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서원(진주)
경상남도 진주시 남강로 626 (본성동)
4가지 관점으로 본 이 장소
KORLENS 큐레이션청계서원은 1833년(순조 33)에 건립되었으며, 고려 현종 때 거란의 침입을 물리치는 데 공을 세운 정신열 선생과 고려 말 물레를 개발하여 백성들에게 따뜻한 목면(목화) 옷을 입게 한 정천익 선생의 위패를 봉안한
본래 대평면 마동에 건립되었으나 1868년(고종 5)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 때 훼철된 것을 1961년에 지금의 자리에 복원하였다.
1961년 후손들이 복원 사업을 시작하여 경덕사와 정교당을 건립하여 봉남서당이란 이름으로 그 맥을 이어오다 1993년 숭은사와 진사청을 재건하고 청계서원으로 복원하였으며 서쪽 경덕사에는 정신열 선생의 위패를, 동쪽
매년 음력 3월 15일 사당에서 제향을 올리고 있다.
장소 소개
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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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관광공사 오디(Odii) 음성 해설대본
진주는 진주대첩, 논개의 순국, 진주농민항쟁, 형평운동 등 역사적 사건과 관련이 많은 지역입니다. 특히 왜장을 껴안고 남강에 뛰어든 논개 이야기가 깃든 촉석루는 진주하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곳이지요. 논개의 충절 덕분에 많은 사람들에게 잊히지 않은 명성을 얻은 촉석루는 진주성 내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남강변 절벽 위에 위엄 있게 자리하고 있는 진주성은 도심에서 걸어서 불과 10분 거리에 있는 곳입니다. 진주성은 본래 토성이었는데 고려 말 왜구의 잦은 침략에 대비하기 위해 석성으로 고쳐 쌓은 것이라고 합니다. 이곳에는 과거 우리의 기쁨과 슬픔이 공존하는데요. 진주대첩 당시 김시민 장군이 왜군을 대파한 현장인가 하면, 왜군과 싸우던 민관군 7만여 명과 왜군을 안고 남강에 뛰어든 논개가 목숨을 잃은 곳이기도 하지요. 이들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매년 5월이면 전통예술제인 논개제가 이곳에서 열리고 있습니다. 진주성 안에는 임금이 계신 북쪽을 공경한다는 의미가 담긴 공북문을 비롯하여 여러 유적이 가지런하게 정렬되어 있습니다. 우리나라 3대 누각인 촉석루와 진주대첩을 승리로 이끈 김시민 장군의 동상 및 전공비, 우병영의 중영터, 그리고 조선말기 경상남도 감영의 정문이었던 영남포정사가 대표적입니다. 또한, 성내에 들어서 있는 임진왜란 전문 박물관인 국립진주 박물관도 많은 이들의 발길을 이끌고 있습니다. 멋진 누각과 남강이 어우러져 있는 진주성은 주변 산책로도 잘 조성되어 있습니다. 여유로운 산책을 즐기며 보는 성곽의 모습은 더욱 아름답지요. 낮에 보는 풍경도 좋지만 특히 야경이 일품입니다. 때문에 야간에도 역사가 담긴 진주성을 거닐며 성의 여운을 오붓하게 즐기는 관람객들을 볼 수 있으며, 매년 가을엔 진주 남강 유등축제도 시행되고 있답니다.
대본
진주성의 촉석문을 따라 들어가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이 촉석루 입니다. 바위 벼랑 위 장엄하게 높이 솟은 촉석루는 우리나라 3대 누각으로 아름다운 자태를 자랑하고 있지요. 이 누각은 전쟁이 일어나면 진주성을 지키는 지휘본부로 사용된 곳입니다.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당시 우리나라 장수가 이곳에서 군사들을 지휘한 것이지요. 또한, 평상시에는 과거를 치르는 고사장의 역할을 했으며, 선비들이 풍류를 즐기던 명소이기도 했습니다. 한국전쟁 때 불에 타 그 모습을 잃어버렸지만 이후 시민들이 힘을 모아 복원하여 현재 모습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촉석루 남쪽 계단을 따라 남강으로 내려오면 논개가 몸을 던졌던 의암이 위치하고 있습니다. 2차 진주성 싸움 당시 진주성이 함락되게 되었는데 이것을 축하하기 위해 왜적들은 촉석루에서 자축연을 벌였습니다. 이때 조선의 관기였던 논개는 이를 참지 못해 왜장을 끌어안고 남강에 몸을 던졌지요. 깍지 낀 손가락이 미끄러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열 손가락 모두 가락지를 낄 정도로 기개가 투철했답니다. 논개의 죽음은 조선 여인의 기개를 왜군에게 유감없이 보여 주었으며, 현재까지도 그 절개는 존경을 받고 있습니다. 촉석루 바로 옆에는 의기사라는 건물이 위치하고 있습니다. 의기사는 논개의 넋을 기리기 위해 논개의 영정과 위패를 모신 사당으로 영조 때 처음 세워졌습니다. 안을 살펴보면 한 여인의 모습이 담긴 그림이 보입니다. 이는 논개의 모습으로 또렷한 이목구비가 돋보입니다. 논개의 이야기를 듣고 보면 평화로운 장소로만 여겨졌던 이곳이 안타깝게 느껴지는데요. 촉석루에서 내려다볼 수 있는 남강은 과거 우리 선조들의 시체로 가득 메워졌으며, 강물은 피로 물들었다고 합니다. 촉석루와 진주성 그리고 진주대첩이 가지는 역사적 의미를 생각하며 이곳을 감상한다면 풍경의 의미가 남다르게 다가올 것입니다.
대본
진주성 안에는 국립진주박물관이 있습니다. 진주성을 둘러보면서 빠뜨리지 말아야 할 곳이지요. 국립진주박물관은 처음 개관 당시에는 가야 문화 위주의 박물관이었으나 임진왜란 관련 유물들의 과학적인 보존과 전시의 필요성이 제기되어 임진왜란 중심의 박물관으로 재개관하였습니다. 박물관의 전시실은 크게 임진왜란실, 역사문화홀, 두암실, 기획전시실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먼저, 임진왜란실은 조선, 명, 일본의 7년 전쟁인 임진왜란의 과정을 생생하게 볼 수 있는 곳입니다. 일본의 조선 침략과 조선의 반격, 명의 개입으로 동아시아 대전으로의 확대, 일본의 재침략, 그리고 종전까지 이어지는 임진왜란의 전개와 과정을 볼 수 있지요. 또한, 전쟁 때 사용되었던 각 나라의 무기도 전시하고 있는데요. 군사들이 입었던 갑옷과 투구, 창과 검, 그리고 화약 등은 치열했던 전쟁의 모습을 상상하게 합니다. 임진왜란의 최대 격전 진주성 전투가 벌여진 이곳에서 임진왜란과 관련된 전시품을 보고 있으니 그 느낌도 색다릅니다. 역사문화홀은 경남의 역사문화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곳입니다. 선사시대와 가야, 신라, 고려 그리고 조선까지 각 시대 별로 다양한 문화재와 역사 도서 등 많은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지요. 경남 지역의 과거 모습을 엿볼 수 있어 우리의 역사를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되는 공간입니다. 다음으로 두암실은 두암 김용두 선생이 기증한 문화재를 전시하고 있습니다. 김용두 선생은 일본으로 유출된 우리 문화재를 수집한 인물인데요. 고대에서 근대에 이르는 토기, 도자기, 회화, 글씨, 공예품 등 시기도 광범위하고 종류도 다양하지요. 무려 190여 개나 되는 문화재를 수집하여 이곳에 기증을 했답니다. 평생 모은 문화재를 기증하면서 두암 선생은 ‘기증한 나도 기쁘지만, 수십수백 년 동안 떠돌다가 고국으로 돌아가게 된 이 문화재들은 얼마나 감격이 크겠는가?’라고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이를 통해 두암 선생의 고국과 우리 문화재에 대한 사랑을 엿볼 수 있습니다. 기획전시실은 매년 새로운 주제의 특별한 전시가 펼쳐지는 곳입니다. 온라인 영상으로 뜨거웠던 ‘화력조선’ 전시와 우리나라 인권운동의 효시인 ‘형평운동’전시도 이곳에서 펼쳐졌네요. 끝으로 관람에서 빠뜨릴 수 없는 곳이 3D입체영상관입니다. 이곳에서는 진주대첩과 제2차 진주성전투와 관련된 영상이 상영됩니다. 특히 어린이를 동반한 관람객들의 발길을 사로잡고 있답니다. 임진왜란 유물을 중심으로 다양한 역사 유물 및 문화재를 감상할 수 있는 국립진주박물관을 둘러보며 역사를 이해하고 우리도 고국과 문화재에 대한 사랑을 키워보는 것은 어떨까요? 진주성을 방문하셨다면 꼭 진주박물관에 들러 보시기 바랍니다.
대본
진주성 내에 있는 호령하는 모습의 동상은 김시민 장군의 모습입니다. 김시민 장군은 임진왜란의 3대 대첩 중 하나인 진주성 싸움을 승리로 이끈 인물입니다. 적에 비해 가진 무기와 병사 수가 적어 승리하기 힘든 전투였음에도 말이죠. 그래서 그 공로를 기려 이순신 장군과 똑같은 충무공 시호가 내려졌답니다. 이러한 김시민 장군의 업적은 촉석루 맞은편 언덕에 세워져 있는 김시민 장국 전공비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김시민 장군은 어린 시절부터 총명하였으며, 병정놀이하는 것을 좋아하였습니다. 전해지는 한 일화로는 김시민 장군이 어렸을 적 전쟁놀이를 하고 있었는데 마침 원님이 지나가 어린 김시민에게 길을 비키라고 하자 김시민이 “감히 진중을 통과할 수 있느냐?”라고 호령했다고 합니다. 원님은 장래가 촉망되는 아이라 여겨 길을 비켜 지나갔지요. 이후 김시민은 무과 시험에 응시하여 합격하였고, 제대로 되지 않은 군대를 정비하려 많은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하지만 높은 관리는 젊은 김시민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았고, 이에 그는 사직서를 쓰고 고향으로 내려갔습니다. 그리고 고향에서 나라를 지키기 위해 필요한 것들을 준비했지요. 이를 인상 깊게 본 다른 장군이 어느 날 김시민에게 군사들을 맡겼고, 김시민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큰 공을 세워 진주 판관에 부임하였습니다. 김시민이 진주 판관에 부임한 다음 해인 1592년에는 임진왜란이 일어났습니다. 수만 명의 일본 병사들은 진주성을 공격하였지만 우리의 군사는 일본군의 수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하였지요. 이에 김시민은 군사들이 많은 것처럼 여성과 노인들에게도 군복을 입혀 횃불을 들게 하였고, 처음부터 일본군에게 활을 쏘지 말고 화살을 아끼면서 결정적일 때 집중 공격을 펼치자는 지시를 내렸습니다. 이처럼 김시민의 지휘 아래 성 안의 백성들까지 가세하고, 성 밖의 의병들이 호응하면서, 우리는 진주성 전투에서 승리할 수 있었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김시민 장군은 마지막 전투에서 왜적의 탄환을 맞아 쓰러져 얼마 후 숨을 거두었답니다. 김시민 장군의 용맹함이 많은 영감을 전하고 있지 않나요? 진주성 내에 세워진 김시민 장군의 동상과 그의 전공이 기록된 전공비를 통해 김시민 장군의 용맹함을 더욱 생생히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대본
진주성 안에는 국립진주박물관이 있습니다. 진주성을 둘러보면서 빠뜨리지 말아야 할 곳이지요. 국립진주박물관은 처음 개관 당시에는 가야 문화 위주의 박물관이었으나 임진왜란 관련 유물들의 과학적인 보존과 전시의 필요성이 제기되어 임진왜란 중심의 박물관으로 재개관하였습니다. 박물관의 전시실은 크게 임진왜란실, 역사문화홀, 두암실, 기획전시실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먼저, 임진왜란실은 조선, 명, 일본의 7년 전쟁인 임진왜란의 과정을 생생하게 볼 수 있는 곳입니다. 일본의 조선 침략과 조선의 반격, 명의 개입으로 동아시아 대전으로의 확대, 일본의 재침략, 그리고 종전까지 이어지는 임진왜란의 전개와 과정을 볼 수 있지요. 또한, 전쟁 때 사용되었던 각 나라의 무기도 전시하고 있는데요. 군사들이 입었던 갑옷과 투구, 창과 검, 그리고 화약 등은 치열했던 전쟁의 모습을 상상하게 합니다. 임진왜란의 최대 격전 진주성 전투가 벌여진 이곳에서 임진왜란과 관련된 전시품을 보고 있으니 그 느낌도 색다릅니다. 역사문화홀은 경남의 역사문화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곳입니다. 선사시대와 가야, 신라, 고려 그리고 조선까지 각 시대 별로 다양한 문화재와 역사 도서 등 많은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지요. 경남 지역의 과거 모습을 엿볼 수 있어 우리의 역사를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되는 공간입니다. 다음으로 두암실은 두암 김용두 선생이 기증한 문화재를 전시하고 있습니다. 김용두 선생은 일본으로 유출된 우리 문화재를 수집한 인물인데요. 고대에서 근대에 이르는 토기, 도자기, 회화, 글씨, 공예품 등 시기도 광범위하고 종류도 다양하지요. 무려 190여 개나 되는 문화재를 수집하여 이곳에 기증을 했답니다. 평생 모은 문화재를 기증하면서 두암 선생은 ‘기증한 나도 기쁘지만, 수십수백 년 동안 떠돌다가 고국으로 돌아가게 된 이 문화재들은 얼마나 감격이 크겠는가?’라고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이를 통해 두암 선생의 고국과 우리 문화재에 대한 사랑을 엿볼 수 있습니다. 기획전시실은 매년 새로운 주제의 특별한 전시가 펼쳐지는 곳입니다. 온라인 영상으로 뜨거웠던 ‘화력조선’ 전시와 우리나라 인권운동의 효시인 ‘형평운동’전시도 이곳에서 펼쳐졌네요. 끝으로 관람에서 빠뜨릴 수 없는 곳이 3D입체영상관입니다. 이곳에서는 진주대첩과 제2차 진주성전투와 관련된 영상이 상영됩니다. 특히 어린이를 동반한 관람객들의 발길을 사로잡고 있답니다. 임진왜란 유물을 중심으로 다양한 역사 유물 및 문화재를 감상할 수 있는 국립진주박물관을 둘러보며 역사를 이해하고 우리도 고국과 문화재에 대한 사랑을 키워보는 것은 어떨까요? 진주성을 방문하셨다면 꼭 진주박물관에 들러 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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