 시조의 위패를 땅에 묻고 감옥으로 사용했다고 한다. 이는 우리나라 민족의 최대 수난사로 기억되고 있으며 해방 이후 이를 복원하려는 지역민의 노력은 단지 옛 건물의 복원이 아닌 민족의 정통성 회복을 추구하고자 했던 밀양인의 민족정신을 의미 있게 잘 보여준다.

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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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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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본

지금 보시는 곳은 우리나라 대표 누각인 국보 영남루입니다. 영남루의 시작은 통일신라 시대, 영남사라는 절에 있던 작은 누각에서 비롯되었습니다. 고려 말인 1365년, 밀양군수 김 주가 다시 세우며 비로소 ‘영남루’라 불리게 되었습니다. 임진왜란으로 큰 피해를 입었지만, 19세기 중반 밀양부사 이인재가 대대적으로 확장하면서 오늘날과 같은 모습이 갖추어졌습니다. 가운데 큰 대루를 중심으로 동쪽의 능파각, 서쪽의 침류각, 그리고 이를 연결하는 여수각이 어우러져 독특한 누각 군락을 이룹니다. 영남루는 규모 면에서도 당대 최대 수준이었고, 탁트인 밀양강의 절경을 한눈에 담을 수 있어 조선의 명사들이 수많은 시와 글을 남겼습니다. 지금도 그 시절 선비들의 글씨가 새겨진 편액과 당대 시인들의 정취가 담긴 시판이 남아 있습니다. 그 안에는 영남루의 품격과 운치가 함께 깃들어있죠. 밀양 영남루는 풍부하게 남아있는 각종 고증기록을 통해 16세기부터 현 위치를 유지하는 점에서 역사적 가치가 크고, 빼어난 건축형식과 배치는 주변 경관과 잘 어우러져 예술적으로 가치가 높으며, 수많은 명사들이 탐방하고 교류하며 남긴 시문 등은 높은 학술적 가치를 지니고 있어 국보로서 충분한 가치를 가지고 있습니다.

밀양읍성
71
대본

지금 여러분이 서 계신 이곳은 밀양읍성, 조선 성종 때 처음 돌로 쌓아 올린 성곽입니다. 당시 둘레는 약 4천6백 자, 높이는 아홉 자에 달했으며, 성 안에는 우물과 연못이 있어 군사와 주민들의 생명을 지켜주었습니다. 선조 때에는 성을 더욱 튼튼히 하기 위해 해자를 파고 물을 끌어들였고, 사방으로 난 네 개의 대문과 야문은 외적의 침입을 막는 방패이자, 백성들의 삶을 지켜주는 통로가 되었습니다. 특히 남문, 공해루는 웅장한 3층 누각으로, 읍성의 상징처럼 우뚝 서 있었습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며 1902년 철도가 지나고, 6·25 전쟁 당시에는 성돌이 방어진지 구축에 사용되어 대부분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지금은 무봉사 뒤편에서 아동산 정상까지 이어지는 흔적만이 당시의 위용을 조용히 전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밀양읍성은 경상남도 기념물로 지정되어, 밀양의 역사와 함께 당시 군사 방어 시설의 면모를 전해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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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러분이 서 계신 이곳은 밀양읍성, 조선 성종 때 처음 돌로 쌓아 올린 성곽입니다. 당시 둘레는 약 4천6백 자, 높이는 아홉 자에 달했으며, 성 안에는 우물과 연못이 있어 군사와 주민들의 생명을 지켜주었습니다. 선조 때에는 성을 더욱 튼튼히 하기 위해 해자를 파고 물을 끌어들였고, 사방으로 난 네 개의 대문과 야문은 외적의 침입을 막는 방패이자, 백성들의 삶을 지켜주는 통로가 되었습니다. 특히 남문, 공해루는 웅장한 3층 누각으로, 읍성의 상징처럼 우뚝 서 있었습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며 1902년 철도가 지나고, 6·25 전쟁 당시에는 성돌이 방어진지 구축에 사용되어 대부분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지금은 무봉사 뒤편에서 아동산 정상까지 이어지는 흔적만이 당시의 위용을 조용히 전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밀양읍성은 경상남도 기념물로 지정되어, 밀양의 역사와 함께 당시 군사 방어 시설의 면모를 전해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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