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4·19민주묘지
서울특별시 강북구 4.19로8길 17
4가지 관점으로 본 이 장소
KORLENS 큐레이션삼각산(북한산) 기슭의 국립 4·19 묘지는 1960년 3·15 부정선거를 자행한 권력에 맞서다 1960년 4·19 혁명 때에 희생된 224분이 안장되어 있으며, 이를 기리는 기념탑이 세워져 있다.
벚꽃이 피는 5월, 공원에서 바라보는 삼각산(북한산)은 어머니 품과 같은 아늑함과 화려함을 동시에 느낄 수 있으며, 일몰의 풍경은 장관이다.
135,901㎡의 묘지 경내에는 소나무와 향나무, 주목과 단풍나무 등으로 아담하게 꾸며져 있으며, 1,652.9㎡ 규모의 기념관과 영정을 모신 유영봉 안소는 한식 목조건물이 330.58㎡ 규모로 확장되어 있다.
그 외에 상징문, 민주의 뿌리, 정의의 불꽃 등 조각 작품과 연못이 있으며, 보도블록을 예쁘게 깔아 놓은 산책로와 야외 의자도 있다.
무장애 편의시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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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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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관광공사 오디(Odii) 음성 해설대본
3.15 부정 선거로 대통령에 당선된 이승만 정권에 분노한 시민들은 선거의 무효를 요구하는 시위를 벌였어. 마산과 창원을 시작으로 시위는 전국적으로 퍼져나갔지. 그런데 시위 도중 마산의 고등학생이었던 김주열 열사가 최루탄에 맞아 숨지는 일이 벌어졌어. 1960년 4월 19일, 전국 곳곳의 거리에서 이에 분노한 수많은 학생과 시민들이“이승만은 물러나라!”를 목놓아 외쳤어. 4. 19 혁명이 일어난 거야. 이승만 정권은 경찰을 동원해 시위를 진압했어. 경찰은 시위를 진압하기 위해 시민들을 향해 총을 쏘았지. 이 총에 중학생은 물론 초등학생까지 맞아 죽는 일이 벌어졌어. 그렇게 초등학생부터 대학생까지 정부와 경찰의 폭력행위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였어. 국민들의 거센 저항 끝에 이승만은 대통령직에서 물러나겠다고 발표했지. 학생들과 시민이 힘을 합쳐 독재 정치를 끝내려고 했던 4.19 혁명은 이후 우리나라 민주주의 발전에 기초가 되었어. 서울 북한산에 위치한 국립 4.19 민주묘지에는 권력의 총칼에 굴하지 않고 한 목숨 바쳐 독재 권력에 맞서 싸운 영웅들이 모셔져 있어. 이곳에서 민주주의를 위해 큰 희생정신을 보여 주신 분들에 대해 추모와 감사를 전하는 시간을 가져봐. 민주주의에 대한 지식과 의지를 배울 수 있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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