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산예장공원
서울특별시 중구 주자동
4가지 관점으로 본 이 장소
KORLENS 큐레이션조선시대 군사들의 훈련장이었던 남산예장자락을 복원한 공원으로, 지상과 지하로 나뉘어 있다.
지상에는 중앙정보부의 고문실을 재현한 ‘기억6’, 조선총독부 관사 터를 그대로 보존한 ‘유구터’, 남산의 역사와 문화를 소개하는 ‘남산이야기’ 등이 있다.
또한, 공원을 통해 시민들이 역사를 배우고, 평화와 인권의 가치를 되새길 수 있도록 다양한 전시와 교육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다.
또한, 푸른 소나무 숲과 잔디밭, 산책로 등이 조성되어 있어 시민들의 휴식처로 사랑받고 있다.
무장애 편의시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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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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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관광공사 오디(Odii) 음성 해설대본
대한민국 쇼핑과 경제의 중심지 명동거리에는 커다란 쇼핑백을 든 관광객들과 데이트를 즐기는 연인들 그리고 직장인들이 섞여 항상 사람들로 가득합니다. 이들이 명동으로 오는 이유는 최신 패스트패션 브랜드들과 뛰어난 품질의 한국 화장품 브랜드, 맛있는 먹거리를 만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명동이 지금처럼 상업화 된 것은 일제강점기인데요, 당시 청계천을 중심으로 남쪽인 명동에는 일본인들이 많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초기에는 일본인들의 상업지구로 개발되었습니다. 광복 이후의 명동은 문화의 거리가 되었는데요. 당시 명동에 있던 많은 다방들은 예술인들이 문학과 예술, 사상을 논하고 토론하던 만남의 장이었습니다. 주점들도 성황을 이루어서, 밤새 술잔을 기울이는 예술가들을 자주 볼 수 있었습니다. 현재의 명동은 문화와 쇼핑의 중심지가 되었습니다. 명동에서 유명한 유네스코길,명동 8길, 콴첸루 거리를 비롯해 곳곳에 대형쇼핑몰과 화장품 판매점, 문화시설과 다양한 먹을거리가 있습니다. 특히 오후 5시부터 11시까지는 노점상과 길거리 공연을 하는 사람들이 있어 더욱 활기찬 분위기를 느낄 수 있습니다.
대본
대한민국 천주교회의 상징 명동의 제일 높은 언덕에 위치한 명동성당은, 한국 천주교회의 중심이 되는 성당입니다. 2014년 교황님의 방문으로 더욱 유명해진 곳입니다. 성당은 프랑스인 코스트신부가 고딕양식으로 설계했고, 한국인 신자들의 무료 건축봉사와 중국 청나라에서 온 벽돌공들의 기술이 더해져 1898년에 완공되었습니다. 정면의 본당은 45미터의 종탑과 예배당, 지하성당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종탑에서는 하루에 세 번 아름다운 종소리를 울려 기도시간을 알려줍니다. 본당의 스테인드글라스 창문은 회색 벽돌기둥들을 비추며 차분한 분위기를 만들어주는데요, 2층 성가대석에는 우리나라 성당 중에 최초로 파이프 오르간을 설치했다고 합니다. 지하성당에는 5명의 성인과 4명의 순교자 유해가 모셔져 있습니다. 이 곳은 추모의 기도가 이루어지는 공간이기 때문에 엄숙하고 조용합니다. 본당건물 뒤에 있는 성모마리아상은 민주화 운동 당시 청년들의 기도를 들어주는 자애로운 어머니이자 시민들의 평안을 기원하던 명동성당의 수호자입니다. 명동성당의 수호자에게 기도를 올리고 잠시 마음의 평화를 얻어보는 것은 어떨까요?
대본
조선시대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한옥마을 남산골 한옥마을은 1993년부터 4년에 걸쳐 한옥 다섯 채를 이전하고, 그 주변을 전통 양식의 정원으로 만들면서 형성되었습니다. 천우각, 관어정, 청류정이라는 이름의 정자들을 지어 전통정원의 모습을 재현해서 풍류를 즐길 수 있게 했습니다. 국악당도 함께 지어서 한국전통음악을 들을 수 있는 장소도 제공하고 있습니다. 이 곳은 예전부터 경치가 매우 아름다워 ‘청학동’이라는 이름이 있었는데요, 조선시대 선비들과 사대부들은 정자와 누각을 지어 남산의 경치를 보며 여가생활을 즐겼습니다. 시대가 지나면서 청학동의 모습은 변했지만, 남산과 한옥마을이 어울린 모습은 현재에도 여전히 매력적입니다. 한옥마을에서는 조선시대의 한옥을 보고 체험 할 수 있습니다. 한옥들 내부에는 당시 집주인의 신분에 맞는 물건들을 배치해 놓아, 생활상을 알 수 있습니다. 전통체험 프로그램도 운영중인데요, 한옥에 직접 들어갈 수도 있고, 한복을 입고 기념촬영을 할 수도 있습니다. 천우각 뒤의 무대에서는 전통음악, 전통무용, 전통무술시범 등 다양한 공연들을 자주 열어 한국의 전통문화를 가까이서 볼 수 있습니다. 전통 공예관에서는 한국의 전통기술을 이용한 다양한 상품을 구경할 수 있습니다.
대본
아름다운 전통가옥 나들이 남산골 한옥마을에는 신분과 쓰임새에 따라 각기 다른 다섯 채의 기와집을 볼 수 있는데요, 조선말기에는 세도정치와 외국의 근대문물의 유입으로 인해 사회가 혼란해지고, 전통이 무너지면서 상류층과 일반인 가옥의 차이가 줄어들었습니다. 때문에 평민의 집에서도 상류층에서만 사용하던 전돌이 들어간 담장이나, 마루의 난간 장식이 나타납니다. 그러나 상류층만이 사용했었던 솟을대문, 낮은 굴뚝과 가문의 제사를 지내는 재실을 따로 갖추고 있는 것을 통해 당시 상류층의 가옥 문화도 볼 수 있습니다. 정문에서 왼쪽부터 대한제국 순정효황후의 큰아버지인 윤덕영의 집, 아버지인 해풍부원군 윤택영의 재실, 한양 8대 권세가 중 한 명이었던 민영휘의 집, 오위장을 지낸 김춘영의 집과 경복궁을 중건한 도편수 이승업의 집이 순서대로 있습니다. 각 집마다 특징들이 뚜렷한데, 윤택영의 재실의 경우, 용도에 맞춰서 장식을 배제하고, 제사를 준비하는 곳과 제사를 지내는 장소를 구분하기 위해 단으로 사당을 높여 지은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민영휘의 집에서는 마루아래에 있는 환기구를 전돌로 만든 것이 특이합니다. 이승업 집은 도편수라는 낮은 신분이었지만, 자신의 집에 다양하고 화려한 창살과 난간장식을 통해 자신의 실력과 권세를 나타내었습니다.
대본
명동성당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천주교 성당이야. 우리나라의 천주교 공동체가 처음으로 탄생한 곳이지. 천주교는 하느님과 하느님의 아들인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종교야. 하느님은 하늘과 땅을, 그리고 천사와 인간을 창조한 존재이지. 우리나라에 천주교는 조선 후기에 처음 알려지게 되었어. 서양의 과학기술과 문화 등을 연구하는 학문인 서학으로 전래되었다가 사람들이 점차 신앙으로 받아들이게 되어 천주교로 불리게 되었지. 가톨릭이라고도 해. 당시에는 천주교를 가진 사람들이 조상에게 제사를 지내지 않는 등 조선의 질서를 어지럽힌다고 하여 박해를 받기도 했어. 명동성당이 명동에 자리 잡게 된 것은 우리나라 최초의 천주교 희생자가 된 김범우라는 인물과 연관이 있어. 1784년 천주교 교도였던 이벽의 권유로 천주교에 입교한 그는 신앙집회를 열 수 있도록 장소를 제공하였어. 지금의 명동에 있는 자신의 집을 기꺼이 내어 준거야. 하지만 이곳에서 열린 신앙집회는 발각되게 돼. 집회 장소 제공자인 김범우는 유배형을 받았지. 그는 혹독한 매질을 받고 유배되어 고생하다가 결국 목숨을 잃고 말았어. 시간이 지나고 종교의 자유를 얻게 될 것을 예견한 블랑 주교가 김범우의 집을 성당 터로 매입하여 성당 건립을 추진하였어. 이렇게 명동성당이 지어지기 시작한거야. 명동성당의 설계와 공사 감독은 프랑스 신부 코스트가 맡았어.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건물 양식과는 다른 모습이지? 뾰족한 첨탑과 벽돌로 된 외관이 눈에 띄어. 성당 안으로 들어가 보면 십자가 모양으로 되어 있는 내부와, 아름다운 스테인드글라스로 장식되어 있는 제단 뒤의 유리창을 만날 수 있지. 명동성당은 일제와 6.25 전쟁의 수난을 거쳐 민주화의 성지로서 잘 알려진 곳이야. 명동성당이 주축이 되어 여러 민주화 운동과 인권운동을 벌였기 때문이지. 농민운동, 교권수호활동, 민주화운동, 언론자유화운동, 인권운동 등 무척 다양해. 이처럼 명동성당은 우리나라의 천주교뿐만 아니라 민주화에도 큰 영향을 끼친 곳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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