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RLENS

이공제비 및 군수이후범선영세불망비

대구광역시 수성구 신천동로 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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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가지 관점으로 본 이 장소

KORLENS 큐레이션
외국인
Foreigner

대구의 신천이 흐르는 둔치 주변 이서공원에 한 채의 비각 안에 서 있는 3기의 비이다.

커플
Couple

왼쪽에 있는 것은 이공제비로, 대구판관을 지낸 이서의 치적을 기리기 위해 주민들이 세운 것이다.

가족
Family

당시 대구는 하천이 중심부로 흘러 홍수 때마다 큰 피해를 당하였다.

솔로
Solo

조선 정조 즉위년(1776) 대구판관으로 부임해 온 이서는 주민들의 어려움을 알고 1778년 자기의 재산을 털어 제방을 쌓아 물길을 돌리게 하였다.

장소 소개

대구의 신천이 흐르는 둔치 주변 이서공원에 한 채의 비각 안에 서 있는 3기의 비이다. 왼쪽에 있는 것은 이공제비로, 대구판관을 지낸 이서의 치적을 기리기 위해 주민들이 세운 것이다. 당시 대구는 하천이 중심부로 흘러 홍수 때마다 큰 피해를 당하였다. 조선 정조 즉위년(1776) 대구판관으로 부임해 온 이서는 주민들의 어려움을 알고 1778년 자기의 재산을 털어 제방을 쌓아 물길을 돌리게 하였다. 홍수의 피해에서 벗어난 주민들은 새로 만든 냇물을 신천이라 부르고, 제방의 명칭도 이공제라 한 후 정조 21년(1797)에 이 비를 세워 그를 기렸다. 원래 수성교 서쪽 제방에 있던 것을, 이곳으로 옮겨 자리를 잡았다. 가운데에 있는 비는 옆의 이공제비가 초라하여 그의 업적을 영원히 기리는 의미로 순조 5년(1805)에 다시 세운 것이다. 오른쪽에 서 있는 군수이후범선영세불망비는 광무 3년 (1899)에 세운 비로, 고종 때 대구수령으로 있던 이범선의 공적을 기리고 있다. 1898년 큰 홍수가 일어나 이공제의 하류 부분이 파손되어 대구읍성이 위험하게 되자, 이범선은 빠른 기간에 보수공사를 완성하여 주민들의 근심을 덜어주었다. 이에 보답하고자 광무 3년(1899) 이곳 주민들이 비를 세웠다. 매년 정월 대보름에는 덕수이씨 종친회 주관으로 향사를 지내고 있다.

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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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디오 가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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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공제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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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본

이공제비는 정조 때 대구 판관이었던 이서의 공을 치하하기 위해 세운 송덕비로 1988년 대구 유형문화재 제23호로 지정되었습니다. 송덕비는 신천변 이서공원 내 이공제비각 안에 보호되어 있어요. 물소리를 따라 천변을 걷다 보면 가슴 속까지 상쾌해지는데요. 18세기 무렵에는 홍수 때마다 큰 피해를 입었다고 해요. 대구에서는 신천 범람을 막은 대구 판관 이서의 업적을 두고 과연 이서가 신천 물줄기를 돌린 것인지 아니면 제방을 쌓아 막은 것인지 최근까지도 의견이 분분했는데요. 우리 지역은 해마다 큰 물난리로 주민들의 피해가 막대하다. 허니 상습적으로 범람하는 구간에 튼튼한 제방을 쌓아 주민들의 피해를 최소화하라. 대구 판관 이서는 1778년에 사재를 털어 새롭게 제방을 쌓았습니다. 이에 큰 피해를 막을 수 있었던 주민들은 크게 감동해 제방의 이름을 이공제라 부르기로 했어요. 또 그해 8월에는 이서의 공을 치하하며 송덕비를 세웠습니다. 하지만 최초에 세운 송덕비는 사라지고 1797년 다시 비를 세웠는데, 1805년에는 그 공덕을 기리기 위해 옆에 또 다른 비를 세웠어요. 이공제비각 안에 군수이후범선영세불망비는 대구 군수로 재직했던 이범선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송덕비입니다. 1898년 이공제의 제방엔 큰 홍수가 나서 하류 부분이 유실되는 위기에 처했는데요. 당시 대구군수 이범선이 단시일 내에 보수 공사를 해서 피해를 막았습니다. 이에 그 이듬해 백성들이 송덕비를 세워 보호해 왔고, 현재 신천변 이서공원 이공제비각 안에 함께 있습니다. 최근 이공제비 중 1808년에 조성된 송덕비에서 새로운 사실이 밝혀졌는데요. 바로 앞면에 적힌 이공제라는 글자를 이학철이라는 소년이 썼다는 사실, 당시 소년의 나이 겨우 12살이었다고 하니 놀랍지 않나요? 이 비는 자칫 세상에 나오지 못할 뻔했는데요. 1987년 이전까지만 해도 이공제비각에는 이공제비와 이범선 비가 각각 1기씩 있었어요. 그런데 1987년 신천대로 공사 당시 김광석 거리로 유명한 지금의 수성교 서편 땅 속에서 비 한 개가 더 나온 거죠. 바로 이학철의 글씨가 새겨진 비였어요. 비 뒷면에는 전면 대자 이학철, 12세 서, 전면 큰 글자는 12세 이학철이 썼다는 기록이 있는데요. 아쉽게도 이공제 글씨를 쓴 12살 소년 이학철이 누구인지는 현재까지도 확인되지 않고 있어요. 대구 판관 이서와 대구 군수 이범선 공덕비를 모신 이공제비각에서는 매년 정월대보름날 제사를 모시고 있는데요. 제사는 2010년부터 이서공향사라는 이름으로 대구 수성문화원에서 주관하고 있습니다.

상동 청동기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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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본

선사시대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을까요? 선사시대란 인간에 대한 문자 기록이 없는 시대를 말하는데요. 이른바 구석기, 신석기, 청동기, 철기 시대입니다. 이곳은 선사시대 중 청동기 시대를 엿볼 수 있는 상동 청동기 마을입니다. 우리나라는 고인돌의 나라로 불릴 정도로 세계에서 가장 많은 고인돌을 보유한 나라입니다. 특히 대구는 세계 그 어느 곳보다 더 많은 고인돌을 보유한 지역이었죠. 그러나 지금은 도시화, 산업화로 대부분을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더욱 상동 청동기 마을의 의미가 큽니다. 상동 청동기 마을은 고인돌과 청동기 집터 유적을 동시에 볼 수 있는 희귀한 답사지입니다. 고인돌은 청동기 시대를 대표하는 유적으로 '돌을 깬다'라는 순수 우리말인데요. 수성구청은 청동기 시대 집터와 묘 내부 모형을 설치해 유리를 통해서 답사자가 직접 눈으로 확인하는 재미를 느낄 수 있습니다. 원래 고인돌은 무덤이라는 설이 대부분이지만 제사를 지내는 제단이나 내 구역, 네 구역을 나누는 영역 표시석이라는 설도 있습니다. 자랑스러운 청동기 시대 유물 고인돌이 더 이상 사라지지 않고 자리를 묵묵하게 지켜주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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