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진어묵 체험·역사과학관
부산광역시 영도구 절영로7번길 41-1 (봉래동2가)
4가지 관점으로 본 이 장소
KORLENS 큐레이션부산광역시 영도구에 위치한 삼진어묵 체험·역사과학관은 부산어묵의 역사를 만나볼 수 있는 동시에 다양한 볼거리와 흥미로운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는 곳이다.
삼진어묵 체험·역사관은 1, 2층이 체험 공간으로 운영되고 있으며, 3층에는 역사과학관으로 구성되어 있어 어묵과 관련된 역사적, 과학적 정보를 만나볼 수 있다.
부산광역시 영도구에 위치한 삼진어묵 체험·역사과학관은 부산어묵의 역사를 만나볼 수 있는 동시에 다양한 볼거리와 흥미로운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는 곳이다.
또한, 직접 만든 어묵 요리는 현장에서 시식이 가능하다.
장소 소개
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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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관광공사 오디(Odii) 음성 해설대본
뜨거운 삶의 현장, 일본경질도기주식회사 우리가 서 있는 이 길이 100년 전에는 어떤 모습이었을까요? 인력거와 전차가 분주하게 움직이고 거리마다 한복을 입은 사람들이 꿋꿋하게 삶을 이어가던 시절. 그때의 영도를 길 위에서 만나봅니다. 근대역사흔적길을 따라 펼쳐지는 첫 번째 이야기는 도자기 공장 일본경질도기주식회사입니다. 일본경질도기주식회사는 1908년 일본 가나자와의 지역 향토 기업으로 설립됐어요. 회사는 1917년 조선에 진출하면서 지금 여러분이 서 있는 영도구 대교로14번길 17에 공장을 설립합니다. 조선 전체에서 가장 큰 도자기 공장이었고 동양 최대 규모였지요. 그만큼 종업원도 많았습니다. 총 900명의 종업원이 한식기와 양식기 등을 제작했어요. 만들어진 도자기 제품은 동남아 각지로 수출됐습니다. 인기가 많았다고 해요. 광복 이후 공장은 사명을 대한 도기 주식회사로 변경하고 계속해서 도자기를 생산했어요. 광복의 기쁨이 채 가시기도 전에 회사는 전환점을 맞이합니다. 한국 전쟁이 발발하면서 유명 화가들이 부산으로 피난을 오게 된 것이지요. 이중섭, 김은호, 변관식 등 당대를 대표하는 화가들이 대한도기에서 핸드페인팅 도자 접시를 제작했습니다. 피난 수도 부산에서 살아가던 화가들의 삶의 터전이었지요. 이 도자기는 기념품으로 크게 주목 받았습니다. 하지만 시대가 흐르면서 스테인리스 그릇이 등장하게 되고 도자기의 인기는 점차 줄어들었어요. 1970년 경영난을 이기지 못한 대한도기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됩니다. 현재의 이 자리는 아파트로 바뀌었습니다. 높은 굴뚝에서 뜨거운 삶의 열기가 피어오르던 삶의 현장이었습니다. 일본경질도기주식회사 건물의 담장 일부분은 블루포트2021(영도구 봉래나루로 138) 후문에 남아 그때의 시간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사진출처 : 국가기록원 (2~4번째 사진)
대본
흥과 한 잔의 술을 즐기던 목도유곽거리 우리가 서 있는 공간을 다시 보는 시간. 근대역사흔적길을 따라 펼쳐지는 두 번째 이야기는 목도유곽거리입니다. 여러분이 걷고 있는 이 거리를 100년 전의 영도 사람들이 보았다면? 아마 다들 깜짝 놀랄 거예요. 평범한 골목길이 되어버린 이곳이 바로 목도유곽거리였습니다. 영도가 목도로 불리던 시절, 1932년 당시 영도에는 13개의 유곽이 있었습니다. 그중 6개소가 목도유곽거리에 있었는데요. 밀집한 유흥시설로 보아 당시 대평로가 영도의 중심 유흥가였다는 것을 짐작게 합니다. 유곽이라고 하면 부정적인 이미지가 연상되지만, 당시 신문을 보면 현재와 다른 인식을 엿볼 수 있습니다. 부산일보 1925년 3월 24일 신문에는 1925년 목지도 대좌부 영업 조합 조합장에 부산부 의원이자 유곽 주인인 쿠부시로 칸이치가 선출되었다는 기사가 있어요. 지금으로 치면 부산시의회 의원이 유곽 주인이고 영도에서 영업하는 유곽조합장에 선출되었다는 소식을 알린 셈이지요. 당시 유곽은 지금의 주점과 비슷한 위치였던 것으로 보입니다. 영도의 최고 유흥가였던 거리는 이제 평화롭고 조용한 골목길로 남아 시간의 변화를 느끼게 합니다. -사진출처: 강영조, 김용희(2~3번째 사진)
대본
봉래시장의 전신, 목도시장 근대 역사를 찾아 나서는 세 번째 시간. 오이소! 보이소! 사이소! 활기찬 상인들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던 목도시장입니다. 봉래시장은 광복 후에 생겨났습니다. 그렇다면 광복 이전에는 어느 곳에 시장이 있었을까요? 1932년 6월 1일에 생겨난 목도시장은 앞에 보이는 대화아파트 자리에 있었습니다. 초량시장과 함께 부산에서 6번째로 생겨난 공설시장이었지요. 대지 718평에 지어진 시장은 225평 규모로 지어졌어요. 영도 앞바다에서 잡아 온 싱싱한 해산물부터 농산물과 공산품, 잡화까지 다양한 물건을 살 수 있었지요. 시장은 언제나 손님으로 발 디딜 틈이 없었습니다. 부산부의 조사에 따르면 1941년 목도시장은 부산 주요 시장 중에서 매출이 가장 높은 곳으로 기록됐어요. 급변하는 현대사 속에서 시장은 근대 역사의 한 페이지로 남았습니다. 상인과 손님이 내던 삶의 소리는 이제 봉래시장에서 들려옵니다. -사진출처: 영도문화원(1번째 사진)
대본
부산 영화사에 빠질 수 없는 에비스자 극장과 코토부키자 극장 변사의 설명에 집중하며 활동사진을 구경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음악도 없고 배우들의 실제 목소리로 전하는 대사가 아니지만, 변사를 통해 울고 웃던 그날의 영도를 만나봅니다. 근대 역사를 찾아 떠나는 다섯 번째 시간은 에비스자 극장(蛭子座, 질자좌)입니다. 지금 앞에 보이는 남항동1가 98일대는 영도 최초의 극장 에비스자(질자좌)가 있었습니다. 연극 전용 극장인 에비스자 극장은 1912년 문을 열어 6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운영되다 1918년에 역사 속으로 사라집니다. 에비스자 극장이 문을 닫고, 그 인근에 1924년 2월 코토부키자(壽座) 극장이 문을 열었어요. 1926년 4월 코토부키자 극장은 남포동에 있던 ‘사이와이자(幸座) 극장’으로 운영권이 넘어가면서 제2사이와자로 극장명을 바꾸게 됩니다. 1936년 4월 다시 극장명을 코토부키자로 바꾼 극장은 광복이 될 때까지 운영을 이어가지요. 광복 이후 코토부키자 극장은 일본식 이름을 벗어던지고 ‘항구 극장’으로 탈바꿈해 새롭게 영업을 시작합니다. 격동의 현대사와 함께한 항구 극장은 흘러간 세월만큼 바뀐 세상에 적응하지 못했습니다. 1990년 66년의 역사를 뒤로하고 항구 극장은 폐관하게 됩니다. 영화의 도시 부산은 어쩌면 100년 전부터 시작됐을지도 모릅니다. 흑백 영사기가 뿜어낸 빛은 무한한 가능성을 보여주는 창이 되었고 영화를 통해 빛나는 미래를 꿈꾼 이들이 만든 도시가 바로 부산이기 때문입니다. -사진출처: 강영조, 김용희(3~4번째 사진)
대본
새하얀 소금이 만들어지던 시라이시제염소 현대실 빌딩 사이에 고풍스러운 건물이 눈에 띕니다. 일본식 목조 지붕에 빨간 벽돌로 된 외벽. 이 건물은 언제 지어졌을까요? 길 위에서 만나는 영도의 근대 역사 여섯 번째 이야기는 시라이시제염소입니다. 대형 공장과 조선소가 생겨나며 산업 부흥기를 맞이한 근대 영도. 1915년 5월 제염업자 시라이시 우마타로(白石馬太郞)가 세운 시라이시제염소(白石製鹽所)도 산업 부흥기에 생겨났습니다. 1937년 당시 부산에는 11곳의 제염 업체가 있었는데요. 그중 8곳이 영도에 있습니다. 제염업이 유망 산업이자 영도의 대표 산업 중 하나였지요. 광복 후 시라이시제염소는 남흥제염소로 이름을 바꾸어 영업을 이어 나갑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영도의 제염 공장은 하나둘 문을 닫기 시작했습니다. 남흥제염소도 문을 닫으면서 제염소는 사라졌습니다. 하지만, 제염소 건물의 일부는 지금까지 남아 있어요. 여러분이 보고 계신 고풍스러운 벽돌 건물이 바로 시라이시제염소가 있었던 증거입니다. 부산부 영선정 1950번지가 부산광역시 영도구 남항서로 128로 바뀌는 동안 영도에서 제염업은 사라졌습니다. 하지만 건물은 100년 전 하얗게 쌓인 소금이 반짝이던 그 시절의 영도를 기억하고 있습니다. -사진출처: 강영조, 김용희(1번째 사진), 영도문화원(2~3번째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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