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석빙고
경상북도 경주시 인왕동
4가지 관점으로 본 이 장소
KORLENS 큐레이션석빙고는 얼음을 넣어두던 창고로, 이 석빙고는 경주 반월성 안의 북쪽 성루 위에 남북으로 길게 자리하고 있다.
남쪽에 마련된 출입구를 들어가면 계단을 통하여 밑으로 내려가게 되어 있다.
안으로 들어갈수록 바닥은 경사를 지어 물이 흘러 배수가 될 수 있게 만들었다.
지붕은 반원형이며 3곳에 환기통을 마련하여 바깥공기와 통하게 하였다.
장소 소개
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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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관광공사 오디(Odii) 음성 해설대본
황금상자에서 태어난 아이, 김알지 [해설] 신라 네 번째 왕인 탈해왕 때 일이었어요. 왕이 잠을 자는데 밤새도록 어디선가 닭 우는 소리가 들려 왔다고 해요. [탈해] 응? 새벽도 아닌데 웬 닭이 저리도 밤새 운단 말이냐? [해설] 다음날 탈해왕은 신하들과 함께 직접 닭 우는 숲을 찾아갔어요. 하지만 탈해왕이 울고 있는 닭에게 살금살금 다가가는 순간, 닭이 인기척을 느끼고 하늘로 후드득 날아가 버렸답니다. [해설] 대신 닭이 쳐다보던 높은 나무 꼭대기에 번쩍번쩍 빛나는 금 상자가 매달려 있었어요. [탈해] 아니, 저, 저게 무엇이냐? 금 상자가 아니더냐? 얼른 저 금 상자를 내리 거라! [해설] 그 순간! 이상한 일이 일어났어요. 하늘 어딘가에서 갑자기 온갖 새들이 나타나, 상자 주위로 모여들어 지저귀며 춤을 추었죠. 탈해왕이 금 상자를 조심스레 열어 보니, 안에는 사내아이가 누워 있었답니다. [탈해] 허허. 금 상자 안에서 아기가 나오다니. 기이한 일도 다 있구나. 이 아이는 분명 보통 아기가 아닐 것이다, 필시 하늘이 우리에게 주신 선물일 것이야! [해설] 이후 석탈해 왕은 아이를 궁궐로 데려와, 금 상자에서 태어난 아기라는 뜻으로 금알지란 이름을 지어주었고, 나중에 금은 김으로 부르게 되었답니다. 김알지 탄생 설화 속의 신라 김알지의 탄생 설화, 어떠셨나요? ‘황금상자 속에서 아이가 태어난다?’ 조금은 비현실적이죠? 이렇게 설화는 인물의 신성함을 강조하기 위해 다소 비현실적이고 우연적인 전개가 많아요. 하지만 그 내용 속엔 당시의 사상과 역사적 가치들이 담겨져 있어 역사를 보는 우리에게 많은 이야기를 전해주고 있답니다. 그럼, 김알지의 탄생설화에는 어떤 이야기가 담겨져 있는지 살펴볼까요? 설화에는 닭과 황금상자가 등장해요. 닭은 새를 신성시하는 토템사상과 연결되어 있어요. 옛날 사람들은 새를 하늘과 지상을 연결하는 동물로 생각했는데, 특히 닭은 어둠을 물리치고 아침을 알리는 동물로 매우 신성한 존재로 여겼어요. 그렇다면 황금상자는 무슨 의미일까요? 신라의 유물 중에는 화려한 금관을 비롯해 금팔찌, 금 허리띠 등 금으로 된 장신구들이 많이 발굴되고 있는데, 당시 금은 왕족과 귀족들이 사용하는 보석으로 권력을 한층 더 돋보이게 해주는 장치로 사용되었죠. 이렇게 김알지의 탄생설화를 통해 당시 신라 사람들이 새 토템 사상과 금을 숭배한 것을 알 수 있어요. 그런데 이러한 신라인의 문화가 북방민족과 연관되어 있다는 견해가 있어요. 북방민족은 새를 신성시하고 금을 귀하게 여겼는데, 유목생활을 하는 그들에겐 금은 재산과 같아 항상 몸에 지니고 다녔죠. 이는 농경사회에서 볼 수 없는 독특한 문화였어요. 그리고 신라의 독특한 무덤 양식인 돌무지덧널무덤은 북방민족의 매장풍습과 많은 유사점이 있죠. 신라의 화려한 황금유물과 새를 신성시하는 토템문화 그리고 독특한 무덤 양식이 북방민족과 닮아 있는 것은 우연일까요?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대본
동궁과 월지는 신라 왕궁의 별궁터이며, 왕자가 거처하는 궁궐이었습니다. ‘동궁’은 태자가 머물던 궁궐을, ‘월지’는 달이 비치는 연못을 뜻합니다. 신라는 나라의 경사가 있을 때나 귀한 손님을 맞을 때 이곳에서 연회를 베풀었다고 합니다. 신라가 견훤의 침입을 받은 뒤, 왕건을 초청하여 위급한 상황을 호소하며 잔치를 베풀었던 곳이기도 하지요. 동궁과 월지는 ‘안압지’라고도 불렀었는데요. 안압지로 불리게 된 배경에는 조금은 먹먹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신라가 멸망하고 고려와 조선에 이르러 이곳이 폐허가 되자, 시인 묵객들이 연못을 보며 “화려했던 궁궐은 간데없고 기러기와 오리만 날아든다”는 쓸쓸한 시구절을 읊조리곤 했어요. 그때부터 기러기 ‘안’자와 오리 ‘압’자를 써서 ‘안압지’라고 불리게 되었어요. 이후 1980년대에 ‘월지’라는 글자가 새겨진 토기 파편이 발굴되었고, 2011년‘안압지’라는 이름은 ‘동궁과 월지’로 이름이 바뀌었습니다. 동궁와 월지의 서쪽에 있는 임해전 터의 연못 주변에는 회랑지를 비롯해서 크고 작은 건물터 26곳이 확인되었어요. 그중 임해전으로 추정되는 곳을 포함한 3개의 건물과 연못이 복원되어 오늘날 우리에게 전해지고 있지요. 첫 번째 전각부터 둘러보며 동궁과 월지를 조금 더 자세히 알아보는 것은 어떨까요? 넓은 바다처럼 느껴지는 연못과 밤이 되면 더욱 예쁜 전각들을 만날 수 있을 거예요. 사진출처 : ⓒ한국관광공사 포토코리아-전우석
대본
앞에 보이는 주춧돌은 건물들이 있었던 자리입니다. 이들 중 세 개의 건물이 복원되었는데, 복원된 세 개의 건물은 동궁과 월지에서 가장 큰 건물이었다고 해요. 현재 임해전으로 추정되는 두 번째 건물을 제외하고는 이름을 추측하기가 어려워 제1호, 3호, 5호 건물로 불리고 있답니다. 동궁과 월지 안에는 용왕에게 제사를 지내는, 용왕전이라는 건물이 있었다고 전해지고 있어요. 동궁과 월지를 발굴할 때 발견된 ‘심신 용왕’이라는 글씨가 새겨진 토기가 그 사실을 뒷받침해주고 있지요. 심신 용왕이란, ‘새로운 제물을 용왕께서 굽어살펴 주소서’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또한, 토기 이외에도 주술품, 또는 제사용품으로 추측되는 여러 유물들이 발견되었는데요. 실제로 쓸 수 없는 납판을 오려 만든 가위와 칼, 장승처럼 보이는 손가락 굵기의 나무인형 등이 대표적입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동궁과 월지가 비단 연회를 베풀고 사신을 접대하는 장소만이 아닌, 제사를 지내는 곳으로도 이용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지요. 두 번째 전각에서는 당시 동궁과 월지의 모습을 짐작할 수 있는 모형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그 모습을 보면 크고 화려했던 동궁과 월지의 옛 모습을 떠올려 볼 수 있죠. 그럼, 두 번째 전각으로 이동해 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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