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무재
대구광역시 수성구 화랑로42길 31
4가지 관점으로 본 이 장소
KORLENS 큐레이션독무재는 벼슬도 마다하고 향리에 은거하며 후진 양성에 전념한 하시찬을 추모하기 위해 그의 문인과 유림들이 힘을 모아 건립한 추모 재실이다.
하시찬은 1750년 지금의 대구 수성구 만촌동에서 태어나 당대의 석학이던 김경호, 송성담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주변으로 동촌파크광장놀이공원과 국리대구기상과학관, 아양아트센터, 망우단공원 등이 있어 함께 둘러볼 만 하다.
원래 동구 효목동 경북주유소 부근 경부선 철로 변에 있었으나 대구시 3차 우회도로가 개설되면서 1968년 4월에 지금의 자리로 이건 되었다.
장소 소개
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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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무재와 돈목재는 만촌동에서 350년 넘게 명맥을 유지해 온 달성 하씨 문중 재실로, 특히 독무재는 조선 후기 유학자 열암 하시찬을 기리는 재실입니다. 조선 후기의 성리학자였던 하시찬은 이의조, 송환기의 문하에서 수업했으나 관직에는 나가지 않았습니다. 그는 홀로 독무암서라는 작은 집을 짓고 학문을 익히면서 당대의 석학들과 교류하면서 오로지 후학 양성에 힘썼는데요. 팔례절요와 열암문집 같은 저서를 남긴 인물입니다. 하시찬과 관련된 일화 중에는 그의 지조와 절개를 드러내는 기록이 있는데요. 어느 날 경상도 관찰사가 그의 명성을 듣고 찾아왔습니다. 관찰사는 하시찬을 조정에 천거하고 싶다며 한 가지 조건을 달았어요. 내 자네를 조정에 천거하고 싶네. 다만 한 가지 조건이 있어. 그게 무엇이옵니까? 내 부친과 자네가 이름이 같다는 게 영 마음에 걸리지 뭔가. 예로부터 조선에는 피휘가 있지 않나. 이름을 바꾼다면 조정에 자네를 천거해 주겠네. 이에 하시찬은 관찰사의 부탁을 거절하며 이런 말을 했습니다. 나는 본래 벼슬의 뜻도 없거니와 또 있다고 한들 어찌 부모님께서 지어준 이름을 바꾸겠습니까? 그렇게까지 해서 벼슬을 탐하고 싶지 않습니다. 이렇듯 하시찬은 신념과 지조를 지킨 것으로 유명해요. 훗날 후학과 유림들이 그를 추모하기 위해 독무재를 건립했는데, 당시에는 현재의 위치에서 500여 미터 가량 떨어진 곳에 있었습니다. 그러던 것이 1968년 도로 개설과 함께 이곳으로 옮겨졌는데요. 사실 독무재는 재실로서는 좀 특이한 구조를 갖추고 있습니다. 마치 서원과 같은 형태로서 공부하는 공간인 독무재와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공간인 경덕사, 서책과 목판을 소장했던 장판각으로 이루어져 있어요. 그리고 독무재 인근에는 또 다른 달성 하씨 재실인 돈목재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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