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RLENS

마로니에공원

서울특별시 종로구 대학로 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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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LENS 큐레이션
외국인
Foreigner

마로니에공원은 서울 시민들을 위한 문화예술의 터전으로 옛 서울대학교 문리대, 법대 자리에 있다.

커플
Couple

이곳에는 마로니에나무가 자라고 있는데 1929년 4월 5일 서울대학교의 전신인 경성제국대학 시절에 심은 것으로, 이 나무 이름을 따서 마로니에공원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가족
Family

어린이놀이터가 있고 야외무대와 분수공원, 조각품 등이 전시되어 있다.

솔로
Solo

야외무대는 가수들의 공연장과 각종 문화행사장으로 활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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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 소개

마로니에공원은 서울 시민들을 위한 문화예술의 터전으로 옛 서울대학교 문리대, 법대 자리에 있다. 이곳에는 마로니에나무가 자라고 있는데 1929년 4월 5일 서울대학교의 전신인 경성제국대학 시절에 심은 것으로, 이 나무 이름을 따서 마로니에공원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어린이놀이터가 있고 야외무대와 분수공원, 조각품 등이 전시되어 있다. 야외무대는 가수들의 공연장과 각종 문화행사장으로 활용되고 있다. 이 공원 주위로 문예회관 대극장과 바탕골소극장, 동숭아트센터 등의 소극장이 자리하고 있다. 유명한 맛집과 다양한 컨셉의 카페들이 주위에 많다. 이 공원에서는 연중무휴 무료로 개방되는 공연과 행사들에 많아서 언제 방문하더라도 참여하고 즐길 거리가 가득하다.

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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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관광공사 오디(Odii) 음성 해설
대한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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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코스 배움의 길 세상을 바꾸는 교육과 연구의 공간, '싱크 탱크' 종로 (안내) 한국사 강사 최태성 (배역) 김학수(고종 때 문신, 성균관대사성) 이곳은 함춘원 안의 마두산 언덕이오. 언덕 위, 빨간 벽돌 건물이 바로 대한의원이오. 건물의 맵시가 참으로 아름답지 않소. 흔히들 이 시기에 지은 벽돌 건물은 모두 외국에서 온 사람을 위한 건물이라고 생각할 것이오. 하지만 이 건물은 1907년, 대한제국 시절 고종 황제께서 설립하도록 하여 순종 황제의 칙명으로 문을 연 근대식 국립의원, 지금 표현으로 하면 국립병원이었소. 지금도 본관 건물의 규모가 만만치 않지만, 처음 지었을 때는 본관을 포함하여 모두 7동의 병동과 해부실, 의학교를 갖춘 대규모의 의원이었소. 아, 물론 대한의원이 우리 조선의 첫 서양식 의원은 아니었다오. 앞서 고종 임금께서는 1885년 제중원이란 병원을 세우는 데 도움을 주었소. 제중원을 짓기 1년 전, 그러니까 1884년에 김옥균을 중심으로 한 개화당 사람들이 일으킨 갑신정변 때 많은 사람이 칼에 맞아 죽거나 다쳤소. 민영익 역시 여러 곳에 칼을 맞아서 위험한 상황이었는데 의사이자 선교사인 알렌이 치료한 덕분에 살아났소. 서양의 문물에 관심이 많은 고종 임금은 알렌의 건의로 홍영식의 집터에 광혜원, 아니 바로 이름이 고쳐졌으니 제중원이 맞겠소. 제중원이란 서양식 의원을 짓도록 한 것이오. 하지만 계속되는 혼란 속에서 제중원은 제대로 운영이 될 수 없었소. 대신 외국 선교사가 세운 의학 학교의 의원이 되어서 그 역할을 이어갈 수 있었소. 이런 가운데 고종 황제께서는 1907년에 국립병원인 광제원, 의학교육기관인 의학교와 부속병원, 빈민 치료기관인 대한국적십자병원을 모두 통합해, 이곳에 나라에서 운영하는 근대식 병원 대한의원을 설립하도록 하신 것이오. 서구의 문물을 받아들여 의학 발전을 도모하려고 했던 것이었소. 그리고 1908년, 순종 황제의 칙령으로 대한의원이 문을 열었소. 말 그대로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의원이라고 할 수 있소. 그러나 안타깝게도 대한의원의 역사는 그리 길게 이어지지는 못했소. 1910년에 일제에게 국권을 빼앗겼기 때문이오. 비통한 일이 아닐 수 없소. 이후 대한의원은 조선총독부의원으로 이름이 바뀌고 의학교는 조선총독부의원 부속의학 강습소가 되었다가 경성의학 전문학교로 바뀌게 되었소. 이후 조선총독부 의원이 경성의학 전문학교의 부속의원이 되고 경성의학 전문학교가 경성제국대학 의학부와 통합되어 지금의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이 된 것이오. 과정이 다소 복잡한 듯 들리겠지만 결론은 대한제국의 국립 대한의원이 대한민국의 국립 서울대학교 부속병원으로 이어졌다고 보면 될 것 같소. 황제의 칙령으로 생겨난 의원이 100년이 훨씬 지난 지금도 그 자리를 지키고 있으니 역사의 흐름이란 것이 참 대단하지 않소?

지석영 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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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코스 배움의 길 세상을 바꾸는 교육과 연구의 공간, '싱크 탱크' 종로 (안내) 한국사 강사 최태성 (배역) 김학수(고종 때 문신, 성균관대사성) 아, 저기 대한의원 오른편에 지석영 선생의 동상이 세워져 있소. 나보다 약간 후배가 되는 사람으로 서양의학에 대해 일가를 이루었다는 평가를 듣기도 하오. 그리고 대한의원 의학교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오. 선생은 처음으로 근대식 의학교의 설립을 건의하고 1899년에 의학교가 설립되자 첫 번째 교장이 되어 학생들의 교육에 앞장섰소. 그 결과 1903년 대한제국의 의학교에서 서양의 의술을 배워 익힌 18명을 졸업생으로 배출할 수 있었다오. 무엇보다 지석영 선생은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종두법을 도입하였소. 서양에서는 천연두라 부르기도 하는 두창은 정말 무시무시한 병이었소. 두창에 걸리면 처음 사흘 동안은 오한에 열이 났고, 몸에 물집 같은 것이 생기기 시작하면 살기가 어려웠소. 병자가 생기면 마을 입구에 두창 장승을 세우고 극진히 기도를 올렸지만, 두창이 한번 퍼지면 온 마을 쑥대밭이 되곤 했소. 그래서 사람들은 두창을 두려워하여 호구마마로 불렀다오. 다행히 지석영 선생이 각고의 노력으로 일본에서 종두법을 배웠고, 사람들에게 우두를 접종해 두창을 예방하도록 했다오. 이를 계기로 종두법이 널리 퍼지며 두창의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었소. 아, 지석영 선생은 잠시 성균관의 도서관장이라고 할 수 있는 ‘성균관전적’의 일을 맡기도 했으니 나와도 인연이 있다고 할 것이오. 마침 대한의원 건물 2층은 의학박물관으로 쓰이고 있다니, 우리나라 의학의 역사가 궁금하다면 박물관에 가서 전시를 돌아보는 것도 좋을 것이오. 그리고 대한의원의 시계탑은 조선 땅에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시계탑이라고 하니, 여유가 있으면 들러 보는 것도 좋겠소. 오전 11시와 오후 4시에 일부에게만 개방한다고 하니까, 예약 뭐 이런 것이 필요할 것이오. 자, 그럼 다음 장소로 발걸음을 옮겨 보겠소. 마두봉을 올라온 길을 따라 다시 서울대 병원 정문 쪽으로 돌아가 횡단보도를 건너시오. 건널 때 차 조심하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하오. 길을 건너면 창경궁 담장을 따라 오른쪽으로 창경궁의 정문인 홍화문까지 갈 수 있소. 그곳에서 다시 말씀을 이어가리다.

대학로 안창호선생 흉상(흥사단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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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코스 배움의 길 세상을 바꾸는 교육과 연구의 공간, '싱크 탱크' 종로 (안내) 한국사 강사 최태성 (배역) 김학수(고종 때 문신, 성균관대사성) 흉상의 주인공은 안창호라는 분이오. 내 언뜻 기억이 날 것 같기도 하오. 미국으로 이민 간 젊은 부부, 안창호와 이혜련 부부. 그 후 오랫동안 소식을 듣지 못했는데 이렇게 여기에서 그의 흉상을 만나게 되었소. 비록 나보다 한참 후배지만, 개인적으로 잘 알지 못하는 사이이니 선생으로 부르겠소. 안창호 선생은 민권운동과 독립운동에 앞장선 인물이오. 평양에서 자라며 18살 예민한 시기에 청일전쟁을 겪으며 힘없는 나라의 현실을 깨달았다고 하오. 청일전쟁이라, 참으로 안타까운 전쟁이었소. 남의 나라 전쟁이 우리 땅에서 일어났는데 이를 막지 못한 조선의 무력함이라니. 젊은 안창호 선생에게 미안할 따름이오. 이후 안창호 선생은 서울에서 신학문을 배우면서 나라의 실력을 키워야 한다고 생각을 하게 되었다고 하오. 그래서 나라 안에 있을 때는 독립협회와 신민회에서 자주를 위해 헌신했으며 나라 밖에 가서는 대한인국민회, 대한민국임시정부와 같은 독립운동 기관에서 독립운동에 일생을 바쳤으니, 감히 내가 쉽게 평가할 수 없는 거인이라고 할 수 있겠소. 그럼 안창호 선생의 행적을 조금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겠소. 미국으로 떠난 안창호 선생은 항상 조국을 마음에 두고 있었소. 무엇보다 바람 앞의 등불과 같은 나라, 그리고 국권을 빼앗긴 나라의 자주와 독립을 위해 자신의 일생을 걸기로 한 것이오. 이를 위해 중국과 연해주, 미국과 멕시코, 필리핀을 다니는 일을 마다하지 않았으니, 독립에 나선 인사 가운데 가장 많은 길을 간 인물이 아닐까 하오. 안창호 선생에게 장기가 하나 있었으니 동포를 하나로 모으는 것이었소. 1907년, 국내에서는 비밀 결사인 신민회를 만들어 자주와 독립을 위해 일했다면, 미국으로 가서는 대한인국민회를 중심으로 우리 동포를 하나로 모았소. 또 여러 곳에 임시정부가 들어서자 이를 하나의 임시정부로 통합하는 일에 앞장섰소. 당시 여러 사람은 모두 자기만의 뜻이 있었을 테지만 논리정연하고 당당한 안창호 선생의 영도 아래 하나가 될 수 있었을 것이오. 아마도 그의 논리의 바탕에는 국권을 회복하기 위한 뚜렷한 방략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오. 교육을 통해 인재를 길러 나라의 미래를 밝히고자 하는 것도 그 가운데 하나였을 것이오. 평양에 있을 때는 대성학교를 세우고 출판사인 태극서관을 운영했고, 나라 밖에서는 민족 운동의 간부를 기르기 위해 미국에 본부를 둔 흥사단을 만들었소. 특히 흥사단은 대성학교와 태극서관, 신민회가 하던 일을 계승하려는 의지가 강했다는 점에서, 청년을 기르고 미래를 준비하는 안창호 선생의 장기가 잘 발휘된 기관이라고 할 수 있소. 나 역시 교육에 힘을 기울였지만, 안창호 선생처럼 큰 그림을 그려 성균관에서 생도들을 교육하지는 못했소. 언젠가는 성균관을 새롭게 만들어줄 당당하면서도 현명한 선비가 나타나리라 믿고 있소. 이후 국내에서는 흥사단의 지부로 서울의 수양동맹회와 평양의 동우구락부가 합법적으로 만들어졌소. 그리고 두 단체는 수양동우회를 거쳐 동우회로 통합되었소. 하지만 이를 가만 둘 일본이 아니오. 결국 ‘동우회 사건’을 일으켜 많은 지도자를 구속하고 동우회를 해산했소. 이 과정에서 국외에 있던 안창호 선생 역시 구속과 석방, 그리고 다시 구속과 석방을 반복하는 과정에서 지병으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소. 우리 역사의 큰 인물이 세상을 떠났으니 안타깝기 그지없는 일이오. 안창호 선생은 늘 단정한 복장을 한 것으로 유명하오. 외국에서 한국인이 무시당하지 않기를 바라는 뜻, 독립운동에 나선 사람의 굳은 마음을 겉으로 표시한 것이라고 하오. 안창호 선생 동상 뒤에 있는 건물이 흥사단 본부라오. 미국에서 설립되었던 흥사단은 광복 이후 국내로 본부를 옮겨 지금까지 이곳에서 활동하고 있소. 안창호 선생은 90여 년 전 세상을 떠났으나 선생이 18세에 세운 ‘실력을 키워 나라를 지킨다’라는 뜻은 흥사단을 통해 여전히 이어지고 있는 것이라오. 자, 선생의 흉상을 뒤로 하고 마로니에 공원으로 가겠소. 넓진 않으나 크고 작은 나무가 아늑한 숲을 이루고 있는 곳이 바로 마로니에 공원이오. 공원을 가로질러 붉은색 벽돌의 ‘아르코 미술관’으로 가면 그 앞에 자리하고 있는 수령이 100살 정도가 되는 마로니에 나무를 만날 수 있소. 이 마로니에 나무가 있어서 여기를 마로니에 공원이라 부른 것인데, 사실 이 나무는 공원에 심은 것이 아니라 대학교, 그러니까 옛날에 여기에 있던 서울대학교에 심은 것이었소. 그러한 이유로 주변 동네는 대학로라 불렸고 1975년 서울대학교가 이사 간 후 학교 터에 공원이 들어서면서 ‘마로니에 공원’이라 불리게 된 것이오. 마로니에 나무 옆에는 이곳에 서울대학교가 있던 곳임을 알려주는 ‘서울대학교 유지기념비’가 서 있소. 서울대학교 본관 건물만은 아직도 그 자리를 지키고 있으니 그 건물이 바로 옆에 있는 건물, 지금의 ‘예술가의 집’이오.

구 서울대 본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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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코스 배움의 길 세상을 바꾸는 교육과 연구의 공간, '싱크 탱크' 종로 (안내) 한국사 강사 최태성 (배역) 김학수(고종 때 문신, 성균관대사성) 음.. 서울대라 하면 내가 살던 시절의 성균관과 같은 대한민국 최고의 국립 대학교라 들었소. 내가 이 시절에 태어났다면 당연히 국립서울대학교 총장이 되었을 텐데. 하하하. 이 건물이 처음 생긴 것은 1930년이라 하오. 그때는 서울대학교가 아닌 일본이 세운 경성제국대학이었소. 조선을 빼앗은 일본은 당시 한국의 민족지도자들이 힘을 모아 대학을 설립하려는 움직임이 일자 이를 무마하기 위해 1924년 경성제국대학을 세웠던 것이오. 하지만 경성제국대학은 한국인을 위한 학교가 아니었소. 식민지 경영에 도움이 되는 법학과 의학과를 먼저 신설했고, 고등 기술을 가르치지 않으려고 초기에는 이공학부는 설치하지도 않았다고 하오. 게다가 한국인들의 입학 정원을 제한했기에 졸업생 대부분은 일본인이었소. 20여 년 동안 한국인 졸업생은 겨우 810명이었으니 한국에 있는 일본의 대학이었다고 보면 될 것 같소. 1945년 해방이 되고 경성제국대학의 교명은 경성대학으로 바뀌었소. 이듬해 서울과 근교의 고등 교육 기관을 통합해 국립종합대학을 세웠는데, 그 학교가 바로 국립 서울대학교가 된 것이오. 그때부터 명실상부하게 대한민국의 국립 종합대학교로 거듭나게 된 것이었소. 그러던 중 1975년, 수원과 서울 곳곳에 흩어져있던 단과대학을 관악산 아래로 이전하게 되면서 지금은 길 건너편의 의과대학만이 이곳에 남게 된 것이오. 옛 학교 자리에는 본관 건물만이 남아 서울대의 시작과 그 역사를 보여주고 있소. 조선의 최고 학교 성균관이 대한민국의 최고 학교로 이어지지 못한 것은 심히 가슴 아프지만, 어느 시대, 어느 때에도 교육을 중요하게 생각한 우리 민족의 열의와 노력만큼은 높이 사지 않을 수 없소. 이제 배움의 길, 마지막 목적지로 발길을 옮겨 보겠소. 마로니에 공원 아래 한국방송통신대학교요. 우리가 찾을 것은 정문 안쪽 바로 오른쪽에 있는 청색 빛과 회색빛이 어우러진 나무 건물이오.

구 공업전습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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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코스 배움의 길 세상을 바꾸는 교육과 연구의 공간, '싱크 탱크' 종로 (안내) 한국사 강사 최태성 (배역) 김학수(고종 때 문신, 성균관대사성) 이 건물은 대한제국 시기에 공업 기술 발전을 위해 설립된 공업전습소의 본관 건물로 알려진 곳이나, 공업전습소 부지에 1912년 신축 된 조선총독부의 중앙시험소 건물이라오. 대한제국의 공업전습소는 염직, 도기, 금공, 목공, 응용화학, 토목 등 근대 기술을 가르치는 교육기관이었소. 하지만 명목으로만 대한제국을 위한 근대 기술을 가르치는 학교였을 뿐, 실상 공업전습소는 일본의 지배와 경제 침탈이 수월하도록 농공업 기술자들을 양성하는 실습소였소. 서울에 공업전습소를 세운 이후 일본은 전국 곳곳에 공업전습소를 설치했으니, 나라의 존망이 달린 풍전등화의 상황에서 대한제국의 교육에 대한 열망은 그 뜻대로 이어지지 못했던 것이오. 1916년 경성공업전문학교가 세워지면서 공업전습소의 역사는 막을 내리게 되었소. 이후 공업전습소 부지에 조선총독부 중앙시험소가 신축되어 이용되다가 지금은 한국방송통신대학교의 역사관으로 이용되고 있는 것이라 하오. 한국방송통신대학교는 어느 곳에나 대학교 강의를 제공하는 최초의 원격 교육기관이라 들었소. 내가 관장하던 성균관에서 교육이라고 하면 유학을 의미했소. 그러나 시대가 격변하는 가운데 외국어 교육, 기술 교육, 의학 교육과 같은 것이 새롭게 생겨났으니 이를 보고 사람들이 놀라워했소. 여러 가지 교육을 한 곳에 모은 대학교라는 것을 보고 또 신기해하고 있었는데, 이제는 대학교 교육을 집에서나 직장에서도 받을 수 있다고 하니, 세상의 변화와 함께 달라지는 교육의 모습이 놀랍기만 할 뿐이오. 교육이 세상을 바꾸는 것인지, 세상이 교육을 바꾸는 것인지 내 아직은 잘 모르겠지만 서로 잘 어울려야 한다는 것은 알겠소. 시험소 건물은 나무로 지어졌음에도 백 년이 넘는 세월을 꿋꿋하게 버티고 있고, 여전히 교육과 관련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으니, 이름과 내용이 다를 뿐 교육은 어느 시대, 어느 곳에나 필요한 것임은 분명한 것 같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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