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주 금성대군 신단
경상북도 영주시 순흥면 소백로2767번길 5
4가지 관점으로 본 이 장소
KORLENS 큐레이션영주 금성대군 신단은 사적 제491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조선 세조 때 단종임금의 복위(復位)를 도모하다가 무참히 화를 입은 금성대군(錦城大君:이름 瑜, 세종임금의 여섯째 아들, 단종의 숙부, 수양대군의 넷째 동생)
조선 세조 원년(1455) 단종임금으로부터 왕위를 빼앗은 수양대군 일파는 금성대군에게 모반의 누명을 씌워 삭령(朔寧)으로 유배시켰다가 다시 광주(廣州)로 이배(移配)시켰었다.
이듬해 성삼문 (成三問), 박팽년(朴彭年) 등 사육신이 상왕 복위운동에 실패하여 참혹하게 희생되자 그 일에 연루되었다 하여, 금성 대군은 다시 이곳 순흥으로 유배, 위리안치(圍籬安置)되었다.
금성 대군은 당시 순흥부사 이보흠과 의기가 통하여 단종복위를 위한 격문을 짓게 하여 은밀히 순흥고을로 모여들게 하였다.
장소 소개
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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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관광공사 오디(Odii) 음성 해설대본
조선시대 성리학의 문화유산인 서원은 선비들이 학문을 토론하고, 선현들에게 제향을 올리는 공간입니다. 과거 양반들이 모여 살만한 고장이라면 서원을 꼭 갖추고 있었으며, 지금까지도 서원의 가치가 전해지고 있지요.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정부로부터 공인받은 사액서원이 어딘지 알고 계시나요? 바로 경상북도 영주에 위치한 소수서원인데요. 조선 서원의 시초인 소수서원은 주세붕이 세운 백운동서원이 그 시작입니다. 영주 목사로 부임한 주세붕은 안향을 배향하는 사당을 만든 뒤, 사당 동쪽에 백운동서원을 건설하였습니다. 백운동서원이라는 이름은 주자가 설립한 백록동서원을 본뜬 것이며, 서원의 설립 목적 또한 주자의 영향을 받았습니다. 선현에 대한 제사와 후학에 대한 교육이 단순한 의례적 행위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백성들을 교화하기 위함이지요. 백운동서원은 퇴계 이황이 풍기 군수로 부임하면서 새롭게 주목을 받게 됩니다. 풍기 군수로 부임한 이황은 백운동서원에 대한 사액과 서적, 노비, 토지 등을 내려주기를 요청하여 서원을 국가에서 지원해 줄 것을 주장하였습니다. 당시 임금이었던 명종은 이를 받아들였고, 이때 받은 이름이 바로 소수서원입니다. ‘소수’라는 뜻은‘이미 무너진 유학을 다시 이어 닦게 한다’라는 뜻으로, 처음에 배향되었던 안향이 성리학을 받아들이고 조선 성리학의 토대를 이루었던 업적을 뜻하는 데에서 붙인 것입니다. 소수서원의 건물 배치는 정형화되어 있지는 않지만 서원이 갖추어야 할 요소는 모두 갖추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서원은 외문이 세 칸짜리로 되어 있는데 소수서원의 외문은 한 칸짜리입니다. 서원의 외문인 지도문을 들어서면 강당인 명륜당이 보입니다. 강당은 서원의 주요 기능 중 하나인 학문을 토론하던 공간으로 화려한 단청이 웅장함을 전합니다. 강당 내부에는 ‘소수서원’ 이름이 적힌 편액이 걸려 있는데 이는 명종의 친필이랍니다. 강당의 왼편에는 안향의 위패를 모신 문성공묘가 위치하고 있고 그 뒤로는 유생들이 숙식하며 공부했던 일신재, 직방재가 있습니다. 이외에도 죽계천을 내려다볼 수 있는 경렴정, 제사를 준비하던 전사청, 안향 선생의 영정을 모신 영정각을 볼 수 있지요. 구조를 찬찬히 살펴보면 앞쪽에 유생을 교육하는 강학 기관이, 뒤편 가장 높은 자리에 선현을 추모하는 제향 기관이 자리하는 대부분의 서원과는 다르다는 점을 발견하게 됩니다. 소수서원은 오른쪽에 강학 공간이 왼쪽에 제향 공간이 있는 것이지요. 이처럼 건물이 비교적 자유롭게 배치되어 있는 것은 일반적인 서원의 배치가 완성되기 이전인 초기의 서원이기 때문인 듯합니다. 소수서원은 전국적으로 서원이 건립되는 데에 큰 영향을 준 곳입니다. 소수서원이 세워진 이후 각 지방에서 서원이 교육과 교화, 정치의 중심지로 기능하기 시작하였지요. 그중에서도 소수서원은 대표적인 서원의 위상을 유지하였으며,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 때에도 철폐되지 않은 47개 서원 중 하나로 선정되었습니다.
대본
하늘 높이 솟은 소나무로 둘러싸인 서원에서 들리는 낭랑한 경전 읽는 소리가 마음을 차분하게 만들어주는 소수서원. 이제는 새로운 변화 속에 누구나 편하게 즐길 수 있는 관광지로 변모하고 있습니다. 소수서원 입구로 들어서면 양쪽으로 곧게 자란 소나무들이 병풍처럼 늘어서 있습니다. 소나무 사이로 내리쬐는 따스한 햇볕을 맞으며 100미터쯤 걸어가면, 오른쪽으로 옛 절의 위치를 알려주던 당간지주가 나타납니다. 돌로 만든 당간지주는 성인 키보다 훨씬 큰 두 개의 돌기둥으로 묵묵히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당간지주를 뒤로하고 산책로를 따라 걸어가면 오른쪽으로 경렴정이 나옵니다. 경렴정은 원생들이 시를 짓고 학문을 토론하던 정자로, 옆으로 흐르는 죽계천의 맑은 물소리가 바로 곁에서 들리는 듯합니다. 경렴정에 잠시 앉으면 죽계천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온몸을 시원하게 감싸 안아줍니다. 경렴정 앞으로 나 있는 경사로를 따라 올라가면 정면에 나타나는 건물이 바로 강학당입니다. 보물 제1403호로 지정된 강학당은 소수서원의 강학 공간 중 가장 규모가 큰 곳으로, 앞면 3칸, 옆면 4칸의 구조를 자랑합니다. 강학당 앞쪽에는 ‘백운동’이라 적힌 현판이 걸려 있고 안쪽에는 다양한 글귀가 적힌 액자들이 걸려 있습니다. 마침 강학당 안에서 울려 퍼지는 후손들의 낭랑한 경전 읽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안을 천천히 둘러봅니다. 강학 영역을 벗어나 오른쪽으로 20미터쯤 가면 시원한 식수대가 있습니다. 거북이 모양을 닮은 친근한 식수대라 절로 눈길을 사로잡습니다. 그 옆으로 난 문을 지나가면 오른쪽으로는 소수서원과 죽계천 사이에 있는 연못인 탁청지가, 왼쪽으로는 새롭게 단장한 공중화장실이 나옵니다. 탁청지는 '맑은 물에 씻어 스스로 깨끗해진다'는 뜻으로, 주변 풍경과 어울리는 아름다운 이름을 갖고 있습니다. 탁청지 맞은편으로는 죽계천 위로 아늑하게 난 다리인 백운교가 있습니다. 열린관광지 사업을 통해 누구나 편안하게 보행할 수 있도록 완만한 경사로를 설치했습니다. 백운교를 뒤로하고 정면에 있는 소나무 숲으로 발길을 옮겨보겠습니다. 곧게 뻗은 소나무 사이로 푹신한 야자매트를 깐 산책로가 길게 이어집니다. 숲속으로 들어갈수록 세월을 품은 울창한 소나무들이 하늘을 향해 시원하게 솟아 있습니다. 푸른 소나무 숲을 뒤로하고 죽계교를 지나 오른쪽으로 100미터쯤 걸어가면 소수서원 박물관이 나옵니다. 소수서원 박물관은 서원에 관한 다양한 유물과 역사의 기록들을 전시한 곳으로, 출입구에 턱이 없고 경사로가 잘 갖춰져 있어 휠체어나 유모차를 이용하시는 분들도 편안하게 둘러보기에 좋습니다. 자연 계곡인 죽계천과 수백 년 된 아름다운 소나무 숲길이 어우러져, 걷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차분해지는 소수서원. 이곳에서 소중한 분들과 함께 편안한 휴식을 즐겨보시는 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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