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궁사(인천)
인천광역시 영종구 운남로 199-1
4가지 관점으로 본 이 장소
KORLENS 큐레이션신라 문무왕 10년(670년)에 원효대사가 창건하여 산 이름을 딴 백운사라 하였다.
흥선대원군 이하응이 이 절에 머물면서 10년 동안 기도를 하였다고 한다.
1864년에 고종이 왕위에 오르자, 흥선대원군은 절을 옛터에 옮겨 짓고, 구담사에서 용궁사로 이름을 바꾸었다.
일설에는 영종도 중산 월촌에 사는 윤공이란 어부가 꿈을 꾼 뒤 바다에서 작은 옥불을 어망으로 끌어올려 이 절에 봉안했다는 전설에 따라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한다.
장소 소개
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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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에서 건진 돌부처 인천광역시 중구 운남동 백운산 동쪽 기슭에 용궁사라는 사찰이 있습니다. 용궁사는 신라시대인 670년에 원효대사가 창건하였는데, 당시에는 백운사라 하였으며, 1854년 흥선대원군에 의해 중수하면서 용궁사가 되었습니다. 용궁사에는 일제강점기에 일본에 약탈당하기 전까지 돌로 된 불상이 안치되어 있었습니다. 그 불상에는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해져 내려옵니다. 옛날 영종도에 손 씨라고 부르는 가난한 어부가 살고 있었습니다. 손 씨는 비록 생활은 어려웠지만 착하고 성실해서 마을 사람들에게 평이 좋았지요. 그 역시 마을에 살고 있는 다른 어부들과 마찬가지로 조그마한 고깃배를 가지고 물고기를 잡아 생계를 꾸려갔습니다. 어느 해 음력 사월이 되었을 때, 영종도의 어부들은 연평도로 조기를 잡으러 가게 되었습니다. 손 씨도 마을 사람들과 함께 연평도로 갔지요. 연평도 인근 바다에 도착한 손 씨는 그물을 내리고 고기를 기다렸습니다. 한참 후 그물을 끌어 올렸는데 평상시보다 묵직하였습니다. 그래서 부푼 기 대를 안고 그물을 힘차게 당겼는데 조기는 없고 돌부처 한 개가 들어 있는 게 아닙니까? 오랫동안 바다에 가라앉아 있어서 그런지 돌부처에는 이끼가 잔뜩 끼어 있었습니다. 아무리 보아도 쓸모없이 보여 바다로 다시 던져 버렸습니다. 같이 연평도로 조기를 잡으러 간 다른 어부들은 배가 가득하도록 조기를 잡아 영종도로 돌아갔는데 손 씨만 빈 손이었습니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잡아볼 요량으로 다시 그물을 던졌습니다. 얼마나 지났을까요? 고기가 잡힌 것 같아 그물을 걷어 올렸는데 이번에도 또 돌부처만 덩그러니 들어 있는 게 아닙니까? 화가 난 손씨는 투덜거리며 다시 돌부처를 바다에 던지고 빈 배로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날 밤 손 씨의 꿈에 백발의 도사가 나타나 엄하게 꾸짖었습니다. “네가 오늘 바다에서 건진 돌부처는 원래 백운산에 있는 용궁사에 있어야 할 분이다. 내일 네가 고기를 잡으러 나가면, 다시 돌부처를 건질 것인데, 영종도 태평암 위에 세워 놓아라.” 깜짝 놀라 잠에서 깬 손 씨는 기이한 생각이 들어 다음 날 날이 밝기도 전에 연평도로 가서 그물을 내렸습니다. 그랬더니 정말 어제 건졌던 돌부처가 그물 안에 들어 있었습니다. 손 씨는 ‘꿈에 나타난 도사의 말이 사실이구나!’ 생각하고 돌부처를 영종도로 가지고 와 태평암 위에 모셨습니다. 그 이후 매일같이 물고기가 잘 잡히고 손 씨는 부자가 되었지요. 후손들도 대대로 번창하였고요. 한편, 돌부처를 모셔 둔 태평암 근처에는 하는 일 없이 활을 쏘면서 시간을 보내는 한량들이 많았습니다. 한 한량이 태평암 위에 돌부처가 서 있는 것을 보고 장난 삼아 활을 쏘았습니다. 그런데 한량이 쏜 화살이 그만 돌부처 오른팔에 부딪혀 팔이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잠시 뒤 떨어진 팔이 다시 제자리에 붙더니 그 손 안에는 약병이 하나 들려 있었습니다. 돌부처에 활을 쏜 한량은 그 자리에서 바로 즉사하였고요. 태평암 위에 있던 돌부처는 오랜 시간이 흐른 뒤 한 스님에 의해 용궁사로 모셔졌습니다. 돌부처 손에 쥐어 있던 약병의 약으로 많은 사람들의 병을 고쳤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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